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저지르는 무서운 초등학생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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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흉악 범죄 갈수록 증가 연령 낮아 형사처벌도 곤란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두고 있는 최진영씨(가명·43) 가족은 두 달 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일을 겪었다. 놀이터에서 놀던 딸이 ‘이리 좀 와보라’며 접근한 소년 4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비슷한 또래여서 의심 없이 따라간 것이 화근이었다. 딸의 변을 알게 된 최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범인 2명이 곧바로 잡혔는데 놀랍게도 모두 초등학생(12세)이었다. 형사상 처벌 가능한 나이인 14세보다 어리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그 날로 풀려났다. 최씨는 “형사들도 더 이상 공범을 잡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가해자 부모들은 이미 가출한 자식이라며 방관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것 아닌가. 억울하고 답답하기만 하다”라고 말했다.

범죄자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면서 그동안 통계 분류 항목에도 없었던 초등학생 성범죄가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대처는 아직 미비하다.

지난 10월2일 ㄱ시 ㄷ초등학교 6학년 정효용군(가명·12세)과 5학년 박순철군(가명·11세)이 강간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들은 지난 9월30일 하교하는 여학생(5학년·11세)을 ‘누가 너를 찾는다’며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유인해 강간했다. 이 아이들은 주차장 CCTV에 얼굴이 찍히는 바람에 잡혔다.

정군과 박군이 강간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지난 7월에도 길 가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를 다리 근처 공사장으로 끌고 간 적이 있다. “저기 가면 재미있는 것이 있다”라고 속였지만 낌새를 챈 여자아이가 도망을 쳐 위기를 모면했다. 정군과 박군은 경찰에서 “중학생 선배 집에서 포르노를 본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외진 곳으로 유혹하는 방법은 인터넷에서 보았다고 말했다.
“중학생 선배 집에서 포르노 보고 범행”

두 학생이 다니는 학교의 교감은 “교육상 역효과를 막기 위해 사건 내용이 주변에 퍼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정군은 사건 이후 전학을 갔다. 박군의 보호자는 암투병 중인 할머니뿐이다”라고 주변 정황을 설명했다. 비록 풀려나기는 했지만 정군과 박군 사건은 법원 소년부에 송치되어 보호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동안 7~13세(초등학교 2학년~중학교 1학년) 강간 가해자는 12명이다. 그 중 1명은 9세 미만이었다. 하지만 14세 미만은 형사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검찰 통계에 잡히는 경우는 실제 발생한 사건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다.

12~13세 어린이는 소년법을 적용한다. 1호에서 7호까지 일곱 가지 처분을 할 수 있는데, 형벌이라기보다는 사회보호명령이다. 청소년은 소년원에 수용(7호)되지만 초등학생의 경우는 2호와 3호에 해당하는 보호관찰을 받게 된다. 보호관찰소는 소년원처럼 격리 수용하는 시설이 아니고 단지 관리인이 정기적으로 상담과 점검을 하는 곳이다. 현재 전국 33개 보호관찰소에 초등학생 13명이 등록되어 있는데, 그 중 성폭행 사범이 2명이다.

ㄷ시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권지원군(12세·가명)은 8월16일부터 ㄷ보호관찰소가 관리하고 있다. 지난 4월 권군은 같은 학교 1학년 여자아이를 방과 후 학교 창고로 불러내 옷을 벗기고 강간했다. 이틀 뒤 부모 신고로 붙잡혀 지방법원 소년부 판결에 따라 보호관찰 2년 처분을 받았다.

권군의 부모는 11년 전 권군을 낳은 지 4개월 만에 이혼했다. 권군의 형(19세)은 가출한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함께 사는 아버지는 직업상 자주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 권군은 홀로 사글세방에 남아 있을 때가 많았다.

성폭행 피해자 가족은 행방을 감추고 이사를 간 상태다. 권군 역시 전학을 두 번 갔다. 사건 직후인 4월 소문을 피해 전학한 권군은 지난 8월에는 보육원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한 번 더 학교를 옮겼다. 권군의 아버지는 “이대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해 종교 재단이 운영하는 보육시설에 맡겼다. 1주일에 한 번씩 만난다. 나하고 있을 때보다 아이가 더 밝아 보인다. 형편이 나아지기 전까지는 계속 위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권군을 맡고 있는 관찰관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상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권군의 경우는 그나마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 왔다. YWCA에서 미술심리 치료도 받았고, 의료기관에서 한 달간 심리 검사와 적성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성폭력위기센터 김윤정씨는 “현행 보호관찰 프로그램 내용에 성폭력과 관련한 교육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초등학생 범죄자 사례를 추적하면 거의 대부분 가정 환경이 비정상이거나 불우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ㄷ보호관찰소의 한 관찰관은 “환경 탓도 있지만, 중산층 자녀의 경우 보호관찰 단계까지 오기 전에 경찰이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생 성폭행 100건 가운데 보호관찰소까지 오는 경우는 한두 건도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 김현정 소장은 “대부분 경찰에서 훈방되기 때문에 보호관찰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라고 말했다.

성폭력위기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사례 가운데 가해자가 어린이(7~13세)인 경우는 2001년 3%에서 2003년 4.2%로 꾸준히 늘고 있다. 여성부 산하 어린이 성폭력 피해 지원 기관인 해바라기아동센터 최경숙 소장은 “접수된 어린이 성폭력 가해자 가운데 30%가 초등학생이다. 어린이들에 대한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 성폭력 상담기관 간사는 “요즘 아이들의 육체적 성숙은 무서울 정도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유치원생을 교회로 데려가 성기를 삽입한 일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유치원생 강간하기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임상심리 전문가 이영준씨는 “가해자 연령대가 계속 낮아져 지금은 초등학교 1·2학년까지 내려간 상태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에는 자신의 음욕보다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를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가해 어린이 부모들 가운데에는 법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정 소장은 “가해자 부모들이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사정하다가 막상 형사 처벌 나이가 14세까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안면을 바꾼다. 한번은 미성년 가해자에게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기로 겨우 합의했는데 결국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소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교육이 꼭 필요하지만 현행 제도로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라고 말햇다.

전문가들은 꼭 강간이 아니더라도 치마를 걷어올리거나 성적인 욕설을 하는 식의 장난에 대해서도 ‘아이들이니까 괜찮다’며 넘어가지 말라고 말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올해 4월 초등학교 고학년생들을 위한 성폭력 예방 비디오 <우리들의 약속>을 제작했다. 비디오 내용은 아이스케키(치마 걷어올리기), 브래지어 당기기 장난을 치던 주인공들이 성폭력의 개념을 깨닫고 반성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현행 형사 처벌 기준이 14세인 것에 대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황만석 박사는 “우리 나라가 외국보다 형사 처벌 기준 연령은 낮은 편이다. 더 낮추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경우는 15세, 일본의 경우는 14세다. 황연구원은 “그렇지만 외국에 비해 어린이 보호 시설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소년법과 아동복지법은 일본을 모델로 삼아 만들었지만 정작 일본이 법제화한 어린이상담소나 어린이보호치료시설은 거의 없거나 유명무실하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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