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입국 중국인 수장 사건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nafree@e-sisa.co.kr)
  • 승인 2001.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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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간데 없고 소문만 흉흉/생존자들 침묵으로 진상 '깜깜'
지난 10월8일 밀입국자 60명을 중국 어선으로부터 인수한 여수 선적 제7 태창호 선장 이판근씨(43)와 선원 7명은 완도 근해에 이르자 선미 쪽에 있는 1평 남짓한 그물 창고에 한족 25명을 밀어넣었다. 그물 창고 위쪽에 육중한 나무 덮개가 있었는데도 해양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비닐로 포장해 묶은 그물뭉치들을 창고 위에 쌓아 결과적으로 이들을 죽인 셈이 되었다.




사망자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도 그물과 어구의 무게가 1t이나 되어 나무 덮개를 밀어올릴 수 없었다. 이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창고에 갇힌 지 3시간여 만에 연탄 가스에 중독되듯 무기력하게 하나 둘 질식사하고 말았다.


바로 옆 2.5평 물탱크에 숨었던 생존자 35명도 창고에 갇힌 지 2시간이 지나자 숨을 쉬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밀입국자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선원들이 출구를 열지 않았다면 이들도 일부 사망했을지 모른다. 이상이 여수 밀입국 중국인 수장 사건의 전모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산 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일 뿐이다.


현재 여수출입국관리소에 보호 중인 한족과 조선족 밀입국자 35명은 언론과의 접촉을 피한 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 힘들다.


특히 최초 25명의 주검을 발견한 조선족 밀입국자 김만수씨(31)는 한국어가 유창해 '선원급 대우'를 받으며 숨진 이들에게 물 심부름을 했고, 시체를 선원들과 함께 옮긴 것으로 알려져 당시 밀입국자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전모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김씨는 송환 뒤 중국 공안부의 추궁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서인지 구체적인 진술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 부두 주변에서는 확인할 길 없는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고 있다. 배 안에서 무자비한 폭력 행위가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여수해양경찰서(서장 옥종순)는 국내 알선책 여사구씨(53·여수시 경호동)를 공개 수배하고, 중국 공안 당국의 협조를 얻어 중국내 조선족 알선책으로 알려진 김홍화씨(50)와 중국인 아재모 씨를 찾고 있다. 초음파 탐지기와 다이버를 동원해 시체 수색에도 전력을 쏟고 있지만 시체 인양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 한 해 중국인 밀입국자들이 여수출입국관리소에서만 무려 5백90명이 '강제 퇴거' 된 것을 고려할 때 이제는 정부가 밀입국자들에 대한 검거 위주의 대응 방법을 바꿀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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