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은 ‘형님’ 집무실이었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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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 철창 안에서 조직 관리·호화판 생활…전·현직 의원 비호설 나돌아



8월6일 MBC 보도국에 전화가 걸려왔다. “진주교도소에 수감된 김태촌의 방에서 핸드폰·개인용 컴퓨터·현금 2백만원과 담배 20갑이 나왔다.”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MBC는 내부 고발로 여기고 취재에 들어갔다. 8월10일 법무부도 “김태촌이 수감된 병사동의 청소 도구함에서 현금 90만원과 담배 3갑, 쓰레기통에서는 일반 전화기가 발견되었다”라고 밝혔다. 9월9일 이번에는 법무부 교정국 홈페이지에 진주교도소 직원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제보가 올랐다. ‘김태촌의 행장급수 승급에 법무부 교정국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자 법무부는 “지난 5월 김태촌의 부인 이영숙씨가 김태촌의 행장급수를 올려 달라는 민원을 제기해 진주교도소로 이첩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행장급수 1급으로 초고속 승격



지난해 4월17일 김태촌(53)은 결핵 치료를 이유로 청송교도소에서 시설이 좋은 진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전 국회의원 ㅈ씨(민주당)와 현 의원 ㅂ씨(한나라당)가 힘을 썼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이감 두 달 만에 김씨는 행장급수 3급에서 2급으로, 지난 4월 2급에서 1급으로 초고속 승격되었다. 행장급수는 4급으로 나뉘는데, 급수에 따라 접견과 전화 사용 허용 횟수가 다르다. 3급은 전화를 사용할 수 없고, 면회는 월 5회로 제한된다. 그러나 모범수에 해당하는 1급은 접견 횟수에 제한이 없고, 전화 사용도 월 5회 허용된다. 3급부터 이루어지는 사회 견학에도 1급수는 참여하기 쉽다.



김태촌이 진주교도소로 이감되면서 측근들이 자주 면회를 갔다. 그의 대리인으로 알려진 이 아무개씨(47)는 “형수님과 면회를 자주 갔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마약복용혐의로 구속되어 자신도 옥살이를 하는 이씨는 “그렇다고 내가 핸드폰이나 돈을 전달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1996년 김태촌 동생의 주민등록증에 자기 사진을 붙여 김태촌을 마흔한 차례나 불법으로 면회했었다. 그는 이때 서방파를 대신 관리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김태촌은 1980년부터 지금까지 1년6개월만 제외하고 사회에서 격리된 장기수다. 조직폭력계에서는 황혼의 나이를 넘겼는데도 그에게는 ‘영원한 보스’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끊이지 않는 호화판 옥중 생활과 옥중 조직 관리 의혹 때문이다.



김태촌은 1980년 7월 군법회의에서 5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1986년 3월6일 만기 출소한 김태촌은 주먹계를 천하 통일한 강자로 떠올라 있었다. 옥중에서도 귀신처럼 조직을 관리한 덕분이다. 출소 4개월 만에 그는 인천 뉴송도호텔 황익수 사장을 습격해 다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겉으로는 이권다툼이었지만, 김태촌과 호형호제하던 당시 서울고검 박 아무개 검사가 황사장에게 모함당한 것이 범행 동기였다. 김태촌의 배경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1989년 1월 그는 폐암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순복음교회 부흥회에 참석하며 기독교에 귀의한 새 삶을 사는 듯이 포장했고, 한편으로는 범서방파 ‘신우회’를 결성했다. 1990년 5월 당시 심재륜 서울지검 강력부장에게 꼬리가 밟혀 그는 구속되었다. 이때 재판을 받으러 출두한 김태촌의 양말 사이에 끼워둔 담뱃갑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래서 폐암 진단이 허위가 아닌가라는 의혹도 일었다.



9월11일 법무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진주교도소 교도관 10명을 징계했고, 진주교도소 전 보안과장 이 아무개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김태촌은 다시 청송교도소로 돌아갔고, 두 달 동안 면회·독서·운동이 금지되었다. 그는 2004년 만기 출소한다. 출소한 뒤에도 최장 7년 동안 청송감호소에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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