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를 인권 재활의 땅으로!"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nafree@e-sisa.co.kr)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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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정부 배상·명예 훼복' 특별법 청원 추진··· 학살 원생 위령탑 건립도
소록도가 인권운동의 새로운 무대로 주목되고 있다. 학계·의료계·사회단체 인사들로 구성된 ‘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소사모·대표 김신곤 전남대 의대 교수)은 현재 인권 침해에 대한 정부의 배상과 환자들의 명예 회복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 제정 청원을 추진하고 있다. 소록도병원 원생 자치회(회장 강대시)도 1945년 광복 직후 병원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학살당한 원생 84명에 대한 위령비 건립을 올해 8월까지 마칠 계획이다.


광주MBC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지난 12월 19·20일에 특집 다큐멘터리 2부작 <아! 소록도>를 방영해 소록도의 한 맺힌 역사를 재조명하고, 광복 이후에도 한센병 환자에 대한 단종(斷種·생식 능력 제거)이 계속 강요되어 왔다는 충격적인 사례를 고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86년 동안 버려진 천형(天刑)의 섬으로만 여겨져온 ‘인권의 사각지대’ 소록도에 희망의 빛이 비친 것이다.


이제는 한센병 환자들의 실버타운이 된 국립소록도병원(원장 김윤일)을 인권운동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2001년 3월31일 창립된 소사모였다. 소사모는 첫 사업으로 나이 든 환자들의 소원인 고향 방문을 추진했다. 소록도 중앙교회에서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선진 복지 정책 세미나도 열었고, 소록도에 철쭉꽃동산도 만들었다.



소사모의 인권운동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1년 5월11일 일본 구마모토 지방법원이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한 것은 인권 침해’라고 규정하고 일본 정부에 보상금 18억 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뒤부터였다. 소사모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한센병 환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정부 차원의 항소도 포기하자, 이미 1940년대에 한센병 치료법이 개발되어 전염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우리 정부가 1962년까지 환자들을 강제로 격리한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또 일제 때부터 소록도에 ‘모집’(격리 수용)된 90명에 대한 피해 보상과 함께 현재 소록도에 살고 있는 한센병 환자 8백여 명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특별법(국립 소록도병원 입소자 등의 피해에 대한 진상 파악과 그 배상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소사모 회원들은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일본 구마모토 현을 방문해 한센병 환자들의 국가 상대 피해보상 청구 소송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환자들을 처음 격리 수용한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일본의 인권운동 단체들에 연대하자고 요청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소사모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특별법 청원안은 환자들에게 피해를 배상하고 소록도에 인권복지센터를 건립하며, 1927년부터 강제 단종을 시술한 검시실(檢屍室) 등 인권 유린 현장들을 보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소록도의 유적과 인권 유린 현장은 보존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때 조선 총독이 머물렀다고 하는 구락부 건물과 바닷가에 위치한 옛 화장터는 1930년대에 지은 낡은 건물이라는 이유로 이미 철거되었다.


정근식 교수(전남대·사회학과)는 <소록도를 다시 생각하며>라는 칼럼을 통해 ‘소록도는 그 자체로 한국 최고의 역사 박물관이다. 감금실·해부실(검시실) 건물들은 사적으로, 식생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관계자의 부주의나 예산 부족으로 소록도의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파괴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고흥군은 골프장 지어 관광지로 만들 생각


당사자인 원생 자치회도 명예 회복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소록도 원생 자치회는 ‘소록도 원생 84인 학살사건 발굴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12월8일 소록도병원 앞마당에서 희생자 유골 발굴 작업을 벌였다.


원생들은 이번 발굴에서 1945년 8월21일 소록도병원 운영권을 둘러싼 암투 때 직원들과 치안대에게 살해된 주민 대표 84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잘린 정강이뼈 조각과 시체에 불을 질렀던 송탄유(松炭油) 뭉치를 발견했다.


원생 자치회장 강대시씨(62)는 “학살되었다고 알려진 인원은 84명이지만, 원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8월 20일과 21일 무려 1백75명이 사라졌다. 억울한 혼령을 추모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여 8월까지 위령비를 세우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과 복지의 새로운 메카로 정립하려는 소록도의 앞날이 꼭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소록도가 속한 고흥군은 도양읍에서 소록도를 지나 거금도로 이어지는 연륙교를 활용해 소록도를 골프장과 호텔이 있는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인권 유린 현장을 보존하고 인권복지센터를 조성해 소록도 전체를 살아 있는 교육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소사모와 고흥군의 시각 차는 크다.

김덕모 소사모 집행위원장(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은 “우리 사회는 이제 5·18 항쟁이나 민주화운동 보상 등 20세기형 인권 문제에서 휴머니즘에 입각한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로 관심의 폭을 넓혀야 한다. 소록도는 보여주는 관광산업이 아니라 느끼고 깨우치는 인권 교육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소록도가 인권의 중요성을 일깨울 공간으로 주목되고 있지만 환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인권 체감지수’는 아직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원생자치회의 한 간부는 “최근에도 소록도와 마주한 도양읍의 한 식당에서 출입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 인간으로 존중받으려면 아직 멀었다”라고 한숨 짓는다. 강대시 자치회장은 “일본 소송의 주역은 한센병 환자였던 재일교포 김태구씨였다. 지금 소사모가 준비하는 특별법이나 소송도 원생들이 원고가 되어 주도하고 뜻있는 이들이 지원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했다.


1년 2개월 동안 전국의 한센병 정착촌과 일본·미국 취재를 통해 특집 다큐멘터리 <아! 소록도>를 제작한 광주MBC 김 휘 PD는 “선진국은 원생들이 관리의 주체가 되고 병원은 지원만 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미국처럼 의학 치료 못지 않게 사회 치료를 중시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와 병원 당국이 평균 연령 71세에 달하는 소록도 원생들의 자연사만을 기다리는 현재의 수동적인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늘 세상 밖으로 밀려나 있던 소록도 사람들, 일제가 만들어낸 세계 최대의 한센병 요양원이었던 소록도 환자들이 86년 만에 ‘인간 대접’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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