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 미 수교 너머 제2기 분단 시대가 열린다
  • 이창주 (미국 코네티컷 대학 교수 · 국제정치) ()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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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교 드라마 1차 완결편 '북 · 미 수교' 눈앞에…북 · 일 관계 정사화도 임박
미국의 대표적 시사 주간지인 <뉴스위크>는 10월30일자에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기사를 다루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logical thinking leader’라고 표현했다. 한국어로 하면 ‘논리적 사고를 갖춘 지도자’라는 뜻이다. <뉴스위크>는 이어서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서방 세계에서 새롭게 조명·주목되고 있다고 썼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 방문을 마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상을 세계에 전한 것과 똑같은 표현이다.
이것이 미국과 미국의 언론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오늘의 시각이다. 북한 사회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세습 통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국은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고의 긍정적 표현으로 묘사하며,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고 공유할 협상 파트너로 삼는 데 만족감을 표시했다.
현단계에서 북한 외교 드라마의 1차 완결편은 남북 관계 발전, 북·중 및 북·러 관계 복원, 북·일 수교, 서방과의 외교 관계 확대가 아니라 북·미 수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지난 6월의 남북 정상회담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평양 초청 그리고 그 이전의 중국 방문은 미국을 크게 자극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을 달구었다. 이 작품의 공연 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다. 미국에게는 더 이상 미국의 필요와 의도대로 북한을 ‘왕따’시키거나 무관심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고, 4강이 패권을 겨루는 동북아에서 북한 카드의 중요성을 알렸다. 중국·일본·러시아에게는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남북 관계가 급진전해 한반도 분단 이해 당사국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구심을 심어 주었다.
내용을 보면 북한은 상당히 치밀한 계획과 프로그램으로 고도화한 접근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미국의 일부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단한 전략가로 평가하고 있다. 대북 협상에서 미국의 단골 메뉴는 채찍과 당근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정반대로 표현한다. 북한의 대미 협상 자세가 바로 채찍과 당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어려운 처지가 되면 벼랑끝 외교 전술로 극한 상황을 만든다고 하지만 바로 이것이 약자인 북한이 거대한 미국을 상대로 날릴 수 있는 채찍이었다. 최근에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공개 활동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북·미 관계가 최종 단계에 진입했다. 핵심 이슈인 테러 지원국 명단 제외 문제는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때 사실상 합의했다. 장거리 미사일 문제도 지난 11월3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미국의 국방부 관계자가 참여한 협상에서 북한이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이 인공 위성을 대신 발사하고 보상한다는 큰 줄기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해 실무적 정리와 양국 정상 간의 합의 선언만 남겨놓은 상태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두 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첫째는 남북 관계의 속도 조절이다. 화해 교류 국면을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 남북 관계 발전의 주도권을 쥐고 주변국과의 관계에 따라 조절해 가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미국 우선의 외교 관계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적당히 인정하고 이를 통해서 남한을 포함한 동북아 4강 및 서방 세계로부터 최대한의 반사 이익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이 평화협정과 연계하여 주한미군 주둔을 양해한 것도 이러한 구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북한의 한 핵심 외교관은 북·미 간의 평화협정 체결 문제도 이미 충분히 논의되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은 미국이 염려하는 이상으로 남한을 포함한 주변국들과의 관계 발전을 자제하고 있다. 그만큼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국제 정치 환경은 북한을 정점으로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분단 상태 유지’와 이에 대해 미·일·중·러가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가 성공하고 있다고 북한은 믿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 문제가 임기 말 클린턴 행정부의 대표적 외교 치적으로 기록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처지에서 보면 대북 관계는 단순한 양국 관계를 넘어서 동북아에서 미국의 역할과 직결된다. 현재 동북아에서 고분고분하게 미국을 따르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일본은 이미 미국의 절대적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힘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군사력은 미국이 우려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현재 미국 외교가 지향하는 것은 북·미 관계 진전이다.

이것이 클린턴이 방북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다. 필자가 접한 워싱턴 정보에 의하면, 클린턴 대통령은 특사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을 희망했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은 클린턴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했고 클린턴 대통령도 방문 의사를 밝힘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했다. 조명록 특사의 방미와 이른바 고위급 포괄협상 방식에 의해 이미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은 기본적인 타결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결과에 따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의 의사를 확인하고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한 외교적 절차와 명분을 수립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평양과 워싱턴에서는 내부적으로 클린턴의 방북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올브라이트 장관이 나서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 11월2일 그녀는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방북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며, 북한의 미사일 위협 감소로 50년 간의 냉전이 마무리될 것이라면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 ABC 방송에 출연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라고 칭찬하는 등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반대하거나 북한에 부정적 사고를 갖고 있는 보수 세력들에 대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북·미 협상이 원칙적으로 타결되고 북한의 미사일 개발 포기 의사가 확인됨에 따라 구체적인 경협 및 대북 지원 문제가 협의되고 있으며, 북·일 수교 협상이 속도를 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조명록 특사와의 북·미 고위급 포괄협상 합의 내용을 일본측에 바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없이 테러국 해제는 안된다고 반대해온 일본측에 북한과 미국이 공동으로 테러 반대를 선언하는 선으로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11차 북·일 수교 협상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계획대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면 북·미 간에 50년 동안 유지해온 주적 관계가 청산되고 양국은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클린턴 대통령은 귀로에 일본을 방문해 대북 지원 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북·미, 북·일 수교로 한반도는 제 2기 분단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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