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사랑하고…미워하며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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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1년 맞는 광양시 해비타트 마을 르포/
32가구 희망의 싹 틔워…생활고 때문에 갈등 빚기도


섬진강을 두고 경남 하동읍과 마주하고 있는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의 평화를 여는 마을은 오는 9월이면 마을을 세운 지 만 1년을 맞는다.




'한국 사랑의 집짓기운동 연합회'(한국 해비타트·이사장 정근모)가 조성한 이 마을에서는 현재 모두 32가구 1백20명이 오손도손 삶을 꾸려가고 있다. 연합회측은 지역 갈등을 해소하겠다며 영남과 호남 출신 각각 16 가구씩을 입주하게 했다. 이 마을을 짓는 데는 이희호 여사·서영훈 당시 민주당 대표·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등 자원봉사자 2천여 명이 동참했다. 정치권의 이런 관심과 해비타트 정신이 결합해 지어진 이 마을에 대해 지금도 행정기관인 광양시뿐만 아니라 신문과 방송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라동 201호 임을용씨(36)는 지난 5월20일 동갑내기 아내 강점순씨(36)와 마을 안에 야외 예식장을 차리고 지각 결혼식을 올렸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예식을 치르지 못하고 함께 살아온 지 7년 만에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안택수 광양경찰서장이 주례로 나섰고, 광양시공무원직장협의회(회장 민점기)와 다압면 직원들이 집기와 앰프를 빌려 주었다. 아들 철웅(10)과 딸 아름(9)은 종이꽃을 뿌리며 화동 노릇을 했다. 내집 마련이라는 소원을 이룬 임을용씨는 현재 광양제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자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집 걱정이 사라지자 '잘 살아 보겠다'는 의욕이 생긴 것이다.


"집이 생기니까 잘 살아보고 싶다"


바동 202호 조호진씨(42) 가정도 지난 3월 아내 김미경씨(39)가 묵혔던 미용 기술을 발휘해 마을 옆에 '평화를 여는 미용실'을 열면서 가정 경제에 숨통이 트였다. 두 아들도 광양다압초등학교에 전학해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고 있고, 남편 조씨는 인터넷 언론인 '오마이 뉴스' 시민 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순천·여수 등지를 떠돌며 무려 열다섯 번이나 이사한 조씨네 가족이 비로소 안정과 평화를 찾은 셈이다. 김미경씨는 "내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할 데 없는 기쁨을 누렸다. 이제는 열심히 일해 잘살면 된다는 목표로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입주자를 선정할 때 3 대 1 경쟁률을 보일 만큼 입주 전쟁이 치열했던 터라 집에 대한 주민의 애착은 대단하다. 대부분이 집 앞에 화단을 조성했고, 자투리 땅만 있으면 고추·오이·가지를 심어 사람 사는 냄새가 솔솔 풍기게 만들었다. 광양시가 기증한 도서가 구비된 마을회관은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이 가능한 주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웃의 도움과 정책적인 배려로 형성된 마을인 만큼 보답 차원의 이웃 봉사도 끊이지 않았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주민의 가족을 위해 헌혈에 나섰는가 하면, 지난 겨울에는 홀로 사는 인근 마을의 노인 가정들을 찾아 김장 김치를 담가 주었다. 지난 7월17일에는 모든 주민이 진주시 명석면 외율리 해비타트 현장을 찾아 하루 동안 자원 봉사에 동참했다.




그러나 평화를 여는 마을도 여느 동네처럼 분쟁과 다툼의 그늘진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개를 키우는 집과 개를 싫어하는 주민이 말다툼을 벌이는 둥, 각 가정의 대표가 모이는 월례회 때마다 사소한 일을 둘러싸고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지난 6월에는 주민들의 분란에 지친 자치회 집행부가 임기를 두 달 앞두고 자진 사퇴해 집행부 없이 마을이 운영되기도 했다. "실패만을 거듭했던 주민들이 서로 융화하지 못해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이 자치회 간부를 지낸 한 주민의 이야기이다. 살아온 방식이 너무 다른 데다, 공동체를 꾸려온 경험이 부족해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희호 여사 다녀간 뒤 뒷말 무성


갈등의 주된 원인은 가난이다. 이웃이 보내온 쌀을 어느 가정에 나누어 줄지, 장학금으로 들어온 돈을 누구에게 지급할지를 놓고서도 이런저런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해 이희호 여사가 마을 공사 현장을 방문한 뒤 '근사한 선물'이 지급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일부 주민들이 정작 '입주 축하 카드'와 비누 세트만 전달되자 '중간에서 떼어먹었다'는 소문을 퍼뜨려 해비타트 관계자와 자치회 임원들을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 40대 주민은 "분쟁이 일어나면 경상도 출신은 경상도끼리, 전라도 출신은 전라도끼리 뭉치는 경향을 보인다. 지역성을 없애자는 좋은 취지로 만든 마을인데도 막상 그렇게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제 주민들의 삶에는 그늘이 많은데도 언론이 평화롭고 즐거운 마을이라고 과대 포장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느끼는 심적 부담과 괴리감도 크다.


현재 이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생활고이다. 입주 조건부터가 집이 없는 저소득층이었던 만큼 이들이 완전히 자활하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더구나 이곳은 자동차가 없으면 살기 불편한 산골이어서 교통비와 생활비가 만만치 않다. 그림 같은 경치에 둘러싸인 전원 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먹고 살 만한 일거리나 직장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자동 201호에 사는 최만오씨(47)는 "노모가 치매를 앓아 불편한 데다 아내 역시 정신 질환 때문에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하는데 막노동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렵다"라고 호소했다.




주민 가운데 일부는 생활고 때문에 한달에 12만여원에 이르는 집값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한 달 1만5천원인 공동관리비를 제때 내지 못하는 가정도 있어 자치회 간부들이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연합회측은 집을 지을 때 입주자에게 5백시간 이상 자원 봉사하도록 하고, 무이자로 빌려준 건축비를 15년에 걸쳐 갚도록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평화를 여는 마을에서 연합회의 자원 봉사 일을 맡았던 홍승현씨(24)는 "지회를 마을 근처에 꾸려 지속적으로 교육과 교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주민들의 생계 대책이 안정적으로 마련되어야만 진정으로 평화를 여는 마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집짓기만이 능사가 아니라 주민들의 자활 의지를 북돋우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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