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을 방지하라!”
  • 고제규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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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임시국회 통과 앞두고 시민단체 반발…“악용 소지 많은 국정원강화법”
지난 2월18일 정 아무개씨(22)는 미국 상공회의소 사무실 점거에 나섰다. 그는 건조물침입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추가되었다. 그는 ㄱ대 부총학생회장으로서 이적 단체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의원이었다. 점거 농성과 관련해 정씨는 현행법상으로는 길어야 3년 정도 구형을 받는다.




그런데 점거 농성 사건이 한 달만 늦게 터졌다면? 정씨는 아마 중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입법화를 코앞에 둔 테러방지법 때문이다. 테러방지법 19조가 적용된다면 정씨는 무기 징역 또는 징역 7년을 선고 받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12일 국가정보원(국정원)은 테러방지법을 발의했다. 9·11 테러에 따른 ‘뉴테러리즘’에 대응한다는 명분이었다. 곧바로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혔다. 시민단체는 이 법을 ‘국정원 강화법’ ‘인권후퇴법’이라고 규정했다. 반발에 부딪히자 국정원은 지난해 11월24일 한 차례 손질했다. 테러에 대한 개념 규정 가운데 ‘사회적 목적을 가진 불법 행위’를 제외했다. 국정원이 얼마나 서둘렀는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통상 20일 동안이던 입법 예고 기간을 10일로 단축하고, 이틀 만에 관계기관 회의를 진행했다. 여당과 야당은 이 법을 3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시민단체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2월22∼25일 제주도에서 열린 인권학술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은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인권 관련 단체 활동가와 변호사·교수·연구자 등 1백10여명은 한목소리로 테러방지법 제정을 반대하고, 공동 투쟁을 다짐했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대한변호사회와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법 제정을 반대했다.



“기존 통합방위법으로 충분한데 왜 서두르나”



국가인권위원회는 2월20일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의견서에서, 굳이 테러방지법을 제정하지 않더라도 기존 법으로 테러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1997년 1월13일 제정된 ‘통합방위법’은 테러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서 만든 법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이 테러방지법 제정을 서두르는 배경에 시민단체는 의혹의 눈초리를 던지고 있다. 테러방지법과 통합방위법의 가장 큰 차이는 주도권 문제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산하에 대테러 센터를 두게 했다. 군병력 동원도 요청할 수 있다. 조용환 변호사(한국인권재단 이사)는 “베일에 가린 국정원을 중심으로 정보기구가 재편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1980년대 정보 정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테러방지법이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같은 우려는 외국인에게도 해당된다. 이주노동자(외국인노동자) 관련 시민단체는 테러방지법이 불법 체류자 문제에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테러 방지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외국인에 대한 상시적인 체류 동향을 파악해 법무부장관에게 출국 조처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 등 25개 시민·사회 단체는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총력 투쟁을 벼르고 있다. 3월에는 ‘인권 투쟁’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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