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 화학공장 증설에 분노하는 여수 민심
  • 여수·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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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시라도 "아닌 건 아닌 거지"/
해당사는 "DJ가 직접 약속한 일" 느긋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 안에 화학제품 공장을 증설하려는 독일계 다국적 기업 자회사인 한국 바스프(주)와 이를 반기는 여수시. 그리고 공해 기업을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환경운동연합 사이에 험악한 기류가 감돈다. 특히 바스프 사 공장 증설은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4억 달러 투자 약속을 받아내 성사된 것이어서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한국 바스프주식회사(대표 유종렬)는 여수산단 확장 단지 16만평에 3천억원을 투자해 중간 화학제품인 TDI(자동차 시트·침대 매트리스 등에 쓰이는 원료 물질) 생산 공장을 2003년 5월까지 증설한다는 계획으로 9월 말부터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바스프는 현재 MDI(단열재·신발바닥재·합성피혁의 원료 물질)를 생산하고 있는데, 중국 등 아시아권에 수출하기 위해 연간 14만t 규모 TDI 생산 공장을 또 세우려는 것이다.


바스프 사 공장 부지는 현재 전라남도가 '외국인 투자 지역'으로 지정한 상태이다. 여기에 입주하면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부지 매입비의 절반인 2백26억원을 지원받는다. 5년 동안 국세와 지방세 전액, 그 뒤 3년 동안 국세와 지방세의 50%를 면제받는 혜택도 누린다.


"화약고에 독가스 공장까지 세우다니"


그러나 여수 지역 24개 환경·사회 단체 연대 기구인 '바스프 독가스공장 유치 반대 범시민위원회'(범시민위·상임대표 김충석 여수지역발전협의회장)는 바스프 공장 증설에 반대하며 벌써 4개월 넘게 1인 시위를 감행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최 열 사무총장 등 전국 47개 지역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단은 지난 8월21일 여수시 진남관 앞에서 '바스프 독가스공장 유치 반대 전국 결의대회'를 갖고 본격적으로 반대 투쟁에 돌입한다고 천명했다. 지역 현안이 전국적인 환경 이슈가 된 것이다.


'포스겐'(카보닐 클로라이드)이라는 맹독성 가스를 이용해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또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범시민위측의 기본 입장이다. 범시민위 강용주 정책위원장은 "바스프 공장이 건설될 곳은 지난해 폭발 사고로 대형 참사를 빚은 호성케멕스를 비롯해 화학공장이 밀집한 지역이다. 30년이 지난 노후 설비들이 가득찬 화약고에 또 독가스 공장을 짓겠다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쓴 포스겐 가스는 100g만 누출되어도 여수 반도 전체가 위험 지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범시민위는 여수시 의원들과 함께 오는 9월18일 독일 현지를 항의 방문해, 독일 환경단체인 '분트'(지구의 벗)와 손잡고 바스프 본사에 쳐들어가 공장 증설 반대 입장을 전할 예정이다. 또 서울의 독일대사관과 전남도청, 그리고 여수 진남관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해 바스프 공장 증설 반대 분위기를 전국화·세계화하겠다는 복안이다.


환경단체들이 공장 증설에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들은 여수시와 전라남도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규정된 지역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무공해 산업도 아닌,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화학 공장에 천억원대에 이르는 세금 감면 특혜를 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시민 생명을 무시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자치단체장은 투표로 떨어뜨려야 한다며 낙선운동을 벌일 태세여서 여수시장과 전라남도지사를 긴장시키고 있다.


여수시로서는 사실 물러날 데가 없는 상황이다. 바스프 사 공장 건설은 대통령이 투자 약속을 받아내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는 사업인 데다, 여수산단이 국가 지정 산업단지여서 자치단체로서는 반대하고 싶어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여수 시민은 바스프 사 문제와 관련해 여수산단이 정작 지역민에게는 큰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환경단체들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이다. 199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산업단지 주변 마을을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땅'이라고 평가해 주민의 이주를 결정했지만 정부의 열의가 부족해 주민 이주 작업은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바스프 사 공장 증설 반대 목소리에는 정부의 이같은 행태에 대한 반감도 섞여 있는 셈이다.


"3천명 간접 고용 효과 있다"


바스프 사는 김대중 대통령과 지난해 3월 인연을 맺었다. 당시 유럽 지역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려고 유럽을 순방한 김대중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해 바스프 사 슈투르베 회장을 만났다. 슈투르베 회장은 여수와 울산 등 바스프 공장에 3년 동안 4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김대통령은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때문에 한국바스프는 여수 공장 증설을 낙관하는 분위기이다. 대통령이 직접 약속했는데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한국 바스프(주) 변완수 기획담당 이사는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대해 "한국화인케미컬과 LG 다우, 금호 미쓰이화학 등 여수산단 내 다른 PDI 생산공장을 제쳐놓고 유독 바스 프사만 문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바스프 공장은 오히려 안전성 면에서 모범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증설되는 바스프 공장에서 유독 가스인 포스겐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철저하게 시공하고 완벽하게 관리할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는 것이다. 1999년 환경부장관이 환경 친화 기업으로 지정했고, 한국품질인증센터가 인증했으므로 안전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바스프는 지역민의 반대 역시 지역 개발과 고용 증대로 돌파하겠다는 복안이다. 여수 지역 건설업체들을 하청업체로 선정하고, 공장이 완공된 뒤 2백10명 정도를 고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협력업체에서 3천명 정도 간접 고용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지역 환경단체들은 여수산단에 외국 기업 하나가 들어와서 기존 공단 인력의 30%에 달하는 간접 고용이 이루어지리라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운동연합 최 열 사무총장은 "청정 해역을 유지해온 것을 자랑하며 2010년 해양 엑스포 유치에 나선 여수시가 독가스 공장을 짓겠다는 것은 난센스다. 아무리 대통령이 결정했더라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되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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