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총' 10만 정 나돈다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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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포상·미군부대에서 흘러나와 …공기총 개조 ‘투투총’에 밀수품까지 활개
세밑에 터진 강력 사건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지난해 12월11일 엽총을 든 복면 강도가 대구시 달서구 월암동 중소기업은행에 침입했다. 3분 만에 1억2천6백만원을 챙긴 범인은 은행 밖에 세워둔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12월21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둔산지점 지하 주차장에서 이번에는 권총을 든 2인조 복면 강도가 은행 직원 김 아무개씨(46)를 살해하고 현금 3억원이 든 돈 가방을 훔쳐 달아났다. 열흘 동안 터진 2건의 총기 사건에 경찰은 바짝 긴장했다. 연말 연시 특별 방범 활동이 무색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




경찰은 두 사건의 용의자를 검거하더라도 긴장의 고삐를 놓지 않을 태세다. 연쇄 방화처럼 모방 범죄가 꼬리를 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조짐이 나타나, 12월23일 경찰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총포사 총을 훔치려던 서 아무개씨(28)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 서씨는 은행을 털기 위해 먼저 엽총을 훔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연이어 터진 사건은 우리나라도 총기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 민간에 유통되는 총포는 모두 39만4천3백98 정으로 공기총이 30만2천6백24 정, 엽총이 3만6천4백73 정, 권총이 1천7백29 정이다. 2001년 9월1∼30일 경찰이 벌인 불법무기자진신고기간에 접수된 총기는 무려 4만8천61정이나 된다. 국가정보원(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 관계자는 불법으로 밀매되는 총기는 파악하기조차 힘들다고 말한다. 대략 10만 정 정도로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12월27일 서울의 ㅅ 총포사. “엽총보다 센 투투총을 구입할 수 있나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총포사 사장은 머뭇거렸다. 그는 “우리는 불법 총기를 취급하지 않습니다”라며 단호했다. 한참 망설이다, 그는 연락처를 남기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처럼 전국에 산재한 천여개 가까운 총포상 가운데 일부가 불법 무기를 거래한다. 수렵용·호신용 총기를 취급하는 총포상은 경영난을 이유로 밀거래 유혹에 빠진다. 총포상을 통한 밀거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에서 밀거래되는 총기류는 권총·22구경 소총·엽총이 주류다. 총포상을 통해 유통되는 불법 총기는 이 가운데 주로 22구경 소총이다. 독일제 라이플 소총, 벨기에제 브로우닝, 미국제 윈체스터, 중국제 노링코가 대표적이다. 불법 개조한 공기총도 밀거래되고 있다. o 총포사 김 아무개 사장은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라고 항변했다. 그는 한번 수렵에 맛을 들인 사람은 점점 성능이 좋은 총을 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기총에서 엽총, 그러다가 불법 외제총이나 개조된 총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런 불법 무기가 수렵용이 아니라 살상용으로 범행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IMF 이후 생계형 범죄와 함께 총기 사고도 부쩍 늘었다. 1997년 29건이던 총기 사고는 1999년 39건, 2000년에는 48건(11명 사망)으로 증가했다.

총포상과 연계된 밀매 조직은 크게 두 부류이다. 해외 밀매 조직과 연계한 국내 밀매 조직, 그리고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총기를 불법으로 개조하는 국내 개조 조직이다. 해외와 연계된 밀매 조직이 ‘기업형’이라면,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공기총이나 엽총을 개조하는 조직은 ‘가내수공업형’이다.

기업형 밀매 조직은 러시아 마피아·중국 삼합회 등 국제 범죄 조직과 연계되어 있는데, 조직원을 검거하더라도 윗선에 대해 철저히 입을 다물어 일망타진하기가 어렵다.


불법 개조는 한때 서울 영등포나 부천 등 수도권 일대 공작소에서 이루어지다가 지금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가장 많이 개조되는 총이 5.5mm 구경 단탄 공기총이다. 5.5mm 단탄 총알을 사용하는 이 공기총을 투투탄이 발사되는 소총으로 개조한다. 투투탄이란 지름 0.22인치(5.6mm) 탄을 일컫는데, 이 탄환을 사용하는 윈체스터·노링코·브로우닝 소총 등을 투투총이라고 부른다.


권총 갖고 싶어 사격선수로 등록하기도


이를 막기 위해 경찰은 5.5mm 단탄 공기총과 엽총을 관할 경찰서에 영치시켜 관리한다. 간혹 경찰과 총포상이 유착해 불법적인 거래가 저질러진다. 지난해 6월 전라남도 순천에서는 경찰관이 무기고에 영치한 엽총을 내다 팔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일반적으로 불법 총기는 대부분 러시아나 중국 등지에서 밀반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치외법권 지대와 마찬가지인 주한미군 기지에서도 여러 가지 불법 무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미군은 입출국할 때 국내 세관 검사를 받지 않는다. 이 점을 이용해 일부 미군이 엽총·권총을 밀반입해 유출한다. 주로 동두천·파주·의정부 등 미군기지가 밀집한 지역의 암거래 시장에서 미제 권총이 밀매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밀매 방식까지 등장해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인터넷으로 마약을 주문해 안방에 앉아 퀵서비스로 받아보듯이 총기마저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국제 택배로 전달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경찰은 미국 총기판매 사이트에서 권총을 주문해 밀반입하려던 이 아무개씨(30)를 구속했다.


얼마 전까지 경비업계에 종사한 김 아무개씨는 지금도 사격 선수다. 하지만 무늬만 선수다. 김씨는 사격용 공기권총을 소지하기 위해 10만원을 서울시사격연맹에 내고 선수 등록을 마쳤다. 김씨처럼 일반인들 사이에 공기권총 소유가 급증하면서 선수 아닌 선수가 늘고 있다. 경찰이 사용하는 스미스·웨슨 권총과 모양이 흡사한 연발 공기 권총 SJ-38은 이런 사람들에게 단연 인기다. 1999년 경찰이 사격연습용으로 국내 기업에 제조를 허가하면서 일반에 보급되었다.


공기권총을 소지하기 위해서는 선수등록확인서가 필수인데, 지난해 10월 서울시사격연맹 관계자가 확인서를 남발했다가 검찰에 적발되었다. 이 공기권총이 범행에 사용되자 경찰은 지난해 11월 뒤늦게 각 관할 경찰서에 영치시켰다.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 관계자는 “밀반입되는 화약 소총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일상화한 공기총이다. 범죄에 이용되면 무시 못할 위력을 발휘한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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