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졸자 100만명 '백수신세'
  • 베이징/이기현 ()
  • 승인 200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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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학력 청년 실업’ 최악, 취업률 겨우 50%…초임 연봉도 3분의 1로 줄어
졸업은 곧 실업?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올해 중국 대학 졸업자 약 100만 명이 취업 전쟁에서 패배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언제 호전될지도 알 수 없다. 일자리를 찾는 학생들과 그 가족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밤잠을 설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말께 베이징 시내의 한 정보통신(IT) 회사의 취업 신청서 접수 현장. 형형색색 자전거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이다. 접수 창구는 취업을 희망하는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이들은 모두 한 손에는 이력서를,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접수 상황을 보아가며 다른 곳에도 원서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취업 전쟁에 뛰어든 학생들은 아침 식사도 거른 채 바쁘게 뛰어다닌다.

“중점 대학은 월 1천5백 위안, 일반 대학은 1천2백 위안, 전문대는 돌아가 주세요.” 접수 창구의 한 직원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목소리로 외친다. “뭐라고요?” 모두들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6월까지만 해도 정보통신업계의 평균 연봉은 6만 위안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한달 사이에 3분의 1도 안되게 쪼그라든 것이다.

그들은 항의한다. “이렇게 갑자기 말도 안되게 내려가는 게 어디 있나요?” 하지만 창구 직원은 그들의 볼멘 소리에 코방귀조차 뀌지 않는다. “싫으면 다른 데 가서 알아봐요. 석사·박사·해외파도 자리가 없어 난리인데….”

중국 교육부 예측에 따르면, 올해 중국 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50% 정도이다. 과거 국가가 직업을 분배할 때 대학생 취업률은 거의 100%였다. 개혁 개방 시대 이후에도 대학생 취업 문제는 그리 큰 사회 문제가 되지 못했다. 1996년부터 중국이 취업률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대학생 취업률은 75%대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올해 대학생 취업률 예상치 50%는 사실상 중국으로서는 건국 이래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취업률이 갑작스럽게 떨어진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은 ‘사스의 일
시적인 영향’이 꼽힌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경제연구소 양이용(楊宜勇) 부소장은 “이번 취업 위기는 사스 영향 탓이다”라고 주장했다. 중국 대학은 7월에 졸업생을 배출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4~5월께가 취업 시즌이다. 양씨는 “정확한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연말 취업률을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라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의 밑바탕에는 대학 졸업생 증가, 중국 취업 시장 위축, 후커우(戶口·거주지 지정) 제도 등 좀더 구조적인 취업 장애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베이징(北京) 대학 교육학원 원동야(文東芽) 부원장은 “앞으로의 취업 시장을 낙관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해마다 10~30%씩 대학생이 급증하는 추세이다. 내년에는 대학 졸업생이 2백6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대학생 수 급신장 추세와 달리, 일자리 공급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거 10년 동안 취업 성장률은 1.1%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취업 신장률도 1.1~1.3% 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회 제도 또한 문제이다. 후커우 제도는 취업뿐만 아니라 거주·혼인·육아 등에 장애 요소이다. 취업할 지역의 후커우를 가지지 못하면 취업 때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취업난에 대학생들은 당황하고 있다. 위에항(岳沆)은 “4년을 열심히 공부했다. 올해 상황이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서부 간쑤성(甘肅省)의 가난한 농촌 출신 졸업 예정자인 위에항은 재학 기간에 쓴 비용이 3만5천 위안 정도라고 밝혔다. 부모의 월급이 약 3백20 위안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비용은 모두 빚이라고 했다. 좋은 직장을 구해야 빚 갚을 길이 보이는 위에항 같은 가난한 농촌 출신 학생들에게는 이번 취업난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취업 위기는 중국 대학생들의 직업 관념까지 바꾸고 있다. 힘든 현실 앞에서 그들은 이미 자신의 신념을 버리기 시작했다. 중국 사회조사연구소(SSIC)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의 47%가 취업하기 위해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으며, 27%는 중소 도시나 서부 지역으로 가겠다고 밝혔다.

고학력자들의 취업 위기는 인력 낭비이자 국가의 손실이다. 칭화(淸華) 대학 사회학과 리창(李强) 교수는 “이번 사태는 분명 중국 사회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다. 중국 정부가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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