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파리, 60년대엔 기지촌으로 이름 날려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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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이 노래하고 양색시 들끓고


장파리는 1971년 미군 2사단이 동두천으로 옮겨갈 때까지만 해도 강아지도 달러를 물고 다닐 정도로 잘 나가는 기지촌이었다. 북진교 건너편에 연대급 미군 기지가 주둔했기에 장파리에는 자연스럽게 기지촌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극장 하나 없는데, 1960년대에 이미 영화관이 있었다. 단층으로 길 양편에 있는 건물은 거의 클럽으로 사용된 곳이다.




지금도 그때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라스트 찬스'라는 백인 전용 클럽은 폐허로 변한 채 방치되어 있다. 장파리에서는 보기 드문 3층 건물로, 중앙에 큰 홀이 있고, 뒤편에 쪽방이 1백50개 딸려 있다. 이 클럽에서만 양색시가 3백명이나 몸을 팔았다. 조용필도 한때 이곳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장파리 주민들은 아직도 그를 '리틀 조'라고 기억한다. '블루문 홀'이라는 흑인 전용 클럽은 지금 돼지 막사로 사용되고 있다.


옛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최근 장파리는 드라마 촬영장으로 애용되고 있다. 드라마 〈형제의 강〉, 〈봄날은 간다〉가 이곳에서 촬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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