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조·콜레라…통영 앞바다는 '통곡의 바다'
  • 통영·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pbc@e-sisa.co.kr)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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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조에 콜레라 덮쳐 수산물 유통 '올스톱'…지역경제 완전 마비
남해 연안 어업의 전진기지 경남 통영시. 밤새 건져 올린 싱싱한 활어가 부산·경남의 횟집으로 팔려 나가는 유통 중심지이기도 하다. 통영 최대의 수산물 재래 시장인 중앙시장은 왁자지껄한 경상도 사투리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하루 내내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그러나 그 어디서도 이런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지금 통영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것이 멈추어 서버린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다.




통영 지역은 지난 여름 적조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해상 가두리에 기르고 있던 우럭·참돔·돌돔·방어 등 고급 어류 5백만 마리가 죽었다. 액수로는 45억원어치가 넘는다. 적조가 소멸한 후에도 고기는 계속 떠올랐다. 적조에 약해진 고기들이, 예년에 비해 높은 수온을 견디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 죽은 것이다.


피해 규모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바다 농사의 주기가 깨어졌다는 점이다. 대부분 어종은 6∼8월에 어린 고기를 입식해 다음해 10∼12월께 출하한다. 들여놓은 치어들이 죽어 버리면 다음해 입식할 때까지 가두리를 놀려 두는 수밖에 없다. 올해는 9월 말까지 양식장의 집단 폐사가 계속되어, 심각한 치어 물량 부족을 겪었다. 불량 치어들도 비싼 값에 팔려, 내년 흉작을 예고하고 있다. 피해가 치어에 집중되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다 자란 고기들이 더 많이 죽어 출하기를 앞둔 가두리들도 비어 있다.


성어들이 적조 피해를 올해 유독 많이 본 데에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지난해 성장이 더뎌 출하하지 않았던 일부 물량을 올 봄에 소화하지 못한 탓이다. 다른 해에 비해 1주일 이상 빠른 5월 중순 비브리오 패혈증 주의보가 발령되어 소비가 위축되는 바람에, 그 전까지 통영 지역에서 하루 60t 이상이던 횟감용 출하가 40t 선으로 떨어졌다. 고기들은 이미 다 자란 상태에서 사료값만 축내다가 적조에 죽은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의 어민에게, 지난 8월부터 창궐한 콜레라는 치명타를 안겼다. 통영 지역에서는 9월 13일과 17일, 19일, 28일 등 네 차례에 걸쳐 환자가 7명 발생했다. 이들 중 이 아무개씨(45·통영시 사량면) 등 4명은 어선에서 회를 먹고 감염되어, 통영산 활어가 경북 영천의 기사식당과는 다른 콜레라의 진원으로 밝혀졌다. 활어 거래는 전면 중단되었다. 이 바람에 추석 대목을 바라고 출어했던 어선들이 대부분 조업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동호항과 서호항은 어선으로 뒤덮여 있다. 정박할 자리를 찾지 못한 일부 어선은 바깥 바다에 닻을 내렸다. 거제·고성 등 인근 해역의 어선들도 거의 귀항했다.


이맘 때 고소하고 씹는 맛이 좋아 성수기를 누리는 '가을 전어'가 콜레라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바람에 눈앞에 고기떼를 두고도 그물을 내리지 못하는 어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횟집들은 개점 휴업 상태거나 아예 문을 닫아 걸었다.


겨울 별미로 9월부터 출하되기 시작하는 굴도 때 이르게 서리를 맞았다. 통영 굴 수하식양식수협은 '2002년산 굴 초매식'을 당초 계획했던 9월20일에서 25일로 늦추어 열었다. 그러나 이날 나온 "9월20일 통영 앞바다에서 채수한 물에서 콜레라균이 검출되었다"라는 국립보건원의 발표는 초매식장을 초상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명 백화점과 할인점 등이 즉각 굴 판매를 중단했고, 일본 수출 길도 막혀버렸다. 어민들은 "채수한 곳이 동호항 내의 육지 오폐수 하수구 앞인데도 '통영 앞바다'라고 발표해 청정 해역 전체에 콜레라균이 득실거리는 것처럼 오인시켰다"라며 극렬히 항의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주부들 '탈선 알바', 사회 문제로 떠올라




양식산·자연산 가릴 것 없이 수산물 소비가 끊기자, 통영의 돈 흐름도 끊겼다. 배가 멈추면 경제 전체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양식업자 김 아무개씨(47·통영시 산양읍 곤리)는 "가두리 하나, 배 한 척에 수백 명의 생계가 달려 있는 것이 수산업의 구조이다. 배가 떠야 주유소·어구(漁具)·미끼·얼음공장·부식 공급업체·활어 운반차 등 다른 업종이 움직인다. 양식장이 제대로 돌아가야 치어를 배양하는 축양장과 가두리 제작업체, 그물·사료 업자가 살 수 있다. 바다에서 돈을 건지지 못하면 하다 못해 구멍가게 물건도 팔리지 않는 곳이 통영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주부들이 대거 접객업소로 몰려 나간 사실이 지역 경제지표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이 아무개씨(26·통영시 도산면)가 노래방에서 사귄 주부의 남편을 살해하는 등 주부들의 '탈선 아르바이트'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통영시는 7월부터 '변태 노래방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건당 10만원씩 신고 포상금까지 걸었지만 주부들의 시간제 접대부 취업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적조 피해에 대한 지원마저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통영시 관계자는 "현장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경남도와 중앙재해대책위원회 심의를 거쳐 예산을 확보하자면 올해 안에는 어민에게 돈을 쥐어주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 바람에 '피해가 예상 외로 커 올해는 정부가 보상을 안해 주려고 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도는 등 민심마저 흉흉하다. 이 아무개씨(55·통영시 산양읍)는 "1억원어치가 넘게 고기가 죽어도 보상금은 7백만∼8백만 원이다. 그것마저 제때 내주지 않아 빚돈을 얻어 치어를 사 넣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확히 말하면, 적조 피해에 대해 정부가 지급하는 돈은 보상금이 아니라 '재해복구비'이다. 다 자란 고기가 죽어도 치어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한다. 그것도 양식장 규모에 따라 30∼60%만 무상 지원하고 나머지는 융자나 어민 부담이다.


어민들은 '갈 데까지 간' 통영 지역의 경제가 곪아 터질 시기로, 오는 11∼12월을 꼽았다. 배 구입과 가두리 설치 등으로 대부분 1억원 규모의 빚을 안고 있는데, 10월이면 지난해 농협과 수협 등에서 꾼 치어 입식자금 상환기로 접어든다. 이를 갚지 못하고 도산하는 어민이 속출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크고 작은 부채에 서로 맞보증을 선 터라, 한 집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줄줄이 쓰러질 마을이 적지 않다. 어민들의 가슴에는 적조보다 더 붉은 피멍이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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