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톤 트럭' 무한질주, 비명 지르는 팔당대교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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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추척/불법 과적 차량 마구 통행…제2 성수대교 될 판


지난 7월28일 오전 2시 팔당대교 북단에서 굉음이 울려왔다. 작아 보이던 라이트 불빛이 길이 935m인 팔당대교를 가르며 순식간에 남단을 지나쳤다. 마치 탱크가 지나가는 듯한 소음이 뒤따랐다. 팔당대교가 흔들릴 만큼 육중한 과적 차량은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내달렸다. 화물칸에는 거대한 돌덩이(원석)가 실려 있었다. 돌덩이를 고정하는 안전 장치 하나 없이 과적 차량 4대는 연속으로 팔당대교를 질주했다.




10t 화물 차량은 승용차 7만대가 통과할 때와 같은 결과로 도로를 파손한다. 그렇다면 90∼100t짜리 돌덩이를 실은 화물차 20여 대가 매일 팔당대교를 건너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1995년에 개통된 팔당대교의 수명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대개 과적 차량 하면 50t 넘게 싣고 다니는 덤프트럭을 떠올린다. 100t을 넘는 과적 차량은, 한국도로공사 직원조차 '그런 차가 있느냐'며 머리를 갸우뚱할 정도로 흔치 않다. 그러나 오전 1시나 2시쯤 팔당대교에 가면 100t짜리 헤비급 과적 차량이 시속 100km 이상으로 질주하는, 모골이 송연한 풍경을 똑똑히 볼 수 있다.


과적 차량·폭주족의 '해방구'


원석을 실은 과적 차량은 경기도 포천군에서 출발한다. 국내산 대리석의 대부분은 포천군에 분포한 석산에서 채취한다. 채석장은 포천 일대에만 10여 개가 있는데, 원석은 전라북도 익산을 비롯한 남부 지방의 가공 공장으로 옮겨진다. 이 과정에서 과적이 이루어진다.


지난 7월26일과 28일 취재진은 경기도 포천군 일대 10여 군데 채석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과적 실태를 조사했다. 채석장 곳곳마다 직사각형으로 깎아놓은 원석들이 놓여 있었다. 큰 원석 한 개는 20t이 넘으므로 두 덩이만 실어도 40t, 세 덩이를 싣게 되면 60t을 훌쩍 넘는다. 네 덩이 다섯 덩이를 실으면 100t에 가까운데, 채석장을 빠져나오는 차량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화물칸 가득 원석을 싣고 있었다. 도로법에 따르면 총중량 40t이 넘으면 과적 차량 단속 대상이다. 세 덩이만 실어도 단속에 걸리게 된다.


이들이 과적을 하는 것은 운임 때문이다. 많이 실으면 실을수록 운임을 많이 받는다. 1㎥(업자들은 이를 한 사이라고 부른다)당 운임이 결정되는데, 전북 익산까지는 1천5백원 선이다. 1000사이(네 덩어리)를 싣게 되면 한 번 운행에 1백50만원을 받는다. 운전기사 김기중씨(40·가명)는 "일반인은 상상하지 못할 무게다. 운전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싣고 싶어한다"라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IMF 이후 원석 운송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져 과적이 더 심해졌다. 운임 단가가 떨어져 그만큼 더 과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적에 견디기 위해 운행 차량들은 출고와 동시에 개조된다. 100t 가까운 무게를 견디게끔 화물칸에 수입 원목 50∼60개를 잇대어 특수 제작한다. 물론 불법이다. 이런 개조는 포천군 일대 정비소에서 쉽게 할 수 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과적 차량들은 '실크로드'를 개척했다. 원석 과적 차량은 대부분 단속이 뜸한 심야 시간대에 지방 도로를 탄다. 어차피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24시간 단속하므로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포천에서 출발한 과적 차량은 43번 국도인 내촌을 거쳐 광주시·용인시·안성시·천안시의 지방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문제는 한강 다리를 통과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성수대교 붕괴 이후 한강 다리 17개마다 과적 검문소를 설치하고 공익근무요원을 24시간 배치했다. 그런데 어디나 틈이 있기 마련이다. 과적 차량이 한강을 건너는 유일한 틈이 바로 팔당대교다. 다른 한강 다리와 달리 팔당대교는 서울시 관할이 아니다. 경기도 하남시가 관리하는데, 하남시는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심야 시간대에는 단속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지난 6월 말까지 팔당대교 남단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있었던 과적 검문소마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없애 버렸다. 과속을 감시하는 무인 카메라도 설치하지 않아, 팔당대교는 밤만 되면 승용차와 화물차, 폭주족까지 뒤엉킨 고속 도로로 변한다.


첨단 장비·조직력으로 단속반 '농락'


당국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속은 시늉에 그치고 마는 실정이다. 경기도 하남시의 과적차량단속반은 6명이고, 이들에게 지급된 장비는 단속용 승합차와 자동 카메라, 이동식 측중기가 전부다. 공익근무요원 5명과 공무원 1명이 오후 6시까지 단속을 편다. 단속반의 일정을 훤히 꿰고 있는 과적 차량 운전사들은 단속반이 퇴근하는 6시 이후에 팔당대교를 통과한다.


원석 과적 차량의 심야 질주를 보다 못한 하남시도 지난 4월30일부터 5월5일까지 특별 심야 단속을 벌였다. 단속반은 팔당대교 남단 신호등에 승합차를 대놓고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1주일 동안 이들은 고작 1건을 단속하는 데 그쳤다. 하남시 단속반 관계자는 단속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정지하라고 수신호를 보내면, 오히려 더 속도를 내서 달려든다. 죽지 않으려면 피하는 수밖에 없다.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로법상 과적 차량은 적발해서 검찰에 고발하는데, 반드시 무게를 측정해야 한다. 도로법을 훤히 꿰고 있는 운전사들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도주한다. 도주하는 차량을 카메라로 찍으면 되는데, 이들에게 지급된 자동 카메라는 밤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단속반원은 과적 차량을 멀거니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반면에 원석 과적 차량 운전사들은 첨단 장비를 갖추고 조직력을 과시하며 단속반원을 농락한다. 대부분의 원석 차량 운전석 쪽에 안테나가 달려 있는데, 서로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 안테나다. 원석 과적 차량 운전사들은 출발할 때부터 단속에 대비해 진용을 짠다. 보통 4대에서 5대가 출발하면서 40t 미만 차량이 맨 앞에 선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차량부터 과적 차량이 뒤따른다. 맨 앞차가 단속에 걸리면 바로 '피하라'는 무전을 친다. 연락 받은 후미의 과적 차량들은 우회하거나 단속반원이 철수할 때까지 운행을 포기한다. 만일 과적 단속에 걸려 벌금을 부과 받으면 4∼5명이 나누어서 내주는 '동료애'를 발휘한다.


이처럼 '기는' 단속에 '나는' 과적 차량의 게임에서 승패는 뻔하다. 단속반원이 백전백패하니 팔당대교는 밤마다 비명을 질러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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