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위에 ‘카투사’ 있는가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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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이승만·맥아더 ‘구두 합의’로 설치…법적 근거 없이 운영돼
지난 2월13일, 경기도 동두천시 미군 제2사단 캠프 케이시 군사 법정. 주한미군 장교 4명과 부사관 3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은 피고 렝 석 병장(워싱턴 포트 루이스 21보병연대 3대대 소속)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배심원들은 30년 징역형과 함께 이등병 강등, 봉급 전액과 수당 몰수, 불명예 제대를 선고했다. 석 병장의 혐의는 ‘폭행·음란 행위·계간·허위 진술·불법 공모’등이었다.





지난해 3월3일, 석 병장은 의정부 캠프 젝슨의 카투사 신병교육대에서 ㄱ씨를 다른 미군 2명과 함께 성폭행했다. 석 병장은 야외 화장실에서 ㄱ씨의 목을 잡고 칼로 위협했다.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당한 ㄱ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당시 렝 석 병장을 비롯한 주한미군은 하사관 교육을 받고 있었다. 공무 중에 일어난 범죄가 아니므로 재판권은 우리쪽에 있었다. 하지만 사건이 공개되기를 원치 않는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미군측에 넘어갔다.
재판정에서 피해자 ㄱ씨를 인터뷰한 <성조>지 보도에 따르면, 그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다. 당시 받은 충격 때문에 악몽과 환각에 시달려 수면제를 복용하고, 심지어 구토와 호흡 곤란으로 고통받고 있다.



전세계에 하나뿐인 ‘독특한 부대’



1950년 카투사 창설 이래 성폭행 사건이 공론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시·행시·외시에 이어 ‘카시’로 불릴 만큼 치열한 경쟁률을 자랑하는 카투사. 이번 사건은 카투사의 존립 기반인 주한미군 감축론과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카추샤’로 잘못 발음되어 온 카투사(KATUSA)는 ‘미군에 증원된 한국군’(Korean Augmen- 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이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부대이다. 국방부도 <카투사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책자에서 ‘역사상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제도’라고 인정했다. 고용 관계인 용병과 달리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국민이 타국 군대에 제도적으로 편입되는 경우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카투사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카투사는 1950년 한국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연합군사령관과 맺은 비공식적인 구두 협정에 따라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았다. 1998년 당시 천용택 국방부장관은 국회에서 “50여 년 동안 카투사 제도가 아무런 규정 없이 운영되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법적 근거 대신 실무 차원에서 마련된 미8군 600-2 규정과 대한민국 육군 규정 302가 전부다. 그나마 있는 규정도 서로 충돌한다. 미8군 규정 600-2에는 ‘카투사 요원은 주한미군 육군 부대에 예속되어 있으나 미군은 아니며 미국 육군 군법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는 정반대로 ‘합중국 군대에 파견 근무하는 대한민국 증원군대(카투사)의 구성원은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으로 간주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정작 카투사 제도가 규정되어 있어야 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의 모법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법적 근거도 없는데도 카투사가 유지되고 있는 까닭은 현실적인 요구 때문이다. 국방부는 카투사 폐지가 미국의 방위비 분담액 인상 요구로 이어진다며 망설인다. 카투사는 현재 4천6백여 명. 인사행정권은 미8군 한국군 지원단이, 지휘권은 미8군이 행사한다. 카투사를 관리하는 한국군지원단은 1997년에야 육군에 정식 편제되었다.



파월 국무장관, 카투사 극찬?



카투사는 한국군과 동일하게 한국군에서 월급을 받고, 보급품은 미군에서 받는다. 미군 처지에서는 값싼 고급 인력을 제공받는 셈이다.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회고록 에서 카투사를 이렇게 말했다. ‘(카투사)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군기가 있었으며 지식 습득 능력이 우수했다. 그들은 미군 병사 한 사람이 동두천에서 밤에 맥주를 마시며 써 버릴 수 있는 액수보다 적은 3달러(1973년 기준)를 매월 받을 뿐이었다.’ (국방부는 2002년 4월에 발간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에 파월의 카투사 예찬론이라며 이 글을 인용했다)
관례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겨온 카투사 제도에 대해 이장희 교수(외국어대·법학)는 하루빨리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교수는 “올해가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이다.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거나 새 정부가 작전통제권을 회수하면 카투사 제도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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