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축출 OK, 군사 공격 NO”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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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수주의자들, ‘원조 중단→탈북 사태 조장→정권 교체’ 노려
최근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백악관 수뇌진에 북한 정책과 관련한 비밀 메모를 돌렸다가 언론에 들통 나는 바람에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메모의 핵심은 ‘미국이 중국과 힘을 합쳐 북한 김정일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메모를 본 사람 중에는 부시 행정부 내 최고의 대북 강경파인 딕 체니 부통령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정권 변화 문제는 워싱턴 신보수주의자들에게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이미 지난해 1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규정한 뒤부터 신보수주의자들은 공공연히 북한 정권 변화를 떠들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내에서 탈북자 문제가 불거지고 이들의 인권 참상 고발이 이어지면서 정권변화론은 강도를 더해왔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지난해 10월 ‘농축 우라늄 핵 계획’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더 이상 북한 김정일 체제로는 안되겠다’는 인식이 대다수 공화당 인사는 물론 신보수주의자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북한에 대한 신보수주의자들의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정적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문이 북한의 ‘핵 공갈과 그에 따른 착취’라는 악순환만 조성했다고 간주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1999년 3월 발표된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신보수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이 보고서는 ‘클린턴 행정부 4년간 이루어진 북·미 협상의 교훈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미국에 먹혀 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앞으로 북·미 협상에서 절대로 보상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신보수주의자들이 북한 정권 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방법론에서 ‘군사적 수단은 안된다’는 데 이의가 없다는 점이다. 우선 매파 중의 매파인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 군사적 수단을 ‘현실성이 없는 대안’으로 간주하고 있다. 상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이자 신보수주의자인 짐 도란도 북한 정권을 변화시킬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안하면서도 유독 군사적 수단은 제외했다. 우선은 북한의 핵 문제뿐 아니라 인권 참상 등을 고발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소식을 알릴 수 있는 공공 외교를 강화한 뒤, 외부 지원을 중단해 북한 정권을 흔들자는 것이다.

신보수주의의 나팔수 빌 크리스톨도 북한이 핵무기 계획을 시인한 직후인 지난해 10월 하순 <위클리 스탠더드> 기고문을 통해 부시 행정부에 비슷한 주문을 했다. 하나는, 북한에 제공되는 중유와 외국 원조를 즉시 중단하고, 북·일 협상에서 거론되고 있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전후 보상 약속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북한 주민의 탈출을 돕기 위해 중국 정부로 하여금 북한 지도부에 압력을 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신보수주의자들이 북한 정권의 변화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중국역할론을 부쩍 자주 거론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다는 점이다. 미국신세기계획 엘런 보크 부국장은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이자 주된 원조국인 중국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지렛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활용하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신보수주의자들의 중국 압박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그런 차원에서 럼스펠드 장관이 최근 비밀 메모에서 북한 정권 교체의 한 방법으로 중국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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