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평가제를 평가한다
  • 정혜신 정신과의원 원장 ()
  • 승인 2003.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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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지난 대선 기간에 어느 언론은 노무현 후보의 중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경솔한 편이다’라는 평가를 근거로 의기양양하게 노후보의 경솔한(?) 성향을 질타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의 평가를 거의 절대적으로 믿는 눈치다. 비교적 근거리에서 교육적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선생님의 평가에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생님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상식적인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스승의 권위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신이 아닌 이상 한 인간의 평가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인식 체계는 불완전하다’는 인식은 인간의 인식을 더 완전하게 하는 전제가 된다. 대통령 경호원들은 대통령을 3중으로 경호한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아무리 조심해도 허점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다.


노무현 정부는 공직 인사에서 다면평가제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다면평가제란 윗사람만이 하던 일방적 하향 평가에서 벗어나 동료와 상·하급자 들이 해당자의 업적·능력·태도·리더십 등을 평가하는 제도이다. 다양한 평가 주체의 시각을 통해 객관성과 납득성을 확보하고 기존 평가 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평가 시스템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일부 민간 기업이 시행한 결과 ‘다면 평가는 결국 인간 관계 평가’라며 업무 실적보다는 동료·선후배 들과의 친교 쌓기에 골몰하는 부작용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 문제와는 별개로 다면평가제는 정신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 하나를 던진다. 바로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실체에 직면하여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문제다. 한 영화 평론가에 따르면, 공포 영화나 스릴러 영화는 이른바 ‘타자의 시선’을 드러내는 것을 장르의 규칙으로 삼고 있단다. 자신이 아닌, 다른 그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공포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힘들고 두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면 평가는 공정한 인사 틀로서만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더없이 요긴한 도구이다. 초등학생 아들을 향해 소리 지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이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다 보면, 혹은 20대 여성의 눈에 비친 중년의 내 모습이 어떨지를 상상하다 보면 나의 실체가 더 명료해질 것이다.


자연계에는 인간과 달리 겹눈을 가진 곤충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비의 눈을 확대해서 보면 표면이 그물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 육각형 그물문 하나하나가 눈이다. 작은 눈들은 각각 물체의 한 부분만을 볼 수 있지만 각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인식한다. 겹눈이 있음으로 해서 상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지는 곤충도 있다. 물 위에서 주로 생활하는 물매암이는 머리의 위아래에 한 쌍씩의 겹눈이 붙어 있어서 물 위에서 공격하는 천적과 물 속에 있는 먹이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다면 평가식 사고를 한다는 말은 겹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또한 건강하게 타인을 의식해 자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한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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