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김이 되살려낸 KAL기 사건 '불씨'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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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안보 이용' 의혹 눈초리…
희생자 가족, 진상규명위 만들고 재조사 촉구
지난 11월29일 오후 1시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원지는 공원 한편에 자리 잡은 'KAL 858 희생자 위령탑.' 이날 공원에서는 1987년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사라진 대한항공 858기의 승객과 승무원 1백15명을 기리는 14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희생자 가족 70여명이 차례로 헌화했고, 북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한 일부 가족은 위령탑 뒷면으로 향했다. 그들은 위령탑 뒤쪽에 새겨진 자식과 남편의 이름을 쓰다듬으며 오열했다.




그러나 차옥정씨(64)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대한항공 조종사였던 남편 박명규씨를 잃은 차씨는 오전 10시쯤 남들보다 먼저 행사장에 도착해 차분히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추모제에 앞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통일연대·민주노동당·민주노총 등 재야 시민단체와 희생자 가족 10여명은 '김현희 KAL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정부에 진상 규명을 위한 재조사를 촉구했다.


1987년 11월29일 오후 2시,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기가 사라졌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항공기 실종 이틀 만에 중간 기착지 아부다비에서 내린 승객 11명 가운데 남녀 2명을 수상히 여기고 추적했다. 한·일 공조 수사로 이들의 여권이 위조된 것을 확인하고 바레인 공항을 빠져나가기 직전에 붙잡았다. 붙잡힌 하치야 신이치(김승일)는 조사도 받기 전에 음독 자살했고, 하치야 마유미(김현희)는 음독을 기도했으나 죽지 않았다. 극적이게도 13대 대통령 선거가 있기 하루 전날(12월15일) 마유미는 자해방지용 재갈이 물린 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노태우씨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뒤 1988년 1월15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북괴 노동당 조사부 소속 여자 특수 공작원 김현희가 김정일의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안기부는 증거로 그녀의 자필 진술서와 1972년 11월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에 앞서 우리측 장기영 대표에게 꽃다발을 주는 어린 김현희 사진을 제시했다.


희생자 가족 대부분은 정부 발표에 수긍하지 않았다. 희생자 가족들은 김현희의 진술 외에는 폭파와 관련한 직접 증거가 없다며 반발했다. 특히 1백15명의 유품이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자, 청와대·민정당·평민당 등 관계기관에 수 차례 진정했다. 그때마다 '검토하겠다'는 똑같은 답변만 되풀이해 들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유족'이라는 말을 쏙 빼버렸다. 사고 원인도 불분명한데 유족·유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항변이었다. 가족들은 '대한항공 858 가족회'를 구성해 진상 규명 활동에 들어갔다. 진상 규명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사건 발생 초기부터 줄기차게 해왔던 셈이다. 당시 안기부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가족회를 감시하고 협박까지 했다고 가족들은 주장했다. 초대 회장을 맡았던 권기호씨(75)에 따르면, 가족들이 모임만 가지면 귀신같이 안기부 직원이 찾아와 '조용히 있는 것이 낫다'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권씨는 "가족들은 목숨을 내놓고 활동했다. 정부가 구린 데가 없으면 왜 그랬겠느냐"라고 분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대신 가족회 내부에서 현실론이 대두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남편·아들이어서 경제적 타격이 만만치 않았다. 가장이 사라진 가정에 급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였다. 가족들 사이에서 진상 규명보다는 보상을 우선 요구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재 가족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창씨(66) 역시 보상 문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의 공식 발표마저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일단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특별법 제정을 통해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아야 한다"라고 김씨는 주장했다.


이처럼 사그라지던 진상 규명의 불씨는 아이러니컬하게 안기부가 되살렸다. KAL 858기 사건과 같은 해에 일어난 '수지 김' 살인 사건이 안기부에 의해 공안 사건으로 둔갑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안기부가 정권 안보를 위해서 수지 김 사건을 제멋대로 은폐하고 왜곡한 것을 보면서 'KAL기 사건도 혹시나'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 것이다. 가족들의 의혹에 현준희 전 감사원 감사관이 논리를 제공했다. 1996년 효산 콘도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중단 의혹을 폭로해 해직당한 현준희씨는 14년 동안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사건을 추적해 왔다(42쪽 상자 기사 참조). 진상 규명 요구에 인권단체도 함께 했다. 지난 11월23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천주교 인권위원회도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장 김형태 변호사(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는 "내가 김현희씨 변론을 맡았다면 무죄를 주장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자백 외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또한 아부다비 공항에서 김현희씨 일행과 함께 내린 탑승객 11명을 왜 지금도 공개하지 않고 있는지, 사고 원인을 밝힐 블랙박스 수색 작업을 10일 만에 왜 중단했는지 이유를 밝히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김현희, 희생자 가족회에 인세 8억5천만원 전달




진상 규명 요구가 확산되고 있지만 희생자 가족들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11월29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추모제에 초대된 자유민족회의 이철승 대표는 "진상 규명 요구는 김정일이 사주한 것이다. 이미 김정일의 테러라고 밝혀진 마당에 무슨 진상 규명이냐"라며 이념 논쟁으로 몰아갔다. 안기부 후신인 국가정보원 관계자도 김형창 회장을 만나 "제기한 의혹은 유언비어 수준이다. 당시 정부 발표가 맞다"라고 해명했다. 김현희씨에게서 증언을 새로 듣기도 쉽지 않다.


김씨는 지금 서울에 살고 있지만 주민등록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1997년 12월 전 안기부 직원 정 아무개씨(42)와 결혼한 뒤 그녀는 지난해 10월 아들을 출산했다. 출산한 뒤 혼인신고를 하면서 그녀는 이름을 바꾸어버렸다. 그녀는 '대박'을 터뜨린 수기집 인세 8억5천만원을 결혼하기 직전 가족회에 전달했다. 그녀로서는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던 셈이다. 가족회 김은제 총무는 "법인을 설립하는 데 사용하려다 여의치 않아 올해 초 가족들에게 8백50만원씩 나누어 주었다"라고 말했다. 이로써 가족회가 공식으로 그녀에게 진상 규명을 촉구하기도 옹색하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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