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적 환경운동을 당장 집어치워라”
  • 박성준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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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낙관론자들, 지구위기론 펴는 NGO에 직격탄
공세적이고 전투적인 캠페인으로 환경운동 분야에서 그린피스 못지 않은 명성을 쌓아온 환경 NGO 열대우림행동네트워크(RAN·본부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가 최근 세계 최대 석유 메이저 가운데 하나인 로열더치셸을 상대로 또 하나의 값진 승리를 따냈다.

지난 8월 말 로열더치셸로부터 앞으로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나 인도의 타지마할처럼 유네스코가 ‘세계 유산 목록’에 등재한 지역에서 석유나 천연 가스를 ‘탐사하지도, 개발하지도 않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받아낸 것이다.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 가운데 자발적으로 ‘활동 금지 지역(No go zones)’을 설정한 것은 이 회사가 처음이다. 로열더치셸이 세계 석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결정은 동업자들에게 선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개발이 경각에 달려 있던 네덜란드 연안의 워든 해나 미국 알래스카의 야생동물보호구역이 ‘성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석유 메이저들을 상대로 이같은 약속을 끈질기게 요구해온 열대우림행동네트워크가 로열더치셸의 활동 금지 지역 목록에 약 1백50개에 이르는 ‘세계 자연 유산’이 빠져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즉각 환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윤보다 환경을 우선하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확립하는 데 이같은 조처가 ‘중대한 진전’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환경 NGO들이 이처럼 거대 기업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까닭은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환경위기론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환경위기론에 기초한 NGO 활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환경낙관론자들의 반박이 만만치 않은 세를 얻어 가며 환경위기론에 대한 믿음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낙관론의 대표적인 주자는 최근 국내에서도 선보인 <회의적 환경론자>를 쓴 비외른 롬보르이다. 덴마크 출신 통계학자인 그는 한때 그린피스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린피스와 철천지 원수가 되어 있다. 환경 단체들이 ‘위기’를 강조하는 밑바탕에는, 위기가 있어야만 생존과 발전이 가능한 과학자 단체와 이를 부정확하게 대중에게 알리는 언론의 관행이 도사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롬보르에 따르면, 그린피스나 월드워치연구소 또는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유포해온 그간의 환경위기론은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자연보호기금은 삼림 보고서를 펴내면서 ‘전세계 어느 곳보다 브라질의 삼림 파괴가 가장 심하다’고 주장했는데, 롬보르는 이를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유엔 자료를 근거로 삼아 반박한 바에 따르면, 브라질의 삼림 소실률은 연간 0.5%로 ‘열대우림 지역 삼림 가운데 소실률이 가장 낮은 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환경위기론자들이 뻔한 얘기만 늘어놓는다고 비판한다. 가령 ‘에너지가 점점 고갈되고 있다’거나 ‘삼림 또는 물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따위다. 그는 이런 주장이 근거가 없다며 방대한 통계를 들이민다.
롬보르는 최근 국제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해서도, 이른바 주류 환경운동 단체와는 다른 견해를 펼친다. 유전자 변형 식품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 즉 ‘유전자 변형 식품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롬보르는 이를 뻔한 이야기의 결정판이라고 몰아붙인다.
캐나다 밴쿠버를 중심으로 환경운동을 벌이는 패트릭 무어의 경우는 또 다른 각도에서 환경위기론에 맞서고 있다. 롬보르와 마찬가지로 패트릭 무어 역시 한때 그린피스에 몸 담았던 적이 있다. 1986년 그린피스가 정식으로 출범할 때 공동 창설자로 참여했고, 그 뒤에도 한동안 ‘그린피스 캐나다’를 이끌었을 정도로 비중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그린피스를 떠났다.

현재 ‘그린 스피리트’라는 독자적인 환경운동단체를 조직해 활동하는 무어는 그린피스처럼 공세적이고 전투적이며 비타협적인 급진적 운동 방식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대신 21세기에 적합한 활동 방식으로 각 활동 주체 간의 상호 협력과 대화를 역설한다.

무어가 자신이 만들다시피 한 그린피스를 떠난 데에는 이같은 ‘장기 전망’ 외에도, 비외른 롬보르와 유사한 문제 의식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가 보기에 기후 변동이나 삼림 파괴에 관한 주류 환경운동 진영의 주장은 근거가 없거나 과학적 확실성이 없었다. 무어는 실제로 ‘목재 벌채가 동식물을 멸종시킨다’는 세계자연보호기금의 주장에 근거를 대라며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물론 이같은 공격에 대해 환경위기론자들은 반론을 제기한다. 롬보르의 책이 나오자 환경 위기론자들은 이를 즉각 반격하고 나섰다. 롬보르가 자기 입맛에 맞는 통계 자료만 짜맞추어 논지를 전개했다는 것이다. 삼림에 대한 전망이 대표적이다. 롬보르는 삼림 파괴의 정도가 그리 심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월드워치연구소의 전 소장 레스터 브라운은 이에 대해 ‘숲이라고 모두 숲이 아니다. 문제는 건강한 숲이 얼마나 되느냐이다’고 반박했다. 물 또한 마찬가지다. 롬보르는 지구상의 물의 총량을 따졌지만, 레스터 브라운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을 문제 삼은 것이다.
1980년대 이래 환경운동의 양상은 풀뿌리 환경운동가들이 정부나 기업의 거대한 힘에 도전하는 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이같은 모습도 변하고 있다. ‘환경 보호’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를 이루었던 1990년대를 거치는 동안 국제 환경운동의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과거와 정반대로 기업이 환경 NGO들의 도덕성을 공격하거나, 이들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경향까지 생겨나고 있다. 미국의 보수적 두뇌집단인 미국기업연구소(AEI)는 지난 6월 ‘NGO 감시(NGOWatch)’ 난을 자기네 사이트에 만들었다. 세계 유수 경영대학원의 연구자들은 각종 연구 결과를 통해, 나이키·버거킹·네슬레·엑손모빌 등 각 분야 초국적 기업들에게 ‘NGO들과의 싸움에서는 참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데보라 스파 박사가 최근 발표한 논문 <운동주의의 힘:국제 비즈니스에 끼치는 NGO의 영향력 평가>가 대표적이다. 이 논문은, 특히 명성이 있거나 브랜드 가치가 높은 기업일수록 NGO와의 싸움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제 환경운동에 중대한 분기점이 되었던 1992년 리우 회의를 기점으로 할 때, 환경 문제를 둘러싼 싸움은 10여 년 만에 공수가 뒤바뀌었다. 이같은 상황 변화는 지난 10년간 NGO들의 힘이 커졌다는 사실 외에, 실제로 중대한 개선 조처들이 있었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리우 회의에서 환경 보호 방안들이 채택된 이후, 국제 사회는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유엔환경계획은 아프리카 가나의 나이로비에 본부를 차리고 야생동물 보호에 팔을 걷어붙였는가 하면, 브라질에서는 삼림 자원 보호를 위한 대규모 조처가 이루어져 왔다. 그 사이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었던 프레온 가스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환경낙관론자들이 ‘환경이 더 악화하고 있다’는 주류 환경운동 진영의 주장을 뻔한 이야기라고 평가 절하하거나, 기껏해야 일반 시민의 눈길을 끌어 세를 유지하려는 저의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이같은 인식에 근거해 환경낙관론자들은 과격한 환경운동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외치고 있다. 반면 환경위기론자들은 ‘그래도 할 일은 많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사실은 환경위기론에 대한 반격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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