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를 시장으로 뽑았네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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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출신 단체장들 ‘추태·꼴불견·파렴치 행태’ 추적
안상수 인천광역시장은 취임한 지 한 달도 안된 지난 7월23일 인천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호되게 두들겨맞았다. 최고급 승용차인 2001년식 ‘체어맨’(2295cc)을 타고 다녔던 안시장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 동안 10여 차례나 교통법규를 위반하고도 50만원이 넘는 과태료를 내지 않았다.
교통 위반 뒤의 행태도 꼴불견이었다.





중앙선 침범과 갓길 운전 등 벌점이 부과되는 위반에 대한 범칙금은 냈지만 신호 위반과 과속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위반에 대한 벌칙금은 나몰라라 했다. 인천 계양구청이 지난 4월 과태료 체납에 따른 행정 조처로 차량을 압류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6월 지방선거 기간에 차를 타고 다녔다. 인천 지역 시민단체는 “공직자로서 치명적인 도적적 결함이 있다”라고 비난했다. 안시장은 문제가 드러난 당일, 동생을 시켜 과태료를 모두 납부했지만 지금까지 시민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안상수 시장 1년 버틸 수 있을지 의문”



안시장이 선거 때부터 휘말렸던 자질론 시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병역 기피 의혹에다 1970년대에 룸살롱 영업사장을 지내고 파친코에 돈을 투자했다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실제 이같은 의혹의 상당 부분은 사실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인천시를 우습게 보고, 인천 시민을 얕잡아본 행태’라며 안시장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시장 취임 뒤 단행한 첫 인사에서는 정무 부시장에 농림부 차관보를 지낸 안덕수씨(57)를 내정했다가 시민단체의 반대로 철회하는 촌극을 벌였다. 안덕수씨는 1999년 1월 농림부 축산국장 재직 때 축산국 직원들이 뇌물 5백만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 공직에서 물러난 데다 소 전산화사업의 주무 책임자로서 국가 예산을 2백80억원 넘게 낭비한 ‘전과’가 있다. 안씨는 2000년 총선 직전인 1999년 7월 강화군에 위장 전입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안시장은 결국 안씨를 정무 부시장에 내정한 것을 철회했다. 그러나 또 다른 정무 부시장으로 내정된 박 아무개씨도 ‘정무 부시장은 인천시에 3년 이상 거주한 사람으로 한다’는 인천시 조례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지역의 한 시민운동가는 “솔직히 안시장이 1년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제발 올해 대선 전까지만 사고를 내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빌고 있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인천시의회(의장 신경철)도 시민의 비웃음을 샀다. 지난 7월12일 오전 10시, 인천시청과 마주한 인천시의회 청사 앞에서는 강아지들까지 동원한 이색 시위가 벌어졌다. 이름하여 ‘인천시의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견공(犬公) 시위’였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상임대표 신현수) 회원들은 이 날 ‘개판이 되어버린 시의회’를 조롱하는 의미에서 집에서 키우던 개들을 끌고 나와 1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인천 시민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인천시의회의 사정은 보기에도 딱했다. 제4대 인천시의회는 시의원 29명 가운데 25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시의원들은 산업건설위원회 등 ‘물 좋은’ 상임위원장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멱살잡이를 서슴지 않았다. 시의회 본회의장은 국회 본회의장처럼 삿대질과 욕설이 오가는 난장판으로 변했다.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박길상 사무처장은 “상임위원회 배분을 놓고 열린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보인 모습은 밤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패싸움 수준이었다. 심지어 조폭 영화에서처럼 무릎 꿇고 비는 모습도 목격되었다”라며 인천시의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인천시의회 의장도 자질 시비에 휘말렸다. 지난 7월10일 제 4대 인천시의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신경철씨(50)는 한때 살인미수 등 폭력 혐의로 입건되었던 사실이 있다. 신씨는 제1대 인천시의회 건설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1996년 11월, 자신이 운영하던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회사 자금담당 임원을 말다툼 끝에 흉기로 찌른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2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인천시에 사는 한 시민은 “당시 인천 지역 소주방마다 한동안 ‘시장은 술집 웨이터(안시장이 룸살롱 경영자가 아니라 한때 웨이터 생활을 했다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시의회 의장은 조폭, 정무 부시장(안덕수 내정자를 지칭)은 ‘위장 전입 사기꾼’이라는 조소 섞인 말들이 돌아다녔다”라고 전했다.



이명박, 부정 선거 은폐 의혹에 시달려






천만 서울 시민의 수장인 이명박 서울특별시장도 취임 하루 만에 뉴스 메이커가 되었다. 이시장은 지난 7월3일 아들·사위가 거스 히딩크 감독과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가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아들 이시형씨(24)는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과 50만원짜리 ‘투루사르디’ 샌들로 치장해 구설에 올랐다. 사위 조현범씨(한국타이어 상무)는 “회사까지 빼먹고 (행사장에) 왔다”라고 말해 주위의 실소를 자아냈다.



공인 의식이 부족한 이명박 시장의 행태는 서울시장 자리를 빼앗긴 민주당에는 좋은 공격거리가 되었다. 추미애 민주당 최고위원은 “제왕적 후보(이회창) 밑에 제왕적 시장(이명박)이 등장하여 서울 시민을 우습게 보는데 참으로 걱정스럽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선거 때 이시장을 서울시의 큰 살림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던 김덕룡 한나라당 의원은 체면을 구겼다.



이명박 시장은 최근 6·13 선거와 관련한 부정선거운동 혐의로 최측근 참모였던 신학수씨(43)가 구속되어 근심이 더 커졌다. 지난 15대 총선 당시 서울 종로에서 출마해 당선되었다가 역시 부정선거운동 혐의로 수사를 받자 전 비서 김유찬씨(41)를 외국으로 도피시킨 ‘전력’도 이명박 시장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 김씨는 당시의 비화를 담은 자서전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명박 시장의 애를 태우고 있다.



개신교 장로이기도 한 이명박 시장은 지난 6월 선거 유세 중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한 기독교 단체의 구국기도회에 참석해 “서울시장이 되면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장로로서 욕먹을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취임한 뒤 불과 사흘 만에 ‘심려를 끼쳐드려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했다. 서울시의 한 직원은 “이시장이 꾸밈 없고 소탈하기는 한데 공직 경험이 부족해 공인 의식이 약하다. 앞으로도 무슨 사태가 터질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안상영 부산광역시장도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여직원 성폭행 의혹’은 지난 5월23일 민주당 부산시지부의 ‘안상영 후보 비리 고발 센터’에 접수되었다. 안상영 시장이 프랑스와 영국을 방문했던 2000년 3월8일, 남편이 있는 부하 여직원 방에 들어가 여직원을 성폭행했고,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은 현재도 부산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더구나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경우 여성부가 성추행을 공식 인정해 안상영 시장은 더욱 곤혹스럽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한나라당 소속 손학규 경기도지사도 두 여중생 사망 사고의 책임이 있는 미군 2사단 부대장에게 이임 기념으로 감사패를 전달하려 했다는 이유로 빈축을 샀다. 감사패 전달 계획은 계획에 그치고 말았다.






12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조심하는 한나라당은 이같은 소속 단체장들의 돌출 행동을 여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이회창 후보는 7월24일 당 소속 시장·도지사 협의회에서 “국민은 우리를 지지하는 만큼의 무게로 언제든지 비판하고 공격할 수 있다”라며 민심의 무서움을 알고 초지일관 겸허한 자세로 대민 봉사에 앞장서 달라고 단체장들을 질책했다.



주민투표제·주민소환제 도입이 해결책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집행부와 의회를 싹쓸이한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구청을 순방한 첫날인 지난 8월1일 오전 11시. 구정 업무보고 현장인 마포구청 3층 회의실은 여느 회의장과는 달리 화기애애했다. 이명박 시장을 비롯해 마포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박주천·박명환 의원, 그리고 백의종 서울시의회 부의장과 최근희·김유현 시의원, 박홍섭 마포구청장을 비롯해 김영식 마포구의회 의장, 김평전 구의회 부의장 등 집행부와 의회를 대표한 참석자 모두가 한나라당 일색이었다.



이 날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인근에 청소년수련원 신축과 노인 요양 시설 건설을 마포구의 숙원 사업으로 건의했다. 이명박 시장은 웃는 얼굴로 “적극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배석한 서울시청 간부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지만 지역구 정치인과 구청장·구의원의 주장에 곧바로 묻혀버렸다. 마포구청의 한 직원은 “한나라당이 집행부와 의회를 다 잡았으니 사업 시행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도저 시장’의 추진력을 높이 사는 듯했다.



한나라당 단체장이 독주하자 서울시의회에서 소수파로 전락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불만이 많다. 황명선 서울시의원(민주당 서울시지부 사무처장)은 “8월 말 개회되는 임시회 때 서울시가 ‘시정보고회’를 갖지 않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집행부와 의회가 한통속이 될 텐데 막을 힘이 없다”라고 말했다.



지방자치연구의 권위자인 이기우 교수(인하대·사회교육학)는 시민과 언론이 적극 나서 주기를 촉구했다. 시민들이 주민투표제와 주민소환제도 도입 운동에도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나라당이 장악한 지방 정부와 의회의 독주를 막을 견제 장치는 주민 참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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