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또 반전… 범인은 누구인가?
  • 허 광 ()
  • 승인 2000.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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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년 살해 혐의 신나치주의자들 풀려나… 지역 검찰과 부모 서로 “조작했다” 맞서
옛동독 지역 작센 주를 위아래로 관통하는 산맥은 ‘작센의 스위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체코를 마주보며 엘베 강이 흐르는 이곳에는 기암 절벽이 줄을 잇는다. 그 절경이 마치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연상케 하니 ‘스위스’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곳 ‘독일 속의 스위스’에 자리 잡은, 주민이 만 명도 안되는 조그만 마을 제브니츠에서 일어난 사건이 온 독일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독일에서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 <빌트>는 지난 11월23일, 1면 머리 기사에 이런 제목을 뽑았다. ‘네오 나치, 제브니츠에서 어린이를 익사시켜. 주민들은 침묵’. 3년 전 제브니츠 야외 수영장에서 여섯 살짜리 요셉이 시체로 발견된 일이 있다. 그 후 경찰 조사를 거쳐 ‘수영중 단순 익사’로 처리된 이 사건이 사실은 극우파의 소행이었다고 <빌트>가 폭로한 것이다.


초기부터 상식 벗어난 검찰 수사

<빌트>는 극우파 일당이 요셉을 붙잡아 익사시켰으며,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라 범죄 혐의자 3명이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 요셉은 이라크 남자와 독일 여자 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과거 서독에서 약학 대학을 다녔고, 1995년에 제브니츠로 이주해 약국을 운영했다. 그러니 외국인을 배척하고 서독 출신에 대해서도 반감을 갖는 작센 주 극우파에게 요셉이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사건 당일 수영장에 있었다는 주민 3백여 명은 익사체가 떠오를 때까지 보고만 있었을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분개한 시민들은 제브니츠 시가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에 비난을 퍼붓고, 제브니츠에서 만든 물건을 사지 말자는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통일 이후 만성적인 실업난에 시달리고 있기는 이곳도 동독의 여느 지역과 다름없다. 그나마 관광사업으로 유지되고 있는 지역이 극우파 범죄 소굴로 낙인 찍히면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숙박업소는 이미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사건을 성토하는 여론이 빗발치자 슈뢰더 총리는 요셉의 부모를 직접 만나 위로하기도 했다. 제브니츠 시가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는 <빌트> 보도가 나간 후 며칠 못 가서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것은 요셉 부모의 약국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집앞에서 극우파가 벌이는 시위와 암살 위협을 피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제브니츠 시 당국은 지역 주민 전체가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말한다. <빌트>를 비롯해서 독일 언론이 근거 없는 추측을 사실로 부풀려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작센에서 극우파 조직이 세를 불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살상을 저지를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며, 이들에게 자금과 이론을 대는 극우 실세는 서독 지역에 있다는 것이 그들의 분석이다. ‘유죄 판결이 있기까지는 어떤 혐의자도 무죄’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제브니츠 주민이 입은 물질적·정신적 손해는 도대체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가. 시 당국은 이렇게 따지고 있다.
검찰이 범죄 혐의자로 체포했던 3명을 혐의가 없다며 석방한 것도 제브니츠 주민에게는 원군이 되고 있다. 검찰은 이들을 석방한 근거로 두 가지 사실을 들었다. 대부분 청소년인 사건 증언자들이 진술을 번복했으며, 이들이 요셉 부모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요셉 부모가 허위 증언을 유도했는지 수사할 예정인데, 이 수사는 무혐의로 풀려난 자들의 고소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요셉 부모는 텔레비전 인터뷰에 나와 검찰 발표를 반박했다. 이미 현장 진술을 한 증인들이 극우파가 두려워 더 나서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증인 매수설도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사건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1997년 6월13일, 요셉이 시체로 발견된 후 검찰은 아홉 달에 걸쳐 증인을 심문했다. 검찰이 이 사건을 단순 사고로 보고 수사를 끝낸 시점은 1998년 5월7일이다. 그 사이 목격자들의 증언을 모은 요셉 부모는 변호사를 통해 범죄 혐의자 3명을 지목하고 검찰에 다시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작센 주 검찰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단순 사고를 부정할 증거가 없다는 종전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요셉 부모는 그 후 자비를 들여서라도 시체를 재부검하겠다고 요구해 허가를 받았다. 1차 부검 때와 달리 대학 법의학자들에게 의뢰한 2차 부검에서 요셉 부모는 검찰의 사건 수사가 더 필요하다는 감정을 받았다. 요셉 부모는 그때까지 수집한 증언을 검찰에 제시하고 동시에 니더작센 주 범죄연구소에 증언 감정을 의뢰했다. 검찰 수사 자문역을 맡고 있는 범죄연구소는 지난 8월 이 사건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는 의문이 충분히 있으므로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혀 요셉 부모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9월. 이때 처음으로 살인 혐의자 세 사람이 조사를 받았다. 지난 11월 <빌트> 보도가 있기까지 요셉 사건은 3년간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사는 사건 초기부터 상식을 벗어났다. 예를 들어, 시체 해부에서 기본 사항인 혈액 오염 검사나 심장 근조직 검사를 생략했다는 점이다. 독일법의학협회에 따르면, 독일에서 일어나는 의문사의 원인이 밝혀지는 경우는 50% 정도이다. 이런 수치는 부검에 따르는 인력과 자금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100여명 극우파에 살해돼

요셉 사건에서도 검찰이 이같은 ‘관행’에 따라 기본 절차를 생략했는지, 아니면 이 사건이 단순 사고가 아닌 것으로 (예를 들어 극우파가 개입한 사건으로) 드러날까 봐 일부러 생략했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의혹을 부풀린 책임이 검찰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편에서는 검찰이 요셉 사건을 비상식적으로 처리한 것이 검찰과 극우파 사이에 어떤 연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번 사건의 재수사를 연방 검찰이 맡지 않는 이상 결과는 뻔하다는 것이다.

요셉의 죽음에는 극우파보다는 제브니츠의 내부 문제가 개입했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그 내부 문제란 이곳의 병원과 약국 사이에 유지되고 있는 유착 관계이다. 이들 사이에는 환자의 처방전을 조작해서 폭리를 얻는 일이 오래 전부터 관행으로 통하고 있는데, 외부에서 들어온 요셉 부모가 방해가 되었다고 현지 신문은 전하고 있다. 실제로 요셉 부모는 1998년 지역 병원의 비리를 조사해서 고발한 일이 있는데, 병원 비리 문제는 시 당국도 비공개로 거론했다는 것이다. 우연치 않게도 지역 병원과 유착해서 요셉 부모의 약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약국 주인의 딸이 용의자 세 사람 속에 들어 있다.

통일된 이후 10년 동안 극우파의 손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근 100명에 이른다. 독일 사회가 이들 희생자들에게 보여온 무관심을 생각하면 이번 사건에 대해 보여준 독일 사회의 예민한 반응은 뜻밖이다. 나치스를 풍자한 영화 <양철북>을 만들어 유명해진 독일 영화 감독 쉴렌도르프는 이번 사건을 주제로 요셉 부모와 영화 제작 교섭에 들어갔다고 한다. 요셉 살해 사건의 진실이 어떻든 통일 후 독일의 그늘을 보여주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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