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칼, DJ 대선 자금 찌르나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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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업 구속은 의혹 캐기 시작에 불과…아태재단 수사 불가피할 듯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김종빈 검사장)는 아태재단 부이사장이며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씨(53)를 특정범죄 가중 처벌법상 알선 수재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지난 6월21일 구속했다. 서울지검 특수부가 3남 김홍걸씨를 알선 수재 혐의로 5월19일 구속한 지 한 달여 만이다. 홍업씨는 1997년 김현철씨가 사용했던 서울구치소 3층 독방에 수감되었다. 동생 홍걸씨 역시 홍업씨와 10여 m 떨어진 3층 독방에서 6월28일 첫 공판을 기다리는 처지이다.




아들의 비리가 사실로 드러나자 김대중 대통령은 6월21일 밤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국민에게 직접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 이렇게 참담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모든 일이 저의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며 국민에게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다.


김홍업 행태, 김홍걸과 닮은꼴


검찰은 주로 홍업씨 개인 비리 혐의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검찰 수사 결과 홍업씨는 1999년부터 올해 초까지 성원건설과 삼보판지(주) 등 세 기업체로부터 각종 청탁과 함께 2억6천만원을 직접 받았다. 홍업씨는 또 김성환·이거성·유진걸 씨 등 이른바 ‘측근 3인방’과 함께 네 업체로부터 20억2천만원을 받아 알선수재 공모 혐의를 받고 있다. 홍업씨는 청탁 명목으로 모두 22억8천만원을 건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민원 청탁이 이루어진 주된 장소는 술자리였다. 홍업씨는 친구나 지인 들과 술자리를 즐겨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술자리에서 ‘김회장’으로 통했던 홍업씨는 기업체 관계자들과 주로 자신의 개인 사무실이 있던 서울 강남 역삼동 인근의 일식집이나 유흥 주점 등에서 만났다. 측근 3인은 미리 민원인들로부터 돈을 받은 뒤 자리를 주선했다. 홍업씨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 때도 있었지만,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청탁한 사람들과 식사나 술자리에 동석한 일도 있었다.


이는 최규선씨에게 끌려다닌 김홍걸씨의 사례와 닮은꼴이다. 특히 홍업씨의 ‘40년 지기’인 김성환씨는 최규선씨와 사업을 함께한 김희완씨처럼 거의 모든 이권 청탁에 빠짐없이 개입했다. 김씨는 자기가 관리하는 차명 계좌로 청탁 사례비를 받는 등 금품 수수도 주도했다. 홍업씨는 측근들의 개입 없이 직접 돈을 받기도 했다. 기업인들은 홍업씨 개인 사무실에 찾아가 사례비나 활동비 명목으로 현금 수천만원이나 1억원이 입금된 통장과 도장을 건넸다. 홍업씨는 검찰에서 “대가성 없는 활동비나 용돈을 받은 게 죄가 되느냐”라고 항변했지만, 자신이 직접 돈을 받았고, 측근들이 돈을 챙기거나 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방관하거나 묵인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했다.


홍업씨는 돈을 받은 뒤 직접 관계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검찰은 홍업씨가 각종 청탁을 받은 뒤 검찰·국세청·청와대 민정수석실·금감원·예금보험공사·신용보증기금 고위 간부에게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난 것으로 보고 있다. 아태재단 부이사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김성환씨와 홍업씨의 대학 후배 이거성씨도 ‘국세청의 특별 세무 조사를 무마해 주겠다’ ‘검찰에서 선처를 받을 수 있게 도와 주겠다’며 거액을 받았다. 김성환씨는 민원 청탁을 받고 직접 검찰 고위 간부들에게 선처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검찰 수사 무마 명목으로 거액을 받은 뒤 실제로 로비에 성공해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면 검찰로서는 또 한번 제 살을 도려낼 수밖에 없다.





김홍업과 아태재단, 각종 게이트와 관련


김홍업씨 구속은 국민적 의혹을 밝혀내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우선 금품 수수 액수가 너무 적다. 검찰은 홍업씨가 이권 청탁 명목으로 받은 22억8천만원 외에 측근들을 통해 관리해온 돈이 최대 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여기에는 홍업씨 개인의 사업자금이나 처가로부터 받은 돈이 일부 섞여 있지만, 상당 액수는 ‘출처가 불분명한 대가성 있는 자금’일 것이라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아태재단도 김홍업씨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선 김성환·유진걸 씨가 차명 계좌로 관리해온 수십억원이 아태재단에 유입되었다. 김병호 전 아태재단 행정실장을 비롯한 아태재단 직원들은 홍업씨의 지시에 따라 의심스러운 자금 16억원을 세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검찰 수사에 불응하고 있는 김병호씨는 검찰에서 ‘국정원 5억쯤 혹은 1억’이라고 적혀 있는 수첩 메모지를 쓰레기통에 버려 국정원 자금이 아태재단에 유입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낳았다. 그러나 김호산 전 아태재단 행정실 과장은 “국정원 돈이 아태재단에 유입되었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억측이다”라고 반박했다.


각종 게이트와 아태재단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우선 아태재단 이수동 전 상임이사를 비롯해 김병호 전 행정실장, 김홍업씨의 역삼동 사무실 여직원 등은 홍업씨의 대학 친구 유진걸씨가 운영한 평창정보통신(주) 주식을 매입했다가 주가가 폭락하자 원금과 이자까지 돌려받았다. 이 회사는 정현준 게이트에도 등장했다.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씨도 김홍업씨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업씨는 1999년 8월께 부도 난 성원건설 전윤수 회장으로부터 10억원을 받은 뒤 당시 채권자였던 예금보험공사 간부에게 성원건설 화의안에 신속히 동의해 달라고 청탁했는데, 그때 청탁한 간부가 이형택씨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홍업씨는 최규선 게이트와도 무관하지 않다. 타이거풀스 부회장을 지낸 온대봉씨는 홍업씨의 친구로 2000년 5월 타이거풀스 주식 7만5천주를 스톡옵션으로 받았다. 지난 5월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타이거풀스의 체육복표 위탁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통령 형제가 모두 개입한 의혹이 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홍업씨 친구 유진걸씨가 운영했던 평창정보통신(주)은 1999년 8월 말, 스포츠토토 예상 잡지인 <토토 투데이>의 온라인 e-북 서비스를 독점 대행한다고 언론에 발표한 바 있다. 홍업씨나 홍업씨 측근이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소문 난 체육복표 사업에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공개한 셈이다.


이른바 ‘DJ 대선 자금’은 김홍업씨에 대한 검찰 수사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홍업씨의 변론을 맡은 유제인 변호사는 “검찰이 밝혀낸 돈 가운데는 홍업씨가 1996년 총선 이후에 지인들로부터 받은 선거 지원금도 있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1996년 총선과 1997년 대선 무렵 홍업씨가 관리한 정치 자금을 수사한다면 정국에 태풍을 몰고올 수 있다.


한나라당은 검찰이 대선 자금과 아태재단 수사를 기피할 경우 특검제나 청문회를 밀어붙인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6월21일 대국민 사과 성명에서 아태재단 처리 문제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불씨를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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