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판돈에 목숨 걸다
  • 정희상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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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업종 유치’ 경쟁 치열…정부 복권 사업도 ‘과열’
"백전 백패, 공정한 게임이란 없다.” 전직 ‘타짜’(전문 도박기술자) 출신인 김성식씨(48)는 도박의 실체와 조작된 승부의 세계를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김씨에 따르면, 국내 카지노는 물론 경마와 경륜에도 승부 조작의 검은 커넥션이 존재하고, 이들 앞에서 평범한 사람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처럼 무모한 도박의 세계에 부나비처럼 달려든 우리 국민은 지난 1년 동안 연인원 2천2백62만명. 경마·경륜·카지노를 이용한 사람만 센 숫자다. 이들이 뿌린 돈만 한 해 10조원. 경마 4조원, 경륜 1조원, 카지노 5천억원에다 갖가지 복권 및 인터넷 도박까지 합친 시장 규모이다. 사행산업 규모는 한 해 전에 비해 무려 46%가 늘어나 전반적인 산업 불황 속에서도 초호황을 누렸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올해 들어서는 시장 규모도 커지고 한탕주의 열풍도 더욱 거세졌다. 카지노·경마·경륜 외에도 4월부터 모터보트 경주인 경정이 도입되었다. 또 오는 9월에는 사행성 높은 온라인 복권인 로토 복권이 도입되며, 연말에는 강원랜드 메인 카지노가 문을 연다. 사행산업계는 올 한 해 매출액이 1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가 도박판에 국민 끌어들이는 유일한 나라”


이처럼 국민이 한탕주의에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이래저래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곳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이다. 최근 사행산업이 급팽창한 것은 정부와 지자체가 재원 확보를 내걸고 경쟁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과천 경마장에서 지난해 레저 세금을 무려 4천4백15억원이나 거두어들였다. 강원도 정선군의 스몰 카지노는 지난해 4백41억원을 지방세로 냈다. 국내 처음으로 창원 경륜장을 설치한 경상남도는 지난해 레저세 수입 3백6억원을 올렸다.


이처럼 사행산업이 지방세원으로 각광받게 되자 전국의 지자체는 너도나도 도박업종 유치 경쟁에 발벗고 나섰다. 경기도 하남시는 경정장 유치에 성공했고, 광명시는 경륜장을 유치했다. 울산시는 한국마사회에 경마장 마권 장외 발매소 유치를 신청해 두었다.


특히 강원랜드가 내국인 카지노 중독자들을 대거 양산해 호주머니를 털어내는 데 성공하는 것을 지켜 본 지자체들은 저마다 카지노 산업 유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전남 구례와 화순군은 각각 지리산 일대와 폐광 지역에 카지노를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제주도는 국제 자유 도시 계획에 맞추어 오픈 카지노를 추진하고 있으며, 경기도 역시 영종도에 카지노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또 충청남도는 최근 태안군 안면도에 국제 무기상으로 유명한 사우디 부호 카쇼기의 투자자금 10억 달러를 끌어들여 카지노를 건립하기로 했다.


중앙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사행산업 가운데서도 주로 복권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정부 각 부처는 공익자금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열네 가지 복권을 발행하고 있다. 최근 당첨금이 100억원까지 높아진 복권이 나타나 전국을 복권 광풍의 도가니에 빠뜨린 정부의 복권 사업은 오는 9월이면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건교부 과기부 문광부 등 9개 부처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로토식 복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가 국민을 도박에 끌어들여 재정을 확보하고자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우리는 상습 도박자와 중독자를 치료할 기본 시설조차 변변치 않은 상태에서 지자체와 정부가 도박 산업 확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사행산업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감독 기구를 시급히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가 수단 방법 안가리고 세수를 확보하려고 나섬으로써 온 국민이 사행심을 좇게 만드는 반 사회적 역할의 중심에 서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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