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음모 집단은 아니었다”
  • 진행·정리 권은중 기자 (jungk@sisapress.com)
  • 승인 2002.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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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김대중 편집인에게 반감”…“친미·엘리트주의 문제”
<조선일보> 대학생 인턴 기자 방담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말 일간지로서는 처음으로 대학생 인턴 기자 24명을 선발했다. 경쟁률 20 대 1을 뚫고 들어간 이들은 지난 1월7일∼2월28일 편집국 각 부서를 돌면서 제작 현장을 지켜 보았다. 대학생들은 <조선일보>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인턴 기자 6명은 지난 4월26일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 카페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칭찬과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왜 <조선일보>에 지원했나?


●<조선일보>가 인턴 기자를 처음 뽑아서 지원했다. 지원자 대부분이 기자가 꿈이다. 당연히 신문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관심이 많다.


●이념이나 논조를 떠나서 1등 신문 아닌가. 배울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조선일보>를 가지고 다니면 의식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당연히 거리낌도 있었다. 지금까지 ‘쟤 <조선일보> 인턴했다’고 주변에서 수근거린다.


●우리 가운데 한 명은 ‘안티조선 입장에서 <조선일보>를 알아보려고 왔다’고 면접에서 대놓고 말했다. 그런데 인턴으로 뽑혔다(웃음).


뭐가 다르던가?


●밖에서 본 것과 너무 달랐다. ‘안티조선 사람들’에 따르면, 조선은 거대한 음모 집단이고 신문 제작이 보이지 않는 지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생각보다 사장이 힘이 없더라. 사장이 편집국에 내려와도 아무도 안 쳐다본다. 심하게 말하면 사장을 무시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웃음).


●기자들이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조선일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상하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다. 특히 젊은 기자들이 <오마이 뉴스>나 안티조선 사이트인 ‘우리모두’를 꿰고 있어 놀랐다.


●안티조선에 대한 질문을 인턴 기간 내내 받았다. 지겨울 정도였다. 정말 관심이 많았다.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김대중 편집인에게 반감을 표현하는 기자들이 많아서 놀랐다.


●밖에서 더 심하게 몰아붙여야 <조선일보>가 바뀐다는 급진적인 사람도 있었다.


●신문을 프로 정신으로 만들더라. 저런 것까지 일일이 확인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적어도 조선에서 쓰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믿을 만 하다고 본다.





뭐가 문제던가?


●젊은 기자들이 생각과 달리 어쩔 수 없이 회사 분위기를 따라 가는 것 같다. 내가 쓴 대학생 관련 기사가 선배와 데스크 손을 거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기사가 되었다. 한마디로 40대가 대학생을 바라보는 기사가 되었다. 2030섹션에 20대는 없었다.


●인턴 생활을 해보니까 <조선일보> 기자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논조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기자들의 자유로운 사고가 어떤 힘에 의해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젊은 기자 가운데 미국 유학을 안 갔다 온 사람이 없더라. 미국의 좋은 면만 보고 와서 그럴까, 기사가 너무 친미적이다. 외신 대부분이 미국 기사다.


●엘리트주의도 지적할 수 있다. 족벌 언론이 아니라 학벌 언론이다. 80%가 서울대 출신이라고 들었다. 책상물림만을 기자로 뽑아서는 지면이 생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하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없었다. 3층(편집국)과 6층(임원실)의 괴리감이 확실히 느껴졌다.


●외부 비판에 스스로 핑계를 대려고 한다. 자부심이 강해서일까, 자기 방어가 강하다.


●내부 의견이 소통될 기회가 없는 듯했다. 우리가 나올 때 방담을 했다. 노보에 그 내용이 실렸는데, 그 내용대로 많은 부분이 시정되어 우리도 놀랐다. 상하가 흉금을 터놓고 충분히 대화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안티조선운동에 대한 생각은?


●기자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조선일보>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는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다. 안티의 절대적 판단 기준이 과연 있느냐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기자도 많다.


●현장을 뛰어 보니까 안티조선의 비판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판 자체가 감정적인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선 기자들이 더 단결하는 측면도 있다.


●안티조선의 비판은 표면적이다. 제목만 보지말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충분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비판해야 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 어느 한 부분만 발췌해서 문제 삼는 것은 조·중·동의 수법이다.


●<조선일보>를 없애겠다는 의도라면 방향이 잘못되었다. 물론 안티조선을 친북 세력으로 몬 <조선일보>도 잘못했다. 양측이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대립을 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에 대한 보도 태도는 어떠했는가?


●조선의 노풍 보도는 확실히 문제였다. 색깔론 공세는 좀 유치했다. 색깔론은 과거처럼 먹히지 않는다. 조선의 약발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언론 국유화 발언도 그렇다. 확인되지도 않은, 비보도를 전제로 술자리에서 한 말을 기사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무현 후보에 대한 검증이 뜻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비판을 받으니까 지면에서 ‘우리만 노무현을 비판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변하던데, 측은하기까지 했다.


●노무현씨는 안티조선의 대표 선수였고 그 덕을 많이 봤다. 하지만 정책이나 경력 등이 검증되지 않았다. 매춘 여성에 대한 노후보의 입장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당황할 정도로 보수적이었다.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조선일보>를 보면 이회창씨는 햇님처럼 웃는 얼굴로 나오는데 노후보는 항상 찡그린 얼굴만 나온다. 선배들에게 처음부터 문제 제기를 했다.


인터넷 언론에 대한 의견을 말해 달라.


●보수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대해 바로 그 반론이 뜰 정도로 신속하다. 기사가 가감이 없고 정제되지 않아 신선하다. 문제 의식 자체도 발랄하다. 하지만 게릴라의 수준에 따라 기사 품질의 편차가 크다는 것이 흠이다.


●기사보다도 그 기사를 놓고 네티즌 간에 토론이 되기 때문에 파급 효과가 크다.


●인터넷 매체가 조·중·동의 약발을 떨어뜨린 점은 분명하다.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그만큼 가능성도 있다.


●어느 한쪽으로 너무 몰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가령 인터넷 매체가 민주당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공격하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정치적 색깔이 너무 강하다. <오마이 뉴스>는 이미 언론 권력이 되었다.


당신이 만약 사장이라면?


●기자들에게 재충전할 시간을 주겠다. 기자들은 자신들을 조금씩 짜내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치약’에 비교한다. 옆에서 보면 딱할 정도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할 필요성을 아직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섹션 등 신문을 젊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조선의 변화가 결국 눈높이를 상류층이나 우익 쪽으로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야가 너무 좁다.


●내가 할 말만 하는 신문은 안 만들겠다. 유가부수 1위라고 해서 1등 신문이 아니다. 오보가 나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독자를 위한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계도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을 이끌고 갈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 생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턴 생활을 마친 뒤 변한 것이 있는가?


●애정을 가지고 비판하게 되었다. <조선일보>에 관심이 생겼고, 이 기사가 어떻게 나왔을까를 생각한다. 신문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1주일 동안 머리도 안 감고 쫓기며 사는 기자들을 봤다. 기자는 해도 기자 부인은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참가자(가나다 순):김신록(서울대 지리학과 4학년) 유동연(이화여대 심리학과 4학년) 안인용(이화여대 독문과 4학년) 이정훈(단국대 신문영상학부 4학년) 이해리(원광대 경영학과 4학년) 홍성은(서울여대 사회사업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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