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16기 3중 진회,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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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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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전 주석 영향권 못벗어나…경제 발전·민생 문제 해결에 주력할 듯
후진타오(胡錦濤)는 아직 역부족인가. 서방 언론들은 지난 10월14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16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6기 3중전회)에 대해 잔뜩 실망한 표정이다.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 주석이 이번에야말로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정치 개혁과 사유화 정책을 밀어붙이리라고 기대했던 것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정치 개혁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청사진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의 명목상 최고 권력 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정책은 공산당이 결정한다. 따라서 권력 핵심들이 모이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회의를 통해 중국 국가 운영의 대강이 제시된다(71쪽 도표 참조). 16기 3중전회가 세계의 눈길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언론들은 이번 회의가 개혁·개방 정책을 최초로 천명한 지난 1978년 11기 3중전회에 이은 ‘제2의 개혁·개방 선언’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 바쁘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한때 유행했던 ‘제2 건국’과 같은 수준의 구호인 셈이다. 중국의 신화 통신은 이번 개혁 방침을 ‘3대 특징’으로 요약했다. 첫째, 사회주의 시장 경제 체제를 손질한다. 둘째, 계획 경제 시대의 잔재를 말끔히 없앤다. 마지막으로, 현재 중국이 당면한 ‘3대 과제’인 지역·도농·계층 간 격차를 줄여 안정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두뇌 집단인 사회과학원 소속 경제학자 루중위안(盧中原)도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 <원후이바오(文匯報)>와의 인터뷰에서 장단을 맞추었다. 그는 “중국은 그간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으나 이 과정에서 지역·도농·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는 모순을 발생시켰으며, 계획 경제의 잔재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해 경제 발전의 발목을 붙잡혀 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세계 경제 체제와 보조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정형화한 경제 발전 전략이 절실하다며, 주로 경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번 회의에서 사회주의 시장 경제 체제 개선과 발전 방안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룬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중앙방송(CCTV)은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비공유 기업들(사영 기업들)이 세금 면에서 다른 기업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것’이라는 회의 결과를 부각했다. 여기에는 앞으로 사영 기업들도 대규모 중공업이나 국가 산업에 자본을 투자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중대한’ 의미가 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회의 결과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홍콩 과기대학 경제학과 데이비드 리 교수는 정부 독점의 폐해를 거론하며 경제 개혁 조처가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경제 개혁의 핵심은 정부의 직접 관리와 독점을 폐지하는 데 있다. 현재 중국은 국유 기업을 정리하기 위해 국유자산관리위원회를 설치했는데, 이 기구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기업이 여전히 정부 독점 체제에 놓여 있다. 개혁을 하려면 이 부분부터 먼저 손댔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청년 지식층도 개혁 실현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장샤오빙(張小兵) 씨는 “국유 기업 개혁이나 농촌 개혁을 외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빈부 격차를, 과연 정부가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라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번 회의에서 나온, 또 다른 핵심적 결정은 국가 헌법을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세부 사안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정안에는 사유권 보호에 관한 법률 조항을 새로 넣고, ‘당이 선진 생산력과 선진 문화, 광범위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이른바 3개 대표론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부분 또한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 사범대학 경제학과 종웨이(鍾僞) 교수는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새 지도부가 공유제를 근간으로 하는 틀을 깨려는 강한 의지나 생각은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당초 주목되었던 것은 후진타오의 정치 개혁 실험이었다. 그러나 정치 개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처럼 ‘뜨뜻미지근한’ 회의 결과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신중함을 주특기로 삼는 후주석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당 지도부 내 다른 세력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린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후주석의 정치 개혁에 아직까지 걸림돌이 많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소식통에 따르면 후주석의 정치 개혁 구호는 둘로 해석된다. 하나는 당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후주석이 당내의 여러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중앙위원회와 같은 ‘공식 제도’에 비중을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당·정·군에 포진한 장쩌민 전 국가주석 세력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후주석 처지에서는 중앙위원회라는 공식 조직의 힘을 빌려 권위를 세우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공산당 권력 독점에 대한 인민들의 불만을 줄이고 통치와 행정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차원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인민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부분적인 정치 개혁은 필요하며, 형식에 치우친 감이 있지만 눈에 보이는 정치 체제 개혁 목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후주석이 지난 7월 공산당 82주년 창당 기념일을 맞아 행한 ‘7·1 담화’에서도, 장쩌민 전 주석의 3개 대표론 학습과 실행만을 강조한 것은 후주석을 정점으로 한 제 4세대 지도부의 불안정한 위상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관측통들은 후주석이 당분간 정치적으로 위험이 따르는 전면적인 정치 개혁이나 민주 개혁 과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경제 발전과 민생 문제 해결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한다. 후커우(호적) 제도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겠다거나 동북 3성 재개발을 화두로 내세운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3중전회 의 결과는 이처럼 후주석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당내 사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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