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이 만난 사람] 1% '나눔 운동' 참여자들
  •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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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는 1%'가 만드는 100% 사랑/
기초생활비 쪼개 내는 장애인도
경기가 나쁘기는 나쁜 모양이다. 불우 이웃을 돕는 단체나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잔뜩 그늘이 졌으니 말이다. 한 단체의 직원은 '작년에 비해 모금액이 절반 이상 줄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남을 돕는 일은 경기와 별 상관이 없다. 이타심만 있으면 지갑이 아무리 얇아도 남을 돕는다. 지난 12월17일 오후 서울 연세대동문회관에서 열린 '나눔의 식탁, 당신이 희망입니다'(나눔의 식탁)에 모인 '천사' 100명이 그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서울 상봉동에 사는 한윤학씨(46)는 손바닥만한 월셋방(5만원)에 사는 중증 장애인이다. 17년 전 버스 운전사로 일하다가 고혈압으로 왼쪽 팔다리와 오른쪽 눈을 못 쓰게 되었다. 그 바람에 결혼도 못하고 아직까지 혼자 산다. 변변한 수입이 있을 리 없다. 정부가 주는 기초생활 보장비 20만원이 전부다. 그는 그 돈으로 "한 달을 버틴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한씨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생겼다. 돈 가운데 일부를 떼어 들고, 한 달에 한 번 꼭 은행에 들르는 것이다. 1% 나눔운동에 기부하기 위해서이다. 금액은 2만원. 있는 사람에게는 '껌'값이겠지만 그에게는 총수입의 10%나 되는 거액이다. 그는 "10년 넘게 나라의 도움만 받다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이 남을 돕는 것을 보고 돈을 부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한씨는 외롭고 불운해 보였다. 앉을 때마다 오른손으로 왼쪽 다리를 접어야 했고, 밥 짓고 빨래하는 일을 오로지 한 손으로 해야 했다. 방도 그의 삶처럼 어둡고 누추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비 온 다음날 아침처럼 더없이 환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돌아서는 기자에게 그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한 말이다.


지난 8월 초 한 아이가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을 방문했다. 아이는 가슴에 빨간 돼지 저금통을 꼭 껴안고 있었다. 네살배기 안재서군(서울 서초동)이었다. 재서는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저금통을 재단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통통한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랐더니 꼬깃꼬깃한 지폐와 동전이 9만1백90원이나 나왔다. 어른들이 어떻게 돈을 모았느냐고 묻자 재서는 "사고 싶은 거 정말 많았어요. 근데 엄마 아빠가 돈을 모으면 좋은 데 쓸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꾹 참고 모았어요"라고 말했다.


네살짜리 아이가 내놓은 '사랑의 저금통'




아빠 안경환 교수(서울대·얼마 전 저서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의 인세 1%를 기부했다)에 따르면, 재서는 만 두 살 때부터 저금통에 동전 넣는 법을 배웠다. 재서는 기특하게도 '이 돈 모아서 무엇 할 거니?' 하고 물으면 늘 '엄마 아빠 없는 아이 줄 거에요'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일까. 재서는 돼지 저금통을 기부한 날 저녁에 부모에게 항의성 질문을 했다. '왜 돈 받는 사람이 모두 어른이냐'고. 아빠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반드시 전달된다고 말해 주었지만, 재서는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는 눈치였다.


얼마 전부터 재서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저금통에 돈 넣기를 꺼리는 것이다. 심지어는 돈을 감춘 채 저금통에 넣었다고 거짓말도 했다. 돈으로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사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생긴 버릇이다. 부모들은 고상한 말로 아이를 설득했지만 단맛에 길든 아이의 혀를 다스릴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부모가 내놓은 처방이 절묘했다. 저금통을 2개 사주고, 하나는 공익을 위해 하나는 사익을 위해 저금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부모는 아직 어느 저금통이 먼저 찰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을 위해 저금하는 어린이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파라과이에 사는 에이크족은 평등하기로 소문 난 종족이다. 에이크족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그들은 다른 종족과 달리 자기가 잡은 고기를 이웃들에게 후하게 나누어 준다. 이유는 분명하다. 일종의 호혜주의적 행위인데, 오늘 행운을 얻은 사람이 내일의 불운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두는 것이다. 이것은 흡혈박쥐가 피를 구하지 못한 동료에게 여분의 피를 토해주는 것과 같다(매트 리들리 지음 〈이타적 유전자〉).




서울 대림역 근처에서 CT 숯불닭바베큐를 운영하는 문인근씨(52)가 꼭 그렇다. 그는 자기가 얻은 수익을 이웃에게 후하게 나누어준다. 예컨대 한 달 매출액이 5백만원이면 그 가운데 10%를 뚝 떼어 건넨다. 에이크족처럼 미리 '보험'에 가입해두는 것이다. 그는 "내가 조금 여유 있을 때 남을 도우면, 언젠가 나나 내 자식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의 이웃돕기는 '가난과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어릴 때 그는 가난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다. 가방 끈이 짧은 전남 장흥 사람의 서울살이는 뻔했다. 예식장 사환·노점상…. 살림이 핀 지는 겨우 10년밖에 안되었다. 노점을 해서 번 돈으로 간신히 호프집을 차렸는데, 타고난 성실함 덕분에 수입이 쏠쏠했다.


꽤 오래 전에 문씨는 텔레비전을 통해 서울 난곡에서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자매 이야기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불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익명으로 자매에게 돈을 보냈다. 그것이 나눔의 시작이었다. 이후 선행은 더 많이, 더 넓게 지속되었다. 지난 1월에는 아름다운재단의 1% 나눔운동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굳이 1%를 고집하지는 않고 있다.


현재 그는 다섯 군데 시설과 단체에 후원금을 낸다. 금액은 전체 매출액의 10%. 그런데도 그는 자기가 그 돈을 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는 "내 집에 오는 손님들이 내는 것이다. 나는 중간에서 다리 역할만 할 뿐이다"라고 겸손해 했다.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답게, 그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얻은 것이므로 사회에 그대로 환원할 생각이다. 푸근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까. 그 날 강추위 속에서도 기자의 마음은 내내 훈훈했다.


그 외에도 나눔의 식탁에 참석한 사람은 많다. 서울 충무로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천중씨(53)는 지난해 10월 100만원을 기부하면서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김씨의 선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봄 어머니 제삿날 일곱 형제를 설득해 1% 모금운동에 참여시켰다. "큰 부담이 안 된다. 하루에 담배 한 갑 덜 피고, 술 한잔 덜 먹으면 된다는 말이 주효했던 것 같다"라고 그는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1% 나눔운동 때문에 서울·부산·대전·제천 등지에 흩어져 사는 여덟 형제들이 만날 기회가 늘어났고, 그만큼 우애도 깊어졌다.


달마다 이름 바꿔 돈 내는 익명 기부자도


그외 나눔의 식탁에는 〈바이올렛〉 인세 1%를 기부한 소설가 신경숙씨, 끼 1%를 기부한 탤런트 차태현·박진희·이의정 씨, 개그맨 박경림·박수홍 씨도 참석했다. 이들 연예인은 행사장의 분위기를 돋우는 데 자신들의 끼를 아낌없이 발휘했다.


나눔의 식탁에는 초대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재단 사람들이 특별히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송금하는 이 이름 모를 기부자는 다달이 이름이 바뀐다. 첫 번째 이름은 '고생 많으시죠'였다가, 그 다음은 '작은 사랑, 큰 기쁨' '소중하게 쓰세요'로 바뀌었다. 지난 달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송금해 왔다. 아름다운재단 임영신 간사는 "이 1%의 주인을 찾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가 쓰는 이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아아, 돈, 돈! 이 돈 때문에 슬픈 일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하고 탄식했다. 그러나 쓰기 나름이다. 돈은 아름답게 나누면 사람을 감동시키고 미소짓게 만드는 향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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