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환의 반격은 계속되는가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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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기소된 뒤 ‘빌라 경매’의혹등 검찰 수사 비리 연달아 폭로
검찰이 초비상이다. 일부 검찰 수사 과정을 놓고 각종 편법과 부정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문을 제기하는 쪽은 2001년 가을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된 여운환씨이다. 여씨는 젊은 시절 한때 폭력조직 국제PJ파 두목을 지낸 전력 탓에 이용호 게이트가 불거질 당시 언론의 집중타를 맞았다.

여씨는 이용호 게이트 연루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3년 징역형 확정 판결을 받고 지난 봄 형기를 마쳤다. 그러나 여씨는 아직도 교도소에 있다. 그가 이용호씨의 허위 증언에 억울하게 당했다며 지난해 9월 이씨를 위증죄로 고소하자 검찰이 올 들어 여씨를 다른 사건으로 추가 기소했기 때문이다. 이용호씨에 대한 무고죄와 또 다른 경제사범 정 아무개씨와의 거래 관계에서 불거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였다. 여씨는 바로 이 사건을 둘러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무리수와 편법, 부정·비리가 횡행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수사관, 피조사자 협조 받아 아파트 경매

여씨가 제보한 내용을 정밀 추적한 결과 검찰이 곳곳에서 부정·비리와 불법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이상한 수사’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여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대표적인 문제는 수사의 도덕성 시비가 일 수 있는 일부 검찰 관계자들의 빌라 및 아파트 투기였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소속 한 검사실에서는 형기 만료가 다가오는 여운환씨를 추가 기소하기 위해서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서울구치소에 수용된 경매 브로커 이 아무개씨(43)를 불러 여씨의 ‘경매 방해 혐의’를 수사했다. 이씨는 마흔두 차례나 검사실에 출정을 나가 여씨에 대한 조사에 참여해 혐의를 입증하는 일을 돕고, 나머지 시간에는 일부 수사관들의 아파트 경매 낙찰을 받아주는 일을 했다. 이씨는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검사실에 나가 하루 종일 컴퓨터 경매 물건을 찾아내고 권리를 분석해 이른바 좋은 물건을 낮은 가격으로 경락받아 돈이 되게끔 검찰 관계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씨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사실확인서를 변호사에게 남겼다.
일부 검찰 수사관은 이씨에게 경매받은 물건으로 대출까지 받아 달라고 요구해 관철하기도 했다. 현장 확인 결과 이런 방식으로 검찰 관계자들이 낙찰받은 아파트와 빌라는 서울 강남권과 안양·평촌 등지에서 5채에 이르렀다. 이씨는 일부 강력부 소속 검찰 수사관 외에도 이 아무개 검사와 또 다른 계장 3명에게도 아파트와 빌라를 낙찰해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기 부인 명의로 강남의 한 고가 아파트를 낙찰받은 정 아무개 계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해놓고 조폭에게 이렇게 당해 기분 나쁘다. 언론에 말해봐야 좋은 내용도 안 나올 것이므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여운환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검찰 관계자들이 벌인 경매 재테크 의혹은 현재 대검 감찰부가 조사 중이다.

여씨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점은 여씨를 추가 기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특가법 위반 경제사범 정 아무개씨(44)가 석연치 않은 수사 과정을 거친 후 두 차례나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경제사범으로 수감되어 있던 정씨는 이 기간에 난데없이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에서 함정 수사를 벌이는 데 참여해 거액의 마약수사비를 대기도 했다. 이같은 ‘이상한 수사’가 이루어진 데는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정씨는 2002년 3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되어 차정일 특검팀에 의해 구속되었다. 이용호씨의 부탁을 받고 해외전환사채 1천7백만 달러를 발행해주기 위해 투자신탁에 로비한 것이 알선수재 혐의를 받은 것이다. 1심에서 7년형을 선고받고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씨는 그해 말 검찰 마약수사부가 지휘하는 함정 수사에 협조하던 재소자 김 아무개씨와 또 다른 김 아무개씨 두 사람을 만났다. 정씨는 이들의 설득과 추천으로 서울중앙지검 마약 수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합류했다.

기자가 입수한 정씨의 출정 기록에 따르면, 2002년 12월부터 2003년 1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마약수사부를 출입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기간에 정씨에게는 휴대전화가 주어졌고, 가족과 외부인을 불러 만나는 등 각종 편의가 제공되었다. 이때 정씨는 히로뽕을 중국에서 구입하는 자금지원책으로 수사에 필요한 3억원을 제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씨의 한 인척은 “바보같이 돈만 쏟아부었을 뿐 검찰에서 별다른 도움은 받지 못했고, 그냥 편의만 제공받은 것이 전부였다”라고 말했다.

검찰 도운 정 아무개씨, 이용호씨 계속 만나

당시 마약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정씨가 마약수사부에 출정해 협조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씨가 3억원대의 히로뽕 밀수 수사자금을 댔다는 주장에 대해 이 관계자는 “정씨와 김씨 등 당사자들 사이에서 돈이 오가며 히로뽕 밀수를 추진했는지 모르겠으나 검찰 차원에서 요구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정씨는 갑자기 간질이 발병해 2003년 6월10일 첫 번째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그 해 12월19일 정씨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의해 다시 구속 수감되었다. 형집행정지 기간에 부실 기업 합병·매수와 주가 조작에 가담한 혐의 때문이었다. 이 무렵 정씨를 재구속한 검사실에서는 여운환씨를 추가로 기소하기 위해 앞서의 경매 브로커 이씨를 매일같이 불러들여 ‘작업’하는 한편, 정씨를 통해서도 여씨와의 과거 사업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김씨는 두 달간 무려 마흔두 차례나 강력부 검사실로 출정했다. 그 결과 일곱 가지에 이르는 특가법 위반 혐의로 여운환씨가 추가 기소되었다.

여씨를 추가 기소하도록 검찰 수사에 협조한 정씨는 서울지검장 출신 거물급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 변호사의 노력과 검찰 지청을 바꾸는 수완을 통해 같은 건으로 두 번씩 형집행정지를 받아냈다. 정씨는 지난 6월부터 서울 마포의 집과 강남의 한 병원으로 주거가 제한되어 지내고 있다.

지난 11월12일 저녁 기자가 정씨가 머무르고 있는 병원 특실을 찾았으나 병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정씨가 사흘 전에 나갔는데 중환자가 아니어서 가끔씩 여러 날 외출한다면서, 1주일쯤 비운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정씨가 간질 발작 증세가 악화해 무당굿으로 치료하기 위해 서울 근교 공기 좋은 기도원에 가서 지낸다고 밝혔다.

어쨌든 가족의 주장만으로 보아도 형집행정지 상태인 정씨는 간질 발작이 없는 날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남몰래 이용호씨를 만나기도 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9월18일 정씨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이씨를 만났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런 숨은 활동이 이용호씨와 함께 코스닥에 상장된 ㄱ회사를 합병·매수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있다. 주가 조작에 관여해 한탕 한 뒤 중국으로 도피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같은 의심은 한때 정씨의 공범으로 1998년 3천9백억원대 금융 사기 사건 주역이었던 변인호씨가 구속집행정지로 잠시 출소한 뒤 위조 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밀항했기 때문에 불거진다. 그러나 정씨측은 이런 시각에 펄쩍 뛴다. 그냥 이용호씨와 친해서 관심을 기울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씨의 매제는 “다음 달 29일 형집행정지가 끝나면 제 발로 교도소에 걸어들어갈 테니 두고 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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