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걸이 만나면 90도로 절하고…”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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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영씨가 밝히는 ‘최규선의 삶과 비리’/“김희완·송재빈은 최씨 동업자”



지난 3월28일 오후 1시, 천호영씨(37·서울시 송파구)가 서울 강남의 한 PC방에 급하게 들어섰다. 잔뜩 긴장한 그는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최규선의 비리’라는 글을 올렸다. 시민단체인 경실련 홈페이지에도 똑같은 내용을 띄웠다.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천씨는 이 날 A4 용지에 자필로 꾹꾹 눌러 쓴 같은 내용의 편지를 ‘빠른 우편’으로 보냈다. 주소는 영등포구 여의도동 17-7번지 한나라당. 수취인은 이회창 총재였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은 이 편지를 뜯고 내용을 확인한 뒤에도 총재에게 보고하지 않고, 그냥 민원실 우편담당에게 보냈다.


그러나 천씨가 경실련 게시판에 올린 글은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최규선씨(42)는 천씨 글을 ‘사이버 테러’라고 매도했지만 결국 대통령 3남 홍걸씨에 대한 사법 처리까지 몰고올 태풍으로 번졌다.


특히 ‘이회창 전 총재가 윤여준 의원을 통해 최씨로부터 2억5천만원을 받았다는 녹음 테이프가 있다’고 한 민주당 설 훈 의원의 폭로가 미궁에 빠지면서 천씨에게 다시 관심이 쏠렸다. 최씨가 정·관계 인사들과 대화한 녹음 내용을 천씨가 전담해 복사했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서울 강남의 씨네시티 근처에서 천호영씨를 어렵게 만났다.



당신은 지난 1월까지 최씨의 최측근이었다. 최규선-김희완-최성규 씨로 이어지는 비리 커넥션과 김홍걸씨와의 관계에 대해 얘기해 달라.


최규선·김희완 씨는 서로 형님 동생 하는 관계이다. 김희완씨가 돈 되는 일을 물어오면 최씨가 김홍걸씨를 등에 업고 개입했다. 성공하면 똑같이 돈을 나눠 가졌다. 최성규 총경의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마다 최씨가 도움을 요청했다. 최총경 만나러 갈 때 미리 전화하면 경찰청에서 우리 차는 매번 무사 통과했다. 최씨는 ‘내가 해서 안되는 일은 없다. 나는 국회의원·장관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송재빈씨도 김희완·최규선 씨와 동업자나 마찬가지다. ‘AIG 글로벌’ 사무실은 원래 송재빈씨 소유였는데 김희완씨가 자기 회사처럼 드나들었다. 최규선씨도 미래도시환경 사무실을 그쪽으로 옮겼다. 김희완씨는 특히 재산이 최씨보다 많은 사람이다. 최씨가 이권에 개입해 번 돈을 정치인에게 투자하거나 호화로운 생활로 탕진했다면, 김희완씨는 차곡차곡 모아두는 편이었다. 잠실의 ㅋ복합 영화관 건물이 김희완씨 소유라는 얘기를 최씨에게서 들었다.





김홍걸씨를 한번이라도 직접 만난 일이 있었는가?


만남 장소인 호텔까지만 운전해 데려다 주었기 때문에 멀리서 보았을 뿐이다. 최규선씨가 김홍걸과 호형호제했다는데 다 거짓말이다. 동생한테 사정사정해서 겨우 만나고, 만나면 허리를 꺾어 90도로 절하고, 만남이 끝난 뒤에는 차 타는 데까지 따라가 꼬박꼬박 절하며 배웅하는 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언젠가 한번은 점심을 나와 함께 먹었는데 걸려온 전화에 대고 ‘방금 홍걸이랑 점심 같이 했다’고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더라.


최씨는 검찰에 출두할 때도 향수 10여 개를 준비했다. 실제 최규선씨의 최고급 취향은 어느 정도였는가?


최규선씨의 차림새는 월급쟁이는 상상도 못한다. 양복은 3백만원, 넥타이는 30만∼80만 원 짜리가 수두룩하다. 와이셔츠는 20만원, 혁대는 100만원, 양말은 5만원짜리만 사용한다. 화장품 한 개에 40만원이고, 1주일에 두 번씩 피부관리실에 가서 마사지를 받는데 비용이 20만원에다 팁이 10만원이다. 술을 겸한 저녁 식사 한끼에 수백만원이고, 질펀하게 놀고 싶으면 서울에서는 얼굴 알려진다고 광주로 내려갔다. 하룻밤 자는 데 50만원인 ㅅ파크호텔 로열 스위트룸을 잡아놓고 룸살롱에서 술을 먹었다. 아가씨들과 ‘2차’도 거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회사 나올 때 퇴직금도 못 받고 가불 처리된 3백만원의 이사 비용까지 모두 갚고 나왔다.


민주당 설 훈 의원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게 최씨 돈이 흘러갔다는 내용이 든 ‘녹음 테이프’를 제시하지 못했다.


최씨가 윤여준 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녹음 테이프 사건은 나는 모른다. 최씨가 이회창씨에게 돈을 줬다는 것도 처음 듣는 얘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밤 잠 안 자고 테이프 내용을 다 들어 보았을 텐데…. 최씨가 사람 만나 술 먹으면 보통 오전 1∼2시에 끝난다.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들어가면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녹음 스위치만 눌러놓고 그냥 잠드는 것이 예사였다. 믿어 달라.



천씨는 만약 이회창씨와 관련한 테이프가 있다면 가지고 있을 법한 사람으로 최씨의 내연의 처 염 아무개씨, 최씨의 사촌형 이 아무개씨와 변호인 등을 거론했다. 반면 최씨의 사촌형 이 아무개씨는 오히려 천씨를 유력한 테이프 소지자로 지목했다.


돈 문제와 함께 설 훈 의원이 폭로한 대로 최규선씨가 이총재의 방미 활동을 막후에서 진짜 도왔는가 하는 것도 또 다른 관심거리다. 이회창 전 총재는 1월22일부터 28일까지 1주일 동안 미국을 방문했다. 최규선씨는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6·7·8·11월에 네 차례나 미국을 방문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도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왔다.






최씨가 솔라즈 전 의원을 통해 이총재의 미국 방문 작업을 도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최씨로부터 이회창씨의 미국 방문을 도왔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그런 사실을 목격한 적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솔라즈 전 하원의원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규선씨는 2001년 1월8일자 <중앙일보>를 5백부나 샀다. 최씨가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과 대담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기 때문에 자기를 과시하려고 산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이때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대담하는 대가로 5천만원을 썼다고 하더라. 최규선씨가 외국인들을 사귈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다 돈이다.


설 훈 의원은 최씨가 이회창 전 총재 부부와 모두 안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씨 부부가 이회창씨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는 말도 나돌았다.


서울 압구정동 최씨 집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최씨가 김대중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대형 액자로 만들어놓은 것은 봤다. 하지만 최씨 부부가 이회창 총재 부부와 같이 찍은 사진은 보지 못했다.


최규선씨는 ‘홍사덕 캠프’에서 일한다고 스스로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는데, 실제로 홍의원과는 얼마나 가까웠나?


최씨가 홍사덕 의원과는 자주 만났다. 강남 르네상스호텔 부속 건물 13층에 있는 김희완씨 사무실 ‘AIG 글로벌’과 최씨의 ‘미래도시환경’에 홍의원이 가끔 들렀다. 올해 1월에도 우리 사무실에서 최씨의 소개로 내가 홍의원과 악수까지 했다. 3월5일 최씨와 친분이 깊은 ㅊ씨가 ‘법무법인 두우’(현재 최규선씨 변호를 맡고 있는 강호성 변호사 소속 법인) 대표 변호사로 취임해 개업할 때도 홍사덕 의원과 최씨가 현장에 함께 있었다.



홍사덕 의원측은 강남에 있는 최씨 사무실을 방문한 일은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법무법인 두우를 방문했는지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홍사덕 의원의 지난해 미국 방문(11월13∼18일)과 최규선씨 방미(11월12∼21일) 날짜가 겹친다. 최씨는 지난 1월16일 용산기지 세미나에 앞서 지난해 11월 홍의원과 동행해 그의 방미 활동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3월28일 당신이 게시판에 올린 글을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삭제했는데….


제1 야당이라면 여당과 관련된 비리에 당연히 큰 관심을 가질 줄 알고 맨 먼저 올렸는데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글을 삭제해 불쾌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최규선씨가 내 동생이 운영하는 가게에 찾아와 아내에게 “올려놓은 글 잘 봤다. 그래 잘하고 있다. 계속해 봐라”면서 협박했다. 그 뒤에 바로 내 글이 사라졌다(천씨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은 3월28일 밤 11시에 최규선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은 뒤 삭제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 글은 천씨의 글이 삭제된 다음날인 3월29일부터만 볼 수 있다. 홈페이지 운영자는 “게시된 글이 6만건이 넘어서 (이 날) 모두 지우고 다시 올렸다”라고 주장했다).



천씨는 이제 최규선씨와 질긴 ‘악연’에서 벗어나 조용히 사업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상경하기 전 광주에서 유흥 주점을 운영하기도 했던 천씨는 최근 씨네호프 영업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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