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순교 위해 전쟁터로 간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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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선교 강행해 정부와 마찰 빚은 목회자들 ‘육성 고백’
‘한국 선교사들은 공격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선교하기가 힘든 지역까지 침투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 11월1일 미국 뉴욕 타임스는 한국 기독교의 왕성한 중동 선교 현황을 요르단발로 보도했다. 이 보도를 예고라도 하듯, 지난 10월28일 한국인 목사 일행 5명이 준(準)전쟁 지역인 이라크에 입국해 외교부와 정부기관에 비상이 걸렸다. 외교부는 자이툰부대 파병 이후 이라크 입국을 자제해야 한다며 이들을 강력히 비판했고, 목사 일행은 11월2일 돌아왔다.

<시사저널>은 이들이 누구인지, 왜 그토록 이라크로 가려 했는지 알기 위해 이라크에서 귀국한 목회자 5명을 직접 만났다. 목회자들의 행동에 대한 가치 판단과 평가는 배제한 채 일단 이들의 육성을 들어보기로 했다.

‘전 성도 제자화· 전 제자 사도화·전 사도 순교화’. 서울 노원구 ‘서울본향교회’ 입구 위에 걸린 표어다. 이 교회는 6층 건물 중 2층을 쓰고 있는, 신도 30여 명의 작은 교회이지만 벽 곳곳에는 이라크·방글라데시 등에서의 선교 사역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 교회 담임 김종성 목사(52·세계선교부흥운동본부 본부장)가 10월 말 이라크에 입국한 선교단을 이끈 주역이다. 김목사는 매달 마지막 날이면 외국으로 선교를 떠난다며, 지금까지 목회 활동을 벌인 곳이 35개국이 넘는다고 말했다. 출국할 때마다 순교를 각오하는 유서를 쓴다고 한다.
현지 교회에 현금과 컴퓨터 등 지원

김목사는 이라크 북부 모술에 있는 협력 교회를 돕기 위해 이라크에 갔다고 말했다. 본향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던 이라크 모술 교회로부터 ‘라마단을 맞아 무장세력이 교회를 점령했고 목사(아스랍 모세)와 신도들이 피신하게 되었다’는 긴급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라크 신도들을 위로하고 교회를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라고 말했다.

김목사가 이라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7월부터였다. 당시 무작정 이라크 북부 모술로 향한 그는 지역의 한 교회를 찾아가 결연했다. 바그다드가 아니라 굳이 북부 모술 지역에서 활동한 이유는 모술이 옛 니느웨 지방이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에서 니느웨는 요나서(구약 성경)의 주무대이며, 예언자 요나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김목사는 “내가 목사가 된 계기가 요나서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목사는 “지난 1년간 모술 교회에 6천 달러를 후원했다. 대형 교회의 선교 예산에 비하면 적은 돈이지만 이라크 사정을 감안하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 텔레비전과 컴퓨터 같은 기자재를 지원했다. 김목사에 따르면, 한국 기독교계의 후원이 있은 후 해당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해 최근 신학생 40명이 새로 생기고 모술 시내에 교회가 3개 신설되었다고 한다. 교회 이름(임마누엘·올드타운)도 한국 후원 교회의 이름에서 땄다.
김목사의 이라크 선교는 지난 10월로 다섯 차례나 된다. 10월25일 김목사와 함께 인천공항을 출발했던 목회자는 김명길 선교사(60) 박 아무개 목사(47) 이 아무개 전도사(54) 이 아무개 선교사(54) 등 5명. 교회도 다르고, 장로교·침례교 등 교파도 다양했다. 이들은 이라크에 입국하기 전 시리아에서 순교선언문을 썼다. 도화지 크기의 종이에 영어와 아랍어로 쓰인 선언문은 ‘우리가 죽으면 돈은 전쟁 고아와 과부들에게 주십시오. 시체는 이라크 대학병원에 해부실습용으로 쓰이게 하십시오’라고 시작하고 있다. 선언문 아래에는 각자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

박목사는 “원래 각자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도록 10여 개를 만들었다. 이라크인에게 우리의 뜻을 알려 이해를 도우려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라크 안에서 목에 걸고 돌아다닐 겨를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일행은 10월29일 모술에 도착했다가 모술 교회로부터 ‘당신들이 모술에 있으면 교회 신도들이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는 간청을 듣고 바그다드로 돌아갔다. 그날 밤 한국대사관 직원들과 경비요원들은 바그다드호텔에 묵고 있는 일행을 발견했고, 일행은 숙소를 대사관으로 옮겼다. 그리고 10월31일 요르단을 떠나 귀국했다.

“파병 지지하고, 부시 당선 위해 기도”

김선일씨 사건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이들이 왜 목숨을 걸고 목회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해 김목사는 순교에 대한 신념을 강조한다. “평소 신도들에게 순교를 강조했는데 내가 실천하지 못해 짐이 되었다. 항상 순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김목사와 같이 이라크에 동행했던 박 아무개 목사(47)는 “순교가 가장 큰 선교다. 중동 선교는 순교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김종성 목사는 고 김선일씨에 대해 “고 김선일씨는 순교한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신자임을 밝혔다”라고 말했다. 또 “자이툰부대 파병을 적극 지지하고 지난 대선 때 부시의 당선을 위해 기도했다”라고 말했다. 다른 동료 목사는 “전쟁은 안타깝지만, 성경에 쓰인 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목사가 다섯 차례 이라크에 입국하는 동안 동행자들은 매번 바뀌었지만, 같은 교회 김명길 선교사(60)만은 예외였다. 김선교사는 복장 문제 때문에 외교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는 “언론이 나의 빨간 양복과 태극기 배지가 아랍인들을 자극한다며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 복장은 수십 년 동안 국내·국외를 막론하고 항상 입었던 옷이다”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는 김종성 목사에 대해 출국정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월에도 김목사 동료 목사들이 이라크 팔루자에서 무장세력에게 억류되는 바람에 국가적 이슈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김목사는 선발대로 먼저 도착한 덕분에 억류를 피했다. 김종성 목사는 “지난 4월 목사들이 돈을 주고 풀려났다는 보도는 너무 터무니없어 뉴욕 타임스에 직접 항의했다. 또 이번(10월) 이라크 선교의 경우, 정부가 강제 출국시킨 것이 아니라, 원래 10월31일에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관행대로 국경을 통과했으며 무단 입국이라고 볼 수 없다”라며 보도가 과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이라크 정황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더 이상 이라크로 가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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