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이 결혼하면 부모까지 괄시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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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료원 등 이상한 남녀차별…복지 혜택 달리 적용
연세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김 아무개씨는 일은 고되지만, 가족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면 그나마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자기가 병원에서 일하는 덕에, 지병이 있는 아버님의 진료비 부담을 꽤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 부모의 경우 본인 부담금의 50%, 그리고 이른바 특진비로 불리는 선택진료비는 100% 감면받는다.

하지만 결혼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친정 아버지가 결혼 전과 똑같은 치료를 받는데 부담할 돈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사정을 알아보니 여성 직원이 결혼할 경우 친정 부모에 대한 감면 혜택이 50%에서 30%로, 특진비는 100%에서 50%로 뚝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병원 복지과가 들려준 답변은 이랬다. “결혼한 여직원의 경우 친정 부모 혜택이 줄어든다. 대신 시부모가 더 혜택을 받는다.” 반면 남자 직원들은 본인 가족에 대한 감면 혜택이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달라질 것이 없었다. 그리고 결혼 후 배우자의 부모인 장인·장모에게는 30% 감면 혜택이 주어졌다.

그러니까 여성인 김씨에게는 그 혜택이 거꾸로 적용된 것이었다. 남성 직원은 결혼 후 ‘자신의 친부모 50%, 배우자 부모(장인·장모) 30%’가 적용되지만, 여직원은 거꾸로 ‘친부모 30%, 배우자 부모(시부모) 50%’가 적용되는 것이다.
지난 8월17일 여성부는 연세의료원의 이와 같은 관행에 대해 남녀 차별 행위라고 결정하고 시정 조처를 권고했다. 배우자 부모에 대한 혜택이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명백한 남녀 차별이라는 것이다. 현재 연세의료원의 여직원 비율은 75% 남짓.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이 기혼 여성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이와 같은 복지 제도를 운영해온 연세의료원으로서는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연세의료원 복지과 함도경 계장은 “과거에 결혼한 여성은 시부모를 봉양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시부모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것이 더 현실적인 지원책이었다. 복지 정책을 뒤늦게 손질한 다른 병원들은 변화한 현실을 반영해 본인 부모든 배우자 부모든 같은 감면율을 적용하는 규정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면율은 우리 병원보다 낮다. 그렇다고 이미 올려놓은 감면율을 낮추기도 어렵고, 여성부 권고를 받아들이려면 예산이 열쇠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연세의료원의 복지제도는 ‘결혼한 여성은 출가외인’이라는 관념이 적용될 때 마련된 틀을 그대로 유지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사건을 조사한 여성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경기지역 7백개 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6대 광역시 종합병원 등 23개 병원 가운데, 기혼 직원에 대한 감면 대상과 혜택을 성별에 따라 달리 적용하는 곳은 연세의료원 한 곳뿐이었다. 시쳇말로 망신살이 뻗친 것이다.

이번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의 결정은, 직권 조사에 따른 것이다. 고발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지한 뒤 직권으로 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현재 병원측과 단체협상을 벌이고 있는 연세의료원 노동조합의 김순희 국장은 “단체협약 때마다 개선을 요구했으나 병원측은 예산 문제를 들어 묵살해왔다. 올해도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라고 밝혔다.

노조는 현재 본인 부모이든 배우자 부모이든 동일하게 50% 감면 혜택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병원 수지 현황을 볼 때, 이런 해결책이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병원측은 복지 예산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직원 부조금 차별 지급하는 국립 대학도

‘결혼한 여성은 출가외인’이라는 관념을 계속 적용해 오다가 시정 조처를 받은 사업장은 또 있다. 지방 국립 대학인 ㅂ대학은, 부설 고등학교까지 포함해 전체 직원이 무려 1천5백명에 달하는데, 직원부조회 규정을 해석하는 관행이 문제가 되었다.

ㅂ대학 부속 고등학교 교사인 송미희씨(가명)는,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부조회를 관리하는 총무처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하지만 ‘친정 부모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공립 교사의 특성상 순환 근무를 하면서 직원 상호 간의 부조 관행을 알고 있는 송씨로서는 요령부득인 일이었다.

알아보니 직원부조회는 ‘직계 존속 사망’을 부조금 지급 사유로 못박고는 있었다. 하지만 직계 존속을 풀이할 때, 남자는 친부모로 여성은 시부모로 해석해온 것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해석법에 송씨는 기가 막혔다. “24년 동안 죽 그렇게 해왔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총무처 담당자의 말을 듣고 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부조회라고는 하지만 그 운영은 대학이 맡고 있는데, 구멍가게도 아닌 국립 대학에서 그런 관념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송씨는 대학 총장 앞으로 시정을 요구하는 편지를 내용 증명으로 보냈으나 답이 없었다. 이후 여성부 남녀차별신고센터 문을 두드렸다. 여성부 조사과에서 현장 조사를 나갔을 때도 대학측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기혼 여성이 실질적으로 시부모를 봉양하는 현실을 반영했으며, 여직원들도 크게 불편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건 담당관이었던 여성부 조사과 최형묵씨는 대학측에 여론조사를 제안했다. ‘여직원의 뜻’을 핑계 삼으니 ‘여직원들의 뜻을 확인하자’고 응수한 것이다. 당시 이 대학의 전체 직원은 교수 8백여 명을 포함해 1천5백명에 달했고, 그 가운데 여직원은 26%였다.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9%가 ‘기혼 여성의 직계 존속을 친부모가 아닌 시부모로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답했다.

이 사건은 올 봄 여성부가 정리한 2003년 남녀차별 사례집에 익명으로 실려 있다. 게다가 사건을 신고했던 교사 송씨는 ‘소급 적용은 안된다’는 대학측의 태도 때문에 이의를 제기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보지 못했다(당시 규정 부조금은 2백만원). 송씨는 “규정이 바뀐 것에 의미를 두고 물러섰다. 어차피 부당한 행위라고 생각해서 한 것이고, 이렇게 고쳤으면 된다”라고 말하면서도 “케케묵은 관행이 지속되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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