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 하나가 여럿 잡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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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량 성남시장 육성 녹음의 진실/시민단체·언론·검찰로 ‘전선’ 확장



하나의 유령이 지금 성남시와 여의도를 배회하고 있다. 녹음 테이프 유령. 검찰과 시장과 시민단체 대표와 언론인이 이 유령에 시달리고 있다.
5월18일 한국방송공사(KBS)의 <추적 60분>은 ‘특혜 의혹, 분당 파크뷰 무슨 일이 있었나’를 방송했다. 프로그램 끝부분에 최철호 PD(39)는 ‘특종’을 내보냈다. 김병량 시장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방송한 것이다. 테이프에는 “지난 선거 때 홍원표 사장이 지원했다.


성남지청 검사들과 골프를 쳤다. 검사장이 시민단체보다 늦게 고발하라고 충고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소문으로 나돌던 김시장과 파크뷰 사건으로 구속된 에이치원 개발 홍원표씨의 관계, 김시장과 검찰의 관계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워낙 내용이 민감해 목소리가 김병량 시장이 맞는지를 놓고 한 차례 진위 공방이 오갔다.



김시장 “검사 사칭해 녹음” 주장



5월22일 이재명 변호사가 다시 문제의 테이프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재선을 노리며 단체장 선거를 준비하던 김병량 시장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5월24일 김병량씨는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목소리는 내가 맞다. 그러나 검사를 사칭해 녹음이 이루어졌다. 전후 맥락을 자르고, 편파적으로 편집해서 방송했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김씨는 최철호 PD와 이재명 변호사를 공무원자격사칭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위반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5월10일 오전 10시45분께 김병량 시장의 전 비서 김진성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씨는 지난 4월 초에 비서 직을 그만둔 상태다. “그래도 김시장과 연락할 수 있다. 어디냐”라고 김씨가 묻자, 상대방은 검찰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김씨는 파크뷰 사건을 수사하는 수원지방검찰청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수행비서에게 연락을 했다. 김씨는 자기 핸드폰에 찍힌 번호(011-898-30**)를 가르쳐주었다. 11시24분 김시장은 이 번호로 전화를 했다. 하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5분 뒤 “수원지검의 서검사다. 수사중에 확인할 게 있다”라는 전화가 왔다.





자칭 서검사는 “시장님이 홍원표 회장으로부터 은갈치를 받았다는데 사실이냐? 홍회장과 골프를 함께 쳤다는데 맞느냐?”라고 질문했다. 김병량씨는 담당 검사로 믿고 18분 동안 진술했다. 이 내용이 <추적 60분>에서 질문은 빠지고 답변만 방송되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5월27일 김시장은 직접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6월1일 최철호 PD는 검찰 조사를 받다가 긴급 체포되었다. 최PD가 구속되자 KBS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는 10년 넘게 <추적 60분>에서 잔뼈가 굵은 간판 프로듀서다. 방송 전에도 그는 변호사에게 자문했다. <추적 60분> 김 현 책임 프로듀서는 검찰 조사를 지켜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입장을 최종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전문지 <미디어 오늘> 자문에 응하는 한상혁 변호사는 “국민의 알 권리만큼 개인의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검사를 사칭해 취재한 내용이 방송되었다면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다.



김병량 시장이 통화한 핸드폰 번호는 <추적60분> 팀 소유인것으로 밝혀졌지만, 최PD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테이프를 이재명 변호사에게서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재명 변호사도 문제의 테이프는 자기가 최PD에게 전달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습득 과정에 대해서 이변호사는 입을 다물었다. 6월1일 김시장은 고소인 조사를 다시 받았고, 비서진 5명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김씨는 상대방 목소리를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검찰은 관련자들의 통화 기록을 증거로 확보했다. 6월6일 검찰은 두 차례 소환 조사를 거부한 이재명 변호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영장이 발부된 이변호사는 ‘제2의 초원복국집 사건’이라며 반발했다. 1992년 대통령 선거때 부산 기관장들의 불법적인 선거운동보다 도청만 문제 삼았던 초원복국집 사건처럼, 김시장이 실토한 내용의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고 곁가지만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이변호사는 지방 선거가 끝나고 검찰에 출두할 예정이다. 검찰 조사를 받더라도 이변호사는 테이프 습득 과정에 대해 함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변호사 “제2 초원복국집 사건이다”



이변호사가 속한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렸다. 최병모 민변 회장을 비롯해 부회장 강금실·이원영·임종인 변호사도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이외에 민변 집행부 전원이 변호인단에 포함되었다. 주 변론은 사무총장인 김선수 변호사가 맡는다. 민변 소속 김승교 변호사는 “증거가 불충분하다. 도주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해 수사하려는 것은 검찰의 과잉 대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검찰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테이프 내용에 검찰 간부진과 김병량 시장의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성남시와 공대위, 검찰과 언론 모두 테이프 유령에 발목이 잡혔다. 유령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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