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성들 '내 성을 돌려줘!'
  • 채명석 ()
  • 승인 2000.10.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여성 의원 중심으로 부부별성제도 도입 움직임 활발
‘부부 별성 제도’에 관한 발언으로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가 또 설화를 불렀다.

총리 자문기관인 남녀공동참획심의회는 최근 일본 사회의 제도와 관행이 남녀에게 중립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연금제도 등을 개인 단위로 개정하고 부부별성제도 도입을 검토하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모리 총리는 이같은 답변서를 받아 본 후 기자단에게 “내 개인으로서는 종래의 제도(부부동성제도)가 일본 사회에 적합한 것 같다”라고 소견을 피력했다. 그러자 이 발언을 전해 들은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발끈했다. 여성 의원들은 총리 관저로 달려가 나카가와 관방장관을 붙잡고 모리 총리의 부부별성제도에 관한 발언은 극히 부적절하다고 거칠게 항의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국회에 민법개정안을 제출하는 등 부부별성제도 도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던 참이었다.

“가족 간의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동성이어야 한다.” “아니다. 그것은 여성 차별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맞춰 여성이 결혼해도 본래의 성명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별성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일본 사회의 오랜 전통인 부부동성제도 대신 부부별성제도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국립 도서관 대학에 근무하는 세키구치 레이코(關口禮子) 교수는 몇년 전 직장의 문서 등에 구성(舊性) 사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씨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도쿄 지방법원은 ‘부부동성제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 750조는 부부의 일체감을 높여 주는 것이며 부부임을 쉽게 표시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합리성이 있으며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세키구치 교수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부부의 일체감이 ‘동성’이 아니라 ‘애정’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부부별성제 도입파의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은 판결이기도 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부부동성제 찬성률이 더 높아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직도 일본 사회에서는 결혼한 부부는 민법 규정보다 사회적 전통에 따라 배우자 한편의 성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부부동성제를 지지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부부별성제를 지지하는 사람은 30% 정도이다.

반면 여성이 적극 사회에 진출함에 따라 결혼후 남편의 성을 따라 개명한 여성들이 직장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예컨대 결혼후 성을 바꾼 여성이 거래처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오인되어 거래가 끊기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래서 대학과 기업에서는 이른바 ‘워킹 네임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산업능률대학은 이미 7년 전 강의나 집필 등의 경우에 한해 교수들에게만 인정해온 구성 사용을 전직원에게 확대하는 조처를 취했다. 후지 제록스는 사회보험·세금 등 공적 서류를 작성할 때에는 호적의 성을 사용하지만, 명함이나 신분증명서 등에는 구성을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일반 사회의 이같은 변화를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일본 정부도 민법 개정 시안을 6년 전 공표했다. 동성을 원칙으로 하되 별성도 선택할 수 있는 A안, 별성을 원칙으로 하되 동성도 선택할 수 있는 B안, 부부는 동성이나 자식은 부모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C안 등이다.

그러나 이같은 선택적 부부별성제는 자민당이 강력히 반발해 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되지 못했다. 민주당이 제출한 민법개정안도 폐기된 상태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남녀공동참획사회기본법에 따라 다시 연내에 이 문제에 관한 기본 계획을 책정해야 하기 때문에 부부 동성이냐 부부 별성이냐 하는 논의가 재연될 소지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