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타고 ‘포르노 서핑’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01.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네티즌, 유해물 차단 SW 무력화하는 ‘edonkey’로 음란물 즐겨



지난해 3월26일 경상남도 창원시 도계동에 있는 한 빌라 지하 창고에서 이 아무개양(6)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실종 사흘 만이었다. 목이 졸려 숨진 이양은 성폭행을 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현장에서는 정액이 묻은 콘돔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의뢰해 DNA를 분석했고, 우범자를 비롯해 인근 주민 6백30여 명의 혈액을 채취했다. 경찰은 변태 성폭행범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경찰의 예상은 빗나갔다.



사건이 발생한 지 9개월 뒤인 지난 1월3일에야 경찰은 용의자를 붙잡았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평범하고 내성적이던 고등학교 2학년 박 아무개군(17)이었다. 박군을 흉악범으로 만든 것은 사이버 포르노였다. 그는 “포르노를 본 뒤 충동에 못 이겨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는 또 다른 성폭행 사실을 14건이나 털어놓았다. 경찰 관계자는 “14건보다 더 많은데, 현장 검증이 가능한 것만 그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부모는 박군의 일탈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포르노의 바다가 된 인터넷, 하지만 컴도사 자녀를 따라가지 못하는 컴맹 부모.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인터넷이 포르노의 바다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오빠 왜 연락 없었어’ ‘국무총리를 추천해 주십시오’로 둔갑한 포르노성 스팸 메일이 무차별로 쏟아진다. 청소년에게 음란 스팸 메일을 보내면 최고 징역 2년 또는 벌금 천만 원을 물린다는 엄포도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뿐 아니라 시민단체는 유해물 차단 프로그램을 보급한다. 벤처 기업도 차단 프로그램을 상품화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고는 안심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에게 이같은 방심은 금물이다.



‘당나귀를 타고 포르노의 바다를 건넌다.’ 부모에게는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문이지만 컴도사인 자녀들에게는 널리 퍼져 있는 말이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 아무개군(16)은 밤마다 ‘당나귀’를 타고 포르노 서핑을 한다. 일명 ‘섹티즌’인 그의 컴퓨터에도 청소년 유해 매체물 차단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다. 어머니가 혹시나 해서 깔아놓은 것이다. 어머니 이미영씨(가명·39)는 “차단 프로그램을 깔았으니 함부로 성인물에 접속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씨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이렇게 착각한다.



최근 네티즌 사이에 널리 퍼진 당나귀 프로그램은 차단 프로그램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당나귀는 인터넷 파일 공유(P2P; Peer to Peer)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 정식 명칭은 당나귀를 뜻하는 ‘edonkey’인데, 네티즌들은 소리 나는 대로 ‘이동키’라고도 부른다. 미국에서 개발된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부터 급속하게 국내에 퍼졌다. MP3 공유 사이트 ‘소리바다’가 폐쇄되면서부터다.



지난해 7월30일 법원이 소리바다 폐쇄를 결정하자, 국내 네티즌들이 대안 프로그램을 찾아 나섰다. 그때부터 P2P 프로그램인 ‘구루구루’ ‘카자’ ‘그누텔라’ 등 외국 프로그램이 각축하다가 당나귀가 승기를 잡았다. 당나귀는 소리바다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소리바다는 MP3 파일을 공유했지만 당나귀는 MP3 파일뿐 아니라 영상·프로그램까지 주고받는다. 특히 ‘섹티즌’들은 동영상 공유에 주목했고, 국내외 섹티즌들의 마당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무료·익명성·방대한 자료 ‘3박자’ 갖춰



당나귀는 따로 가입 절차가 없고,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설치만 하면 동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다. 공유 파일이어서 돈이 들지도 않고, 가입 난이 없어 이름을 적을 필요도 없다. e메일주소만 입력하면 그만이다. 익명성까지 보장되는 것이다. 성인 사이트에 가입해서 동영상을 내려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차단 프로그램으로는 P2P 서비스를 막을 수가 없다.



경찰도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 관계자는 “음란물이 넘쳐난다고 해서 프로그램 개발자를 처벌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공유된 서버를 찾아 네티즌을 처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당나귀 프로그램 사용자를 핸드폰 사용자에 견주면, 통화 중에 욕설을 퍼부은 사람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적발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당나귀 프로그램은 사무실 같은 데서도 버젓이 실행할 수 있다. 마니아들은 사무실에서 집에 있는 컴퓨터를 원격 조정해 동영상을 내려받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김 아무개씨(28)는 야근할 때마다 당나귀를 타고 ‘야동’(야한 동영상)을 검색한다. 매번 수백 개씩 서버가 뜬다. 김씨는 제목을 보고 마음에 드는 것만 클릭한다. 그 다음부터는 컴퓨터가 알아서 내려받는다. 김씨는 다른 창을 띄워놓고 업무를 계속한다. 뒷자리에서 함께 야근하는 여사원은 김씨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익명성과 방대한 자료로 무장한 당나귀를 한 번이라도 탄 네티즌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학생 장 아무개씨(26)도 친구들 사이에 유명한 섹티즌. 당나귀를 접한 뒤부터다. 대학 3학년인 그는 매일 밤 당나귀로 ‘야동’을 즐겨 보아 지난해에는 성적이 바닥을 헤맸다. 포르노에 빠져 허우적댄 그는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행동하는 섹티즌으로 거듭났다. 지난해에만 한 달에 4∼6회까지 사창가를 들락거렸다. 지난해 11월, 그는 제발로 인터넷중독센터를 찾았다.



그나마 장씨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다. 문제는 중독성이 강한 10대들이 상담센터를 찾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대부분 부모와 함께 오는 청소년들은 게임 중독자라고 끌려온다. 그런데 상담해 보면 거의가 사이버 포르노에도 중독되어 있다.” YMCA 인터넷상담실 송언희 간사의 말이다. 송간사는 인터넷에 집착한다 싶으면 일단 상담실을 찾는 것이 중독을 막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어? 나도 사이버 섹스 중독자네”


1.인터넷에서 성적인 내용을 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2. 채팅방이나 게시판에서 섹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3. 인터넷에서 포르노그래피를 수집한다.

4. 인터넷에서의 성적인 관계를 줄여보려고 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5. 밤을 새워서 피곤하거나 지각하는 등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업무를 방해한다.

6. 가족이나 친구에게 인터넷 사용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7. 인터넷에서의 환상적인 관계 때문에 사회 활동 또는 가족 관계가 줄어든다.

8. 인터넷에서 음란물을 보지 말라는 가족과 친구들의 요구를 들을 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



* 위 진단 항목 가운데 자기에게 1∼2개가 해당된다면 가족이나 친구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라. 3개 이상이라면 전문 상담 센터를 찾아야 한다.

자료: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사이버중독정보센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