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교육청 언론 홍보비 내역 입수 · 공개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nafree@e-sisa.co.kr)
  • 승인 200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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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촌지 연 1억4천/교육감 판공비 한 해 2억원
지방 교육청이 매년 언론기관과 기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홍보비를 뿌리는지 가늠할 수 있는 예산 자료가 최초로 공개되었다. 전라북도교육청(교육감 문용주)은 '참여자치 전북 시민연대'(전북시민연대·공동대표 박창신 외 5명)가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라고 한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7월 전국 16개 교육청 가운데 처음으로 언론홍보 예산의 집행 항목을 공개했다. 특정 언론사와 기자에게 건넨 상세 내역을 밝히지 않고 연도별·월별 집행 내역을 공개하는 데 그쳤지만, 공공기관의 언론홍보비 내역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23일 열린 전북도교육위원회 행정사무 감사에서는 "교육청의 무분별한 홍보 사례비는 뇌물성 돈에 가깝다"라는 교육위원의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42쪽 인터뷰 참조).




〈시사저널〉은 대부분의 전북 지역 언론과 방송이 보도를 기피한 언론홍보비 집행 자료를 전북시민연대의 협조를 얻어 최근 입수했다. 우선 1999년과 2000년 전북도교육청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보면 '촌지'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전북도교육청은 1999년 2월 특집 보도 사례금 1백50만원(2월4일), 신문 창간 축하 화분 20만원, 방송 출연 사례금 23만원(2월5일), 홍보격려금 1백80만원(2월9일), 취임 2주년 특별 홍보 격려금 2백20만원, 교육실적 홍보 격려금 2백40만원(2월19일), 언론인 격려 1백60만원(2월26일) 등 언론홍보비로 9백93만원을 현금 지출했다. 단순한 식사비를 제외하고도 2월 한 달 동안 천만원 가까운 돈이 집행된 것이다.


1999년 5월에는 지방 언론인 지역간담회비 65만원(5월4일), 언론 관계인 음료 제공 60만원, 언론사 중견 간부 초청 오찬 52만원, 언론관계자 오찬 8만원, 언론사 전별금 10만원(5월10일), 홍보격려금 1백50만원, 홍보사례금 50만원, 언론사 전별금 30만원(5월15일), 언론체육대회 30만원(5월28일) 등 다양한 명목으로 4백55만원을 지출했다.




1999년 추석 무렵 '떡값'으로 추정되는 돈을 지출한 증거도 드러났다. 전북도교육청은 추석을 6일 앞둔 9월18일 하룻 동안 언론홍보비 명목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1천4백80만원(현금)을 지출했다. 기자들 오찬과 만찬 등 식사대접비 액수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12월의 경우 오찬·만찬 경비로 열여덟 차례 7백20여만원을 지출했다.


전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점심·저녁 한 차례 밥값이 50만∼70만 원에 이르는 데 대해 "교육청에 출입하는 지방 신문·통신·방송 기자만 19명이다. 1인당 3만원씩만 계산해도 60만원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북시민연대는 "밥을 한 달에 열여덟 번이나 먹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집행 내역을 밝히기 힘든 촌지성 돈을, 액수를 짜맞추기 위해 가공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전북도교육청은 이같은 언론인 오찬·만찬과 언론홍보비 등 '교육홍보관리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1999년에는 8천9백40여만원을, 2000년에는 무려 1억4천5백90여만원을 사용했다.


촌지 성격의 언론홍보비 지출에 대해 전북도교육청은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전북도교육청 오직환 기획관리국장은 지난 10월23일 전북도교육위원회 행정사무 감사장에서 "보도사례비는 교육청 홍보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한 기자에게 담당 직원이 직접 전달한다"라고 밝혀 사실상 촌지를 건네고 있음을 시인했다. 전북도교육청 권진홍 총무과장은 "특집보도 사례비는 언론사의 총무부서 통장으로 입금한 뒤 영수증을 받아놓는다"라고 말해 지면을 대폭 할애한 특집 기사 성격의 홍보 기사에 대해서는 보도사례비가 지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집 사례비는 언론사 총무부 통장에 입금"




전북도교육청의 막대한 언론홍보비 지출과 관련해 전주에서 활동하는 한 기자는 "출입 기자들에게 지출됐다는 보도사례비나 격려비 중 일부는 팀장이나 데스크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 수백만원 단위의 보도사례비는 사실상 취재 기자가 아니라 데스크나 사장에게 전달되었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또 "수백만원이 보도사례비로 건네졌다면 단순한 촌지를 넘어선다"라며 교육청 출입 기자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도교육감이 사용하는 판공비 사용 실태도 주목할 만하다. 전북시민연대가 지난 9월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교육감은 판공비를 2억3백여만원 사용했는데 증빙 자료가 하나도 없는 현금 지출이 1억9백만원(전체의 53%)에 달했다. 행정자치부 예산편성지침인 현금 지출 범위 35%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전북도교육감은 특히 교육청 업무 기간이 아닌 일요일과 국경일에 5백80만원을 썼고, 1999년에는 단란주점 등에서 3백60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시민연대는 "도교육청은 판공비를 교육·유관기관 관계자와 만나거나, 언론관계자 간담회 등을 여는 데 썼다는 불분명한 이유를 대고 있으며, '교육 행정 발전 및 현안 사업 추진에 지속적인 협조를 당부했다'는 말로 거의 모든 지출 결의서를 작성했다. 한마디로 원칙 없이 주먹구구 식으로 집행했다"라고 지적했다.


김남규 전북시민연대 시민감시국장은 "교육청 총무과 소관 업무추진비 원장을 입수했지만 그 내용은 지워져 있거나 드러나지 않았다. 언론인 관련 촌지는 옛날 안기부 예산처첨 주요 부서에 분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전북시민연대는 지난 8월7일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사생활 보호' 조항을 이유로 업무추진비 상세 내역 공개를 거부한 전북도교육청에 대해 '공보관실 판공비 공개 거부 취소 처분'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전북도교육청은 또 내년 예산 1조2천8백억원 가운데 업무추진비로 1억1천5백만원을 책정하고, 이 가운데 언론홍보 간담회 추진비용으로만 2천7백여만원을 계상해 판공비 감축이라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북도교육청 언론홍보비 파문이 커지자 19명에 이르는 전북도교육청 출입 기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들이다. 출입기자단의 한 관계자는 "1999년과 2000년 홍보비는 현재 교육청을 출입하는 현직 기자들과는 무관하다. 올해 기자실은 추석 떡값도 거절했고, 기자실 개방도 검토하는 등 자정운동을 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전북도교육청 출입 언론사는 〈전북일보〉 〈전북도민일보〉 〈전주일보〉 〈전북제일신문〉 〈전북매일〉 〈새전북신문〉 전주KBS 전주MBC 전주CBS JTV 연합뉴스 등 신문·방송·통신 11개 사이다. CBS와 연합뉴스 〈새전북신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2명씩 총 19명이 출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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