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9단’ JP가 움직인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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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총재 방북 예정…‘허허실실 묘수’ 내놓을 수도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원래 계획대로 북한을 방문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베이징의 3자 회담 그리고 최근의 남북 회담에 이은 아주 색다른 이벤트를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는 해’라고 그를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사에서 독특한 경험을 쌓아온 그는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5월7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5월7일은 수요일이다. 베이징과 평양을 왕래하는 비행기는 화요일과 토요일밖에 없다. 다시 말해 그는 특별기편으로 평양에 갈 예정이었다는 얘기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오히려 그의 행보에 관심이 많다는 점도 이채롭다. 미국의 한반도 소식통은 그의 방북 계획이 언론에 보도되기 훨씬 전부터 “5월 초 노대통령 방미 전에 남북 간에 뭔가 빅 이벤트가 있다. 주목해 보라”고 귀띔했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대북 협상에 깊숙이 관여했다. 우선 남북 관계의 첫 전환점이라고 할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 나오기까지 그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겉으로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의 막후 조정이 주효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1965년 한·일 협상의 주역이기도 하다. 시비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당시 그가 끌어들인 청구권 자금이 한국 경제 발전에 종자돈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가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를 풀면서 쌓은 경험을 오늘의 시점에서 어떻게 변용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남북 관계에서 그는 목소리 큰 국내 보수 세력의 거두로서 그만이 해낼 수 있는 몫이 있다. 한 예로 6·25 때 국군 포로 문제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의 답변을 끌어내는 일 등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그는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과도 친하기 때문에 북·일 관계에서도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다. 1965년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북·일 수교회담에 훈수를 둘 수 있다.

‘묘한 위치’로 인해 그의 방북은 매우 다채로운 색깔을 띨 수도 있었다. ‘어떤 말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처지’.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이를 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고수로서 허허실실의 묘수를 내놓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의 방북은 북측이 지난 5월1일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가 진정된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의사를 전해옴에 따라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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