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X파일’ 정국의 뇌관 되나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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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문서 공개 잇따라…‘김대중 납치 사건’ 등 불씨 곳곳에
초대형 외교 문서가 잇달아 공개되면서 새해 벽두를 흔들고 있다. 1월17일 한·일 협정 관련 문서에 이어 20일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 사건(일명 문세광 사건) 관련 문서가 일반에 공개되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음모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박대통령과 관련한 문서 공개는 ‘박근혜 죽이기’용이라는 것이 음모설의 요체이다.

이같은 음모설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일 협정 관련 문서의 경우가 그렇다. 이 문서는 일제 강점하 피해자 99명이 외교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내 승소한 데 따라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최종심이 아직 남아 있는 만큼 정부가 좀더 버티자면 버틸 수도 있었다고 음모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음모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물밀 듯 밀려오는 ‘과거사의 역습’을 피하기 어렵다는 데 이들의 고민이 있다. 외교 문서는 본래 30년이 지나면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외교문서 보존 및 공개에 관한 규칙’이 제정된 1993년 이래, 외교부는 매년 1월이면 30년이 지난 외교 문서를 해금(解禁)하는 의식을 치러 왔다.

물론 30년이 지났다고 외교부가 모든 문서를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문서 공개를 앞두고 외교부는 외교문서공개심의회를 소집한다. 이 심의회에서 공개할 문서와 공개해서는 안될 문서를 가리는데, 공개 대 비공개 문서 비율은 통상 9 대 1 정도라고 외교부 관계자는 밝혔다. 올해는 1974년도 외교 문서의 91% 가량이 공개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 비공개 기준은 국제 관례에 따라 △국가 안전 및 국방·국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 △기업 비밀 정보 등으로 정한다. 그러나 심의회에서 한번 비공개로 결정났다고 해서 영원히 비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비공개 문서는 5년에 한 번씩 재심사를 거친다.

‘김대중 납치’ 문서 12권 중 2권만 공개

올해를 예로 들자면, 이렇게 재심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된 문서가 모두 5종이다.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을 추가 파병하는 데 대한 대가로 미국이 보상하기로 약속한 일명 브라운 각서(1966년 3월4일)를 비롯해 1969년 재일교포 북한 송환 문제에 관한 문서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매년 쏟아져 나오는 이들 정보 중 과거 정권에 유리한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 몇년 사이 공개된 외교 문서는 유신 폭압 통치가 시작된 1970년대 초·중반 관련 문서들이기에 더 그렇다. 지난해 일부 공개된 김대중 납치 사건(1973), 올해 공개된 서 승·서준식 형제 간첩 사건(1974년), 인혁당을 옹호했다는 혐의로 한국에서 추방된 미국인 오글 목사 사건(1974년) 관련 문서들은 군사 정권이 주변 국가와의 외교적 마찰을 무릅쓰면서까지 어떻게 폭압 통치를 밀고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이 중에서도 잠재적 뇌관으로 남아 있는 것이 김대중 납치 사건 관련 문서이다. 지난해 외교부는 30년 해제 기간이 지났는데도 김대중 납치 사건 관련 문서 열두 권 중 두 권만을 공개했다. 외교부는 현재 문서 전체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함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전면 공개될 경우 파장은 예측 불허이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 사무국장은 “이번에 일부 공개된 한·일 협정 관련 문서를 접하고 의혹이 더 커지고 있다. 앞으로 협정 관련 문서 일체와 원폭 피해자 및 사할린 억류자 관련 문서 등을 추가 공개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X 파일’은 언제나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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