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만 퍼붓는 ‘박정희 기념관’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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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 부진하자 정부 돈으로 삽질부터…건립 후 파행 운영 불보듯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주변은 ‘공사 중’이다. 경기장 정문에서 가양대교로 뻗은 6차선 도로의 왼편에서는 난지도 월드컵 공원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오른편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는 ‘상암 2공구 3단지’라는 큼지막한 표지판이 있다. 그 옆에서도 터잡기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굴삭기 3대가 땅을 파고 덤프트럭이 들락거린다.





그런데 공사장에는 표지판이 없다. 시공사나 시행사가 어딘지, 무엇을 짓는 공사인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산불 조심’이라는 붉은색 표지판만 있을 뿐이다. 아파트 공사장처럼 여겨지는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산 26번지. 이곳이 은밀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박정희 기념관 건설 현장이다.
지난 1월29일 ‘박정희 대통령 기념 사업회’(기념사업회)는 기념관 공사를 시작했다. 내빈도 축사도 없는 기습 시공이었다.


지난해 10월5일 기념사업회는 서울시와 기념관 건립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상암동 제4 근린 공원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협약서 2항). 건축물 명칭도 기념사업회가 정할 수 있다(협약서 7항). 설계를 공모하고 경쟁 입찰로 시공사를 선택했다. 설계는 청주국제공항 등 각종 대형 공사를 맡은 ㅇ건축사가 맡았다. 시공은 대기업 ㅅ 건설이 수주했다.


공사장에 있어야 할 조감도와 공사 진행표는 기념사업회 사무실에 걸려 있다. 1970년대식 재건복을 입고 근무하는 기념사업회 손원호 사무처장은 사무실에서 공사 현황을 파악한다. 진행표에 따르면 완공은 내년 4월이다. 공사의 정식 명칭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및 도서관 신축 공사’.
ㅇ사가 설계한 기념관은 높이 21.5m인 3층 건물이다(아래 사진 참조).

설계 도면에 따르면, 지하는 없고 1층에 상설 전시실(237.2평) 휴게실(16.6평) 관리시설(63평) 창고(16.9평) 등이 들어선다. 1층 전체는 774.2평이다. 550.8평 규모인 2층에는 상설 전시실(109.8평) 일반 열람실(109.2평) 전자 도서실(36평) 어린이 도서실(54.7평) 도서관장실(10.9평)이 자리 잡는다. 3층은 특별자료 열람실(140.4평)과 특별자료 서고(53.4평) 등이 있고 266.1평이다. 기념관은 총 1천5백91평이다.




완공까지 기념사업회가 넘어야 할 난관이 만만치 않다. 먼저 공사비 문제다. 2000년 7월 기념사업회가 발족할 때는 기념관 건립에 총 7백9억원이 들 것으로 여겼다. 기념사업회는 국민 모금 5백억원, 정부 지원 2백8억원(공사비 2백억, 운영비 8억) 기타 수입 1억원으로 공사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정부 지원금 2백8억원은 모두 지급되었다.

그러나 모금액이 턱없이 부족했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모금한 액수가 16억원에 불과하다. 기념사업회 손원호 사무처장은 “기념관 건립 열기가 식었고 경제 상황도 나빴다. 모금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모금액이 걷히지 않자 기념사업회는 고육책을 마련했다. 정부 지원금(2백억)과 모금액(16억)에 맞게 기념관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현재 진행되는 기념관의 총공사비는 2백14억원.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관을 짓는 셈이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국민 모금 5백억원이 걷힌다는 조건으로 2백억원을 지원했다. 모금액 실적이 지금처럼 저조하면 보조금을 환수하겠다”라고 밝혔다. 행자부의 말은 단호하지만 기념사업회는 느긋하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모금 액수를 채울 뾰족한 수가 없어 규모를 축소했다. 국회 동의까지 얻어 받은 보조금을 왜 돌려주느냐”라고 반박했다.





잘한 일만 ‘골라서’ 보여줄 예정


기념사업회가 느긋한 데는 이유가 있다. 행자부는 2000년에 1백8억원을, 2001년에 100억원을 나누어 지급했다. 그런데 지난해 100억원을 지급하기 전에도 모금 실적이 부진하면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었다. 그래 놓고 지난해 12월 행자부는 100억원을 지급했다.


예산 2백16억원 가운데 2백14억원을 기념관 건립에 쏟아 부으면 운영 자금은 바닥이 난다. 내년에 문을 연다고 해도 빈 껍데기 기념관으로 전락할 처지다. 기념사업회는 정부가 추가 지원을 해주리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다.
재정 문제뿐 아니라 기념사업회가 넘어야 할 장벽은 시민·사회 단체의 반발이다. 지난 4월19일 ‘박정희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국민연대)는 공사장 입구에서 집회를 가졌다. 2백51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국민연대는 “더 이상 호소하지 않겠다. 실력 행사로 공사를 막겠다”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2월13일~11월30일 중 1백90일 동안 국민연대는 서울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김지하·현기영·곽태영 등 사회 각계 인사 1백90명이 참여했다. 기념관 반대 유인물 14만장도 전국에 뿌려졌다.


시민단체의 반발은 완공 뒤에 더 거세질 전망이다. 박정희 기념관을 채울 ‘내용’ 때문이다. 기념사업회측은 “1960년 5·16 쿠데타부터 1979년 10·26까지 박대통령 집권 기간 18년 의 사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설 전시관에 설치할 열 가지 주제는 박대통령 치적 일색이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골라서’ 보여주는 셈이다. 농업·새마을, 산림·녹화, 수출·상공, 국토 개발, 중화학공업·방위산업, 조경·건설·관광, 외교·안보·국방, 문화·예술, 대통령 생애, 과학·기술 진흥으로 구분되어 기념관 1층과 2층에 전시된다.

각 분야마다 자문위원이 있는데, 신국환 산업자원부장관은 수출·상공 분야를 맡고 있다. <월간 조선> 조갑제 편집장은 대통령 생애 분야를 자문한다. 열 가지 분류 어디에도 박대통령의 어두운 과오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국민연대 이관복 대표는 “박정희 찬양자들이 돈을 모아서 기념관을 만들 수는 있다. 국민의 혈세로 친일 장교 다카키 마사오를 기념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기념관 건설은 1997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논의되었다. 당시 여야 후보 모두 영남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기념관 건립을 공약했다. DJ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9년 DJ는 직접 기념관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신현확 전 총리를 회장으로 지목했다. 자신은 명예회장이 되었다. 기념관 건설에 대한 책임은 결국 김대통령에게 돌아간다. 4월26일 박근혜 의원은 “대통령이 기념관 사업을 추진했다. 정부 보조금만으로 기념관을 짓는 것에 내가 관여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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