옷로비 사건 끝나지 않았다
  • 권은중 기자 (jungk@e-sisa.co.kr)
  • 승인 2001.08.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신동아그룹 2라운드 싸움 내막


전북 전주시 효자동 3번지 전주대학교는 올 봄부터 학교 재단이 바뀐다는 소문에 휩싸여 있다. 현재 이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 신동아학원의 이사장은 하용조 목사지만, 지난해까지는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62)이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하목사는 최회장 부인 이형자씨의 동생인 이영기씨의 남편이다. 또 최회장과 이형자씨는 현재 이 재단의 이사로 있다.




전주대가 이처럼 학교를 내놓았다는 소문이 난 까닭은, 재단의 돈줄이라고 할 수 있는 신동아그룹 계열사에서 최회장이 손을 뗐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업계 3위의 우량 기업으로 신동아그룹 돈줄 노릇을 하던 대한생명은 100% 정부 소유 기업이 되었다. 최씨가 보유하고 있던 관련 회사 주식은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휴지조각이 되었고 최회장은 경영권을 잃었다. 재단 이사장 역할을 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전주대 이사장 교체설 왜 나왔나


학교 관계자들은 매각설의 또 다른 이유를 최회장 부인인 이형자씨가 1970년대부터 운영하던 횃불선교센터(구 세계기독교선교재단)에서 찾고 있다. 횃불선교센터를 지어준 신동아건설이, 대주주가 최회장에서 다른 기업으로 바뀌자 공사대금 3백92억원을 갚으라고 횃불선교센터 재단에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 건물과 토지는 신동아건설이 가압류한 상태다.


이 돈을 갚지 못한다면 횃불선교센터는 재판 결과에 따라 경매에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횃불선교센터 관계자는 "돈이 없다.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라며 절망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그래서 최씨 부부가 횃불선교센터가 지고 있는 채무를 대신 부담하고 신동아학원을 맡아줄 새 이사장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출연자가 재단에 재산을 기부하는 형식이 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교육부 관계자의 말이다.


대학을 팔아서까지 지키려는 횃불선교센터는 최씨 부부에게 대한생명만큼이나 소중하다. 금싸라기 땅에 4천평 규모(시가 천억원)로 지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횃불선교센터는 종파를 초월한 기독교인들의 만남과 교육의 장으로 이름이 높다.


특히 이형자씨는 1970년대부터 횃불선교센터를 통한 선교사업에 적극적이었고 그 덕분에 교계에서 신망이 높다. 장로이기도 한 최회장은 선교 방송국인 극동방송·아세아방송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대한생명이 최씨 부부의 물질적인 배경이었다면 횃불선교센터는 정신적인 터전이었던 셈이다.


'횃불' 지키려고 학교 판다?




이 센터는 최씨 부부에게 명망과 함께 폭넓은 인적 자산을 안겨주었다. 최씨 부부가 얼마나 널리 교분을 맺고 있었는지는 최씨가 구속된 1999년 1월 이후 서울지법에 제출된 석방탄원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석방탄원서에는 여당인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전·현직 의원 14명, 전직 총리 2명, 재벌 총수, 전국 대학 이사장 등 수십명이 서명했다. 또 전국 2만2천1백개 교회가 서명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이 센터가 최회장 구명 로비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말도 떠돌았다.


횃불선교센터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계기는 옷 로비와 관련해서다. 1999년 1월 최순영씨가 외화 도피 혐의로 구속되자 이곳을 중심으로 '고관 부인들이 이씨에게 옷값 대납을 요구했다'는 옷로비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몇천만원짜리 고급 여성복이 오갔다는 소문은 결국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옷로비 사건은 서울지검·국회청문회·특검·대검 등에서 다섯 차례나 실체 규명을 위해 조사를 했으나 사건을 누가 조사했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졌다. 검찰은 '짜맞추기 수사'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급기야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과 청와대 박주선 법무비서관이 사건 조사 보고서 유출과 조작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런 이유로 검찰 관계자들에게 옷로비 사건은 악몽으로 통한다. 전 검찰 총수가 구속된 데다,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마저 들끓자 특검제가 도입되었다. 거기다 옷로비 사건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이형자·영기 자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김태정 전 장관의 아내인 연정희씨 등의 위증죄를 인정해 검찰의 수사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검찰은 이형자씨가 무죄 선고를 받자 A4 용지 90장 분량의 항소이유서를 재판부에 제출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권 바뀌어야 정치적 진실 밝혀질 것"


지난 7월25일 최순영 회장에 대해 외화밀반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는 사람이 많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국세청은 7월23일 대한생명이 1997년 8월 조세 회피 지역인 케이맨 군도에 역외 펀드를 설립해 1억 달러를 빼돌렸다며 최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최회장을 소환해 조사하고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지법 영장 전담 이제호 판사는 "항소심에서 보석이 허가되어 불구속 재판 중인 데다, 재산 국외 도피 부분은 이전 사건에서도 일부 언급되었다"라며 영장을 기각했다. 최회장은 재산 해외 도피 등 혐의로 1999년 11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계류 중인 사건에 혐의가 추가되면 불구속하는 게 보통인데 검찰이 감정적인 것 같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변호사는 "검찰이 비슷한 사건으로 구속되어 형을 받은 사람을 부관 참시하려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 관계자는 "별개 사건으로 고발되어 수사가 필요해 영장을 청구했다. 일반인 같으면 당연히 구속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재벌이 정면 충돌했던 최순영 회장 관련 사건은 단순히 법 집행이라는 측면에서만 보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사건이 석연치 않은 만큼 진실을 가리기 위해 재판이 여러 갈래로 진행 중이다. 옷로비 특검에 관계한 한 변호사는 "정권이 바뀌어야 최회장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지방 대학 재단이사장 교체설 뒤에는 이런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