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방 업주들이 유영철 체포·수사했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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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 사건 ‘5대 미스터리’ 추적/경찰·검찰 발표에 허점 많아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씨가 살해한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연민을 느낀 사람이 있다. 남편이 실직해 어쩔 수 없이 출장 마사지에 나서야 했던 권 아무개씨였다. 유씨는 권씨에게 “너도 나처럼 갑갑한 인생이다. 힘들고 괴로우니 빨리 죽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쇠망치를 휘둘렀다.

그러나 유씨 자신도 빨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서울시경찰청 기동수사대에서 도망쳤다가 다시 붙잡힐 당시 유씨가 가지고 있던 수면제 3백60알은 자살용이 아니었다. 독실아민 성분인 수면제는 다량으로 섭취할 경우 설사를 할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 사실을 유씨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자살하기 위해 수면제를 가지고 인천에 가다가 붙잡혔다’고 발표했다. 사실과 다른 대목이다.

‘살인 일지를 썼다.’ ‘사람의 간을 먹었다.’ 유영철이 잡힌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엽기적인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하도 많은 말을 쏟아내 어지러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허점이 많다. 수사한 경찰과 검찰의 발표에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많다. 유영철 사건의 5대 미스터리를 짚어보았다.

1. 유영철은 누가, 어떻게 붙잡았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체포 과정을 밝힌 경찰의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이 밝힌 검거 경위는 이렇다. 7월15일 오전 2시30분 기동수사대의 한 형사는 자신의 정보원인 보도방 업주로부터 “우리 애(출장 마사지 여성)가 실종됐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유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위치 추적에 나섰던 경찰은 5시가 넘어 유씨가 나타났다는 추가 연락을 받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보도방 주인 4명과 합세해 유씨에게 수갑 2개를 채웠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제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된다. 7월13일 서울 신림동의 한 보도방에 소속된 여자가 사라졌다. 그때가 세 번째였다. 장부를 보니 모두 ‘6523’ 전화를 받고 난 후였다. 주변의 보도방 업주들에게 연락해보니 강남의 한 여성도 ‘6523’ 전화를 받고 나간 후 행방이 묘연했다. 보도방 업주들을 수소문한 결과, ‘6523’은 실종된 우 아무개씨의 죽은 어머니 전화였다. 보도방 업주 임 아무개씨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서울 전역의 보도방 업주들에게 연락해 ‘6523’번에게서 연락이 오면 바로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7월15일 새벽 5시, ‘6523’번이 서울 신촌의 한 업소로 아가씨를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다. 임 아무개와 차 아무개 씨는 선배와 동료에게 연락했다. 이들 5명은 여자 한 명을 태우고 신촌으로 내달렸다. 차 안에서 한 사람이 기동수사대의 아는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들은 마포경찰서 서강지구대에 가서 ‘납치범이 나타났다’고 신고했다. 이들이 서강지구대 김 아무개 경장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해 겨우 지구대를 나설 수 있었다. 미끼 역할을 할 여자는 택시를 태워 보내고 제보자들은 차 3대에 나누어 타고 택시를 따랐다. 그 중 한대에는 김경장이 탔다.

오전 5시30분 신촌 그랜드마트 뒤편 굴다리. 의심이 가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유영철씨였다. 차에서 내린 보도방 업주들이 유씨를 에워싸고 몸수색을 했다. 하지만 유씨는 태연하게 “반팔 입은 사람이요? 이리로 갔어요”라고 말했다. 보도방 업주들은 의심했다. 공범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차에 태웠다.

그런데 조수석에 탄 유씨가 무언가를 입에 털어넣었다. 약을 먹는 것으로 알고 제지했는데 입에서 출장 마사지 전단지가 나왔다. 잠시 후 자동차 바닥에 버린 ‘6523’ 전화기도 발견했다. 이때 기동수사대 양 아무개 형사가 도착해 옆에 있던 파출소 직원과 수갑을 채웠다. 이때까지도 보도방 업주들과 경찰은 자기들이 잡은 남자가 유영철인지 모르고 있었다.

기동수사대 강대원 대장은 “제보자들이 유씨를 잡기는 했으나 어쨌든 경찰관이 현장에 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 바 있다.
유영철씨가 수사 과정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닌 것도 의혹을 부풀렸다. 경찰이 별 이유 없이 수사 기간을 연장하자 의혹은 꼬리를 물었다. 경찰이 폭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7월15일 새벽, 붙잡힌 유영철은 한 사람이 목을 누르고 다른 사람이 입을 벌리는 동안에도 씹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 보도방 업주는 “무언가를 털어넣고는 계속 씹었다. 자살하려는 간첩인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급소를 움켜잡고 눈을 꼬집어도 유씨는 ‘악’소리 한 번 않고 계속 씹었다. 멈춘 승용차 안에서 실랑이가 10분 넘게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보도방 업주가 반항하는 유씨를 때렸다. 이때 한 업주가 식당에서 숟가락 두 개를 얻어와 입 안에 있는 전단지를 파냈다. 입술이 다 터졌고 입 주변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유씨가 마스크를 쓴 것은 이 때문이다.

유씨의 오른쪽 눈 주위가 심하게 충혈된 것은 파출소에서 유씨가 간질 증세를 보였을 때 보도방 업주가 날린 주먹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 보도방 업주는 유씨가 간질을 연기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유씨는 한 대 맞은 후 바로 간질 연기를 멈추었다고 한다. 파출소에 연행되면서 유씨는 한 쪽 다리를 절었다. 경찰은 영장에서 ‘도망가기 위한 지능적인 연기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실은 보도방 업주들에게 허벅지 주위를 폭행당했기 때문이다. 한 보도방 업주는 “유영철이 하도 거칠게 반항해 낭심을 잡고 허벅지를 때려 힘을 뺐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기동수사대 경찰은 “검거 과정에서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다. 유영철의 상처가 빨리 회복되어 검거 1주일 후 마스크를 벗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3. 왜 연쇄 살인 실토했나?

이번 사건 최대의 미스터리는 유씨가 연쇄 살인 사건을 스스로 털어놓았다는 점이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를 출장 마사지 여성 실종과 관련된 혐의로 체포하자 유씨는 “여자를 납치한 일은 없고 노인들은 많이 죽였다. 26명을 죽였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납치 관련 용의자가 납치 혐의를 벗기 위해 스스로 살인을 했다고 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유씨는 체포 과정에서 자신을 폭행한 보도방 업주들이 경찰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보도방 업주들이 “○○ 죽였지?”라며 사라진 보도방 여성 4명의 이름을 번갈아 대며 집요하게 물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씨는 “애들 잘 있어요”라고 말했다. 꼬리를 잡자 이들의 추궁은 더욱 집요해졌다. 업주들이 “장 아무개도 죽였지?”라고 묻자 “아! 설희요?”라며 유씨가 가명을 댔다. 유씨가 장 아무개씨를 죽였다는 것을 확신하고 추궁했다. 결국 기동수사대에서 유씨는 “죽였다. 내가 입을 열면 사회가 뒤집힌다”라고 자백했다. 보도방 업주들의 폭행과 집요한 추궁이 유씨의 입을 연 것이다.

기동수사대에 도착한 지 3~4 시간이 지난 점심 무렵에야 유씨는 보도방 업주 일행이 경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 다음부터는 발뺌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경찰은 ‘유영철의 고도의 심리전이다’라고 발표했다.
한 보도방 업자는 SBS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데 공적 싸움만 한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보도방 업주들이 수사까지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기동수사대에서 유씨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기 시작했다. 서울 신사동과 혜화동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횡설수설했다. 증거가 없었다. 몇몇 형사가 풀어주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보도방 업주들은 살인범이 분명하다며 펄쩍 뛰었다. 유씨를 붙잡은 업주 6인은 기동수사대에 3일 동안 머무르며 수사 과정에 적극 간여했다.

제보자 임 아무개씨는 유씨의 전과 기록에서 공무원 사칭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임씨가 데리고 있는 조 아무개씨가 지난 5월 초 자신을 경찰이라고 밝힌 사람에게 돈을 빼앗긴 사실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임씨는 유씨의 사진을 카메라폰으로 찍어 조씨에게 전송했다. 조씨는 즉각 경찰이라고 밝힌 사람이 유씨가 맞다고 확인했다. 조씨가 기동수사대로 달려와 유씨와 대질 신문을 했지만 유씨는 조씨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이때 한 보도방 업주가 기지를 발휘했다. 조씨가 사는 서울 봉천동 ㅂ아파트 폐쇄회로에 유씨의 정면 사진이 찍혔다고 둘러대자 유씨는 두 손을 들었다. 보도방 업주들은 주위를 수소문해 유영철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는 운전사를 찾아내기도 했다. 경찰은 유씨를 강도 및 공무원 사칭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할 수 있었다.

경찰은 보도방 업주들에게 포상금 5천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혜화동 노부부 살인 사건에 걸린 포상금만도 5천만원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경찰은 5명에게 5백만원씩 2천5백만원만을 내놓았다. 미끼 역할를 하며 위험을 무릅쓴 여성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강력계 관계자는 “살인 사건 제보가 아니었고 용감한 시민장을 수여하기에는 시민의 표상이 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제보자들의 활약상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경찰은 제보자들에게 언론과 접촉하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성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과 출장 마사지 여성 살해 사건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없다는 점 또한 의문이다. 유씨는 구기동과 혜화동 살해현장 검증에서 텔레비전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기가 범인이라고 말하는 등 횡설수설했다.

유씨가 살던 신촌의 오피스텔은 보증금 3백만원에 월세가 40만원이다. 유씨가 살인 흔적을 없애기 위해 한 달에 사용한 수도료만 40만원이 넘었다. 유씨는 유흥업소 여성들을 주기적으로 불러 돈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 단돈 몇만 원 때문에 사우나에서 좀 도둑질을 계속해야 하는 처지였다. 지난해 9월 신사동 사건에서는 현금이 7천여만원과 다이아몬드가 든 보석 상자가 찾기 쉬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손도 대지 않았다. 구기동 사건의 경우 옷장에 6백만원이 넘는 현금을 그대로 두고 나왔다. 담당 경찰은 “유영철은 살인과 도둑질은 철저히 별개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절도로 전과 14범이 된 유씨가 살인 현장에서 돈을 두고 나왔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노인 연쇄 살인 현장에서는 260mm 크기의 버팔로 신발 흔적이 나왔다. 경찰은 전국에서 팔린 버팔로 신발 1만5천 켤레 가운데 260mm를 구입한 3백77명을 샅샅이 뒤졌다(<시사저널> 제756호 참조). 한 검찰 관계자가 “275 mm짜리 신발 증거를 찾았다”라고 발표한 것도 석연치 않은 점이다. 검찰의 발표는 나중에 255~ 265mm로 정정되었다. 단순 실수였다는 것이다. 유영철씨 집에 있던 신발은 크기가 모두 275mm였다.

한 기동수사대 형사는 “유영철은 ‘형님, 미제 사건 있으면 제가 책임지고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특진 걱정 마십시오’라고 말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후 유씨는 자신의 범행을 마구 자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살인 2건을 저질렀고, 서울 서남부 지역 살인 사건도 자기 짓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서울 원남동 노인 살인 사건도 저질렀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이 유씨의 통화 내역을 조사한 결과 위 세 사건과 유씨는 연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인천 월미도 노점상 살해 사건도 유씨의 범행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유씨는 뻔히 드러날 거짓말도 태연하게 했다. 최근 검찰에서 유씨는 결혼을 하루 앞둔 예비 신부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유씨는 이에 앞서 경찰에서 신부 사진을 보고 “이 애는 안 죽였어요. 제가 이런 스타일 싫어하잖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격한 상황에서 이판사판으로 나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라고 말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도 “실제 자신이 한 행동에 상상력을 동원해 악명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범죄 세계에서 영웅으로 기록되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영철은 2003년 11월18일 서울 혜화동 살인 사건 이후 2004년 2월26일까지 살인 행각을 멈추었다. 그러나 지난 1월 동거녀 김 아무개씨를 만나기 이전에도 여성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유씨는 1월 동거녀 김씨에게 목걸이·팔찌·귀고리 등 여러 중고 액세서리를 선물했다. 유씨는 지나다가 습득한 것들이라고 둘러댔다. 김씨가 헤어지자고 하자 유씨는 김씨를 36시간 동안 묶어 놓고 “너 같은 애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야. 완전 범죄가 없을 것 같아? 많아. 절대 잡히지 않을 사건들을 많이 저질렀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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