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불똥'에 긴장한 국내 이슬람 신자들
  • 차형석 기자 (papapipi@e-sisa.co.kr)
  • 승인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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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코란, 한 손엔 평화인데…"
"과격 이미지는 서양인의 왜곡"
9월14일 금요일 정오. 서울 이태원 동쪽에 있는 한남동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 '아바아'라 불리는 무슬렘 전통 의상을 입은 아랍인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1시에 열리는 주마(금요)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인 카리드 씨(19)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성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용산소방서 뒷길을 통해 언덕에 있는 이슬람 성원에 거의 이르렀을 때 그는 잠시 멈칫했다. 평소와 달리 용산경찰서 방범순찰대 경찰 8명이 K2 소총을 든 채 정문 앞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리드는 이슬람 신자임을 밝히고 정문을 통과했다. 경찰은 성원으로 들어가는 차량의 트렁크를 일일이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혹시나 폭발물이 있을까 해서이다.


비슷한 시각, 성원내 1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주화 사무차장(39)은 연신 울려대는 휴대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 예배가 정상으로 열리느냐는 문의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대사관의 외교관, 내·외국인 신자 들의 전화였다. "미국 테러 사건 이후 '주식 가격이 떨어졌으니 이슬람이 책임지라'는 항의·협박 전화가 많이 왔다"라고 이씨는 말했다.


한국에는 서울·경기도 광주·전주·부산에 이슬람 성원이 있다. 한국인 신자는 대략 3만 5천명. 외국인 신자는 1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들은 대부분 서남아시아와 중동권 국가 출신으로, 주로 3D 업종에서 일한다.


9월14일 이곳에 온 사람은 6백명이 넘었다. 예배는 오후 1시에 시작되었다. 터키에서 온 선교사 파룩 준불(42)이 기도문을 암송하며 예배를 인도했다. 그는 설교 말미에 이번 사태에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미국 테러 사건은 정치 문제이지 종교 문제가 아닙니다. 전세계 17억 이슬람 신자 중 극히 일부가 저지른 일을 가지고 이슬람 전체를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이슬람교는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실제로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셈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미국 정부 입장만 보도하는 언론에 '불만'


이슬람 신자들은 한결같이 이번 미국 테러 사건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태국 출신으로 한국에 와서 20년째 이슬람 선교사로 활동하는 압둘라 쉬드 씨(55)는 이슬람 전체가 죄인으로 매도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도 이슬람이 과격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이라는 말이 이슬람에는 없다. 이슬람의 호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서양인이 왜곡한 이미지이다. 한국 교과서에도 이 말이 있던데…"라고 말했다.


언론의 보도에 불만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었다. 신양섭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사무총장(45)은 언론이 미국 정부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씨는 "이러다 가는 정말 3차 대전이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사업 때문에 한국에 머무른다는 파키스탄인 이크람 씨(28)는 "우리도 마음이 아프다. 우리에게도 빨간 피가 흐르고 미국인에게도 빨간 피가 흐른다. 사람은 다 똑같다"라고 말했다. 혹시 미국 테러 사건이 또 다른 피의 복수를 부르지 않을지 그는 불안해 했다.


서울 이슬람 성원에는 평온함 속에서 긴장감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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