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정신 탐험/영화 <죽어도 좋아> 등급 판정 논란
  • 정혜신 정신과의원 원장 ()
  • 승인 2002.08.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식’의 등급을 매긴다면
<죽어도 좋아>는 ‘결혼한 지 얼마 안된 70대 부부의 사랑을 전달’하려 했다는 영화다. 그 영화가 영화등급위원회(영등위)의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 회의에서 일부 섹스 장면이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한 상영 가’ 등급을 받자 그에 따른 찬반 논쟁이 뜨겁다.





영화 관련 단체들은 영등위의 결정을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것’으로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논쟁이 자못 흥미롭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이번 사태가 <즐거운 사라>와 관련된 외설 시비로 마광수 교수가 구속되는 것을 지켜 볼 때처럼 참담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찬반 논쟁이라고는 해도 제한 상영에 찬성하는 쪽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그 결정을 반대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 까닭일 것이다. 오히려 개별 투표로 끝나던 평소와 달리 표결에 앞서 격론이 오가고 ‘18세 이상 관람 가’와 ‘제한 상영 가’를 놓고 4 대 4로 팽팽히 맞섰다는 영등위 위원들의 고충이 너무 무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7분 간의 정사 장면을 보는 두 개의 눈



이 논쟁의 와중에서 ‘상식의 충돌’을 지켜 보는 일도 흥미로움을 배가시킨다. 이번 논쟁에서 찬반론자 모두가 내세운 잣대는 ‘상식’이었다. 4 대 4 상황에서 규정에 따라 위원장 직권으로 제한 상영 등급을 내린 유수열 위원은 그 기준을 ‘국민의 상식적인 시각’이라고 말한다. 7분 간에 걸친 성기 노출과 구강 성교가 일반인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영화잡지 편집장은 “포르노그라피와 단순한 포르노적 표현의 구분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항변한다. 제한 상영 가를 반대하는 것은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해서라기보다 오용되고 있는 상식을 복원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라는 요지다. 상식이란 것이 당대 사람들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성립되는 모호함을 특성으로 가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프로이트 시대의 의사들은 자위 행위가 정신병의 원인이며 구강 성교는 변태성욕자들의 행위라고 여겼다. 당시에는 그것이 상식이었다(싱가포르에서는 지금도 구강 성교가 실정법 위반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기혼자의 자위 행위도 자연스런 것이며, 구강 성교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선호하는 섹스의 형태로 가장 본능적인 성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죽어도 좋아>에 등장하는 7분 간의 정사 장면에 대해 한 영화감독은 제한 상영 가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골적인 오럴 섹스나 성기 노출 장면이라고 말하는 반면, 같은 장면을 두고 한 영화평론가는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롱 테이크요 가장 솔직한 러브신’이라고 평가한다. ‘상식의 충돌’도 그와 유사한 유형을 보인다. 원래 상식이란 ‘일반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일반적인 지식·이해력·판단력’을 일컫지만, 거기에 개인 성향이나 문화적 태도가 보태지면 같은 이름 아래 전혀 다른 상식들이 충돌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자기가 살고 있는 물의 성분을 분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에 맞추어 살아간다. 인간 사회의 ‘상식’은 물고기 처지에서 바라보는 물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적지 않게 상식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상식에도 등급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물이라도 깨끗한 1급수에서만 사는 쉬리나 동자개가 있고 3급수에서 살아가는 붕어나 잉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만일 상식등급분류위원회가 있어서 상식의 등급을 분류한다면 어떤 사람들이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분류할 수 있을까. 마주 세운 거울 속의 화상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