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농업 교류 ''봇물'' 터진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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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후 농업 교류 봇물 터질 듯…감자·양잠 등 서로 도울 분야 수두룩
농업 교류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가장 활성화할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은 식량난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남한은 공동 연구로 농업 기술 발전을 꾀할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식량 생산을 최대한 늘려 수입 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1998년부터 시작된 남한과 북한의 농업 교류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정부는 그동안 식량과 비료를 몇 차례 지원했지만 농업 교류에는 정책적 비중을 두고 있지 않았던 터라 본격적인 사업은 거의 실시하지 않았다.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는 지난해 2월 대북 민간지원창구 다원화 조처가 시행되면서 활기를 띠었다.

김순권 교수를 중심으로 한 국제옥수수재단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편이다. 국제옥수수재단은 1998년부터 북한의 농업과학원과 공동으로 북한에서 옥수수를 시험 재배하고 있다. 김순권 교수는 시험 재배에 필요한 옥수수 종자와 비료 등 영농자재와 기술을 제공하고, 북한은 시험 재배를 담당한다. 시험 재배 결과 남한에서 가져간 수원 19호가 북한 품종보다 평균 30% 가량 증수되었으며, 슈퍼 옥수수 후보종으로 선발된 1백52개종은 평균 42%(최고 147%)까지 증수되었다. 김교수팀은 최근 북한 기후와 토양에 맞는 우량 옥수수 종자 원종 40여종을 개발함으로써 슈퍼 옥수수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소규모 교류는 ‘언 발에 오줌 누기’

민간 자선단체인 한국월드비전은 수경 재배 기술 및 자재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평양 외곽의 만경대구역 천평 규모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이에 필요한 기자재·종자·비료 등을 지원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1999년 하반기에 영양 상태가 심각한 북한 주민에게 유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젖염소 4백50두를 보냈다. 젖염소는 다른 동물에 비해 관리하기 쉽고 먹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어 북한의 열악한 사료 공급 조건에 적합하다. 또 북한 농업을 살리기 위해 10개 군을 선정해 농업 물자를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이 중 2개 군은 양잠 시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남북농업발전협력민간연대는 최근 북한이 주력하고 있는 감자 증산을 위해 씨감자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9월과 올 봄에 감자와 비료·농약·분무기 등 농자재를 함께 보냈다.

평화의숲은 북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나무를 보내고 있다. 북한은 서울시 전체 면적의 25~30배가 넘는 산림이 황폐화되어 있어 식량 문제 못지 않게 조림 사업이 시급한 실정이다. 평화의숲은 북한의 요청을 받아 지난해부터 소나무류 종자·잣나무 묘목과 분무기·비료 등을 전달하고 있다.

단순 지원이 아니라 북측과 계약을 맺고 실질적인 교류를 추진하는 사례도 있다. 현대아산·일신화학은 강원도 온정리 일대에서 계약 재배를 추진 중이다. 시험 재배를 마친 올해부터 총 3만평에서 과채류를 계약 재배한다. 남한에서는 시설 기자재·농업용 자재·종자와 영농 기술을, 북한은 토지와 노동력을 대고 농작물 재배 과정을 책임진다. 북한은 이 농산물을 3년 동안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와 관광선에 납품해 자재 대금을 상환한다. 현대아산은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온정리에서 생산된 채소로 김치를 생산하는 농산가공공장을 설립해 수출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한국JTS(제3세계 어린이 구호단체)는 함경북도 지역 4개 협동농장에 영농 자재와 옥수수 종자를 보내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 조선족 기술자를 보내 기술 지원도 함께 한다. 1999년 시험 재배 결과 수확이 전년보다 5배 이상 증가해, 초과 생산분은 협동농장과 일정한 비율로 나누었다. 한국JTS는 별도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나진·선봉 지역 탁아소에 분배받은 옥수수를 지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류는 종류가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 인도적 차원이나 시험 재배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농업 기술을 교류하거나 양측이 실익을 거두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식량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인공 씨감자 배양 기술을 개발한 생명공학연구소 정 혁 박사는 “인도적 지원이나 계약 재배로는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진정한 남북한 농업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북한은 씨감자를 연간 15만t 필요로 하는데, 지원하는 씨감자는 몇 천t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한다. 농업기자재나 가축·종자 지원 같은 소규모 사업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농업 교류가 활성화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왕래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순권 교수는 북한에 옥수수 시험 재배 외에 여러 가지 농사 기술을 전수했다. 풀 띠를 만들어 홍수 때 토사를 방지하고, 옥수수밭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해 콩 간작을 권유했다. 옥수수를 옮겨 심는 대신 직파하는 방법도 제안해 옥수수 생산량을 증가시켰다. 기술 전수가 가능한 것은 김교수가 비교적 자유롭게 북한을 왕래하면서 그 쪽 농업 현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윤귀희 이사(한국 JTS)는 “농업 교류는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사업이 실현되는 것을 관찰하고, 기술을 교류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꺼리기 때문에 ‘조선족’을 에이전트로 활용해 진행하려니까 몹시 불편하고 효과도 충분히 거둘 수 없다”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한국월드비전도 비닐하우스 설치와 수경 재배에 필요한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호주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 기술자를 대신 북한에 보내야 했다.

“검역 않고 보내면 원망 듣는다”

남한과 북한의 서로 다른 농법도 교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대아산은 온정리 계약 재배를 추진하면서 시설 원예 전문가를 매달 북한에 보냈다. 전문가가 열흘씩 체류하면서 북한 담당자에게 시설 원예 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북한측이 그동안 워낙 다른 방법을 써왔기 때문에 우리 기술을 소화하지 못한다고 김영수 과장(현대아산)은 말한다.

또 신뢰가 충분하게 형성되지 않은 단계여서 교류를 본격화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최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북한의 요구에 따라 여왕벌 5마리를 보내려다 농림부 산하 양봉협회가 이의를 제기해 보류했다. 농림부 최준열 사무관은 “남한 양봉 농가에서도 가시응에 따위 전염병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안전하게 검역하지 않고 북한에 보냈다가는 원망을 살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뒤늦게 잘못되면 오히려 ‘뭐 이런 걸 보냈냐’고 북한측이 항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국 JTS는 이미 지난해에 비슷한 이유로 북한측으로부터 원망을 산 바 있다. 미국산 씨감자를 북한 협동농장에 보내 시험 재배했는데 절반이 싹을 틔우지 못했다. ‘썩은 감자를 보낸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나무를 보내고 있는 평화의숲과 젖염소를 보내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도 그런 불상사를 가장 우려한다. “올 봄에 젖염소 2차분 5백마리를 보낼 예정이었는데, 구제역 때문에 무기한 연기했다”라는 것이 윤지열 부장(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설명이다.

또 농업 교류가 몇몇 분야에 한정되는 이유는 북한이 자발적으로 교류를 원할 만큼 남한이 다양한 농업 기술과 연구 성과를 갖고 있지 못한 탓도 있다는 것이 김순권 교수의 주장이다. 김교수는 “농업 교류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유롭게 왕래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방을 꺼리는 북한으로서는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욕심낼 만한 아이템을 남한이 갖고 있지 않으면 북한은 구태여 교류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걸림돌의 대부분은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운근 박사는 “농업 교류는 남북한 모두 실익을 챙길 수 있는 분야이므로 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한다. 1차적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북한이 유연한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남과 북이 각자 갖고 있는 장점을 적극 발굴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다고 김박사는 설명한다.

김박사의 말마따나 남과 북이 추진할 농업 협력 사업은 현재 추진하는 옥수수 재배 외에도 다양하다. 북한은 발전된 이모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위 상자 기사 참조) 북측이 종자와 농자재를 지원받는 대신 남측은 북측이 개발한 육종 기술과 작형 정보를 구할 수 있다.

감자 농사 지원 사업도 매력적인 협력 아이템으로 꼽힌다. “우수한 감자 종자 공급 기술이 뒤떨어진 북한에 남한의 기술로 인공씨감자 배양 공장을 세울 수 있다면 북한의 식량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생명공학연구소 정 혁 박사는 북한에 인공씨감자 생산 공장을 지어 빠른 시간 안에 대량으로 씨감자를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북한이 적극 나서지 않아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추진하는 양잠도 빼놓을 수 없는 협력 분야이다. 양잠은 북한의 농업 부문에서 대량의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알짜배기 산업. 북한은 노동력이 풍부하여 양잠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여기에 남한의 풍부한 기술과 자본이 보태진다면 국내 수요는 물론 수출까지 바라볼 수 있다. 현재 북한 일부 지역에서는 양잠업을 하고 있지만 품질이 떨어져 수출 길이 막힌 상태이다. 비슷한 조건을 가진 버섯 재배나 양봉 사업도 남한과 북한이 협력할 사업 분야로 꼽힌다.

환경 친화적인 농법이 발달한 북한의 기술과 우리의 유기농법을 접목한 새로운 연구도 남북 협력 아이템으로 기대되고 있다. 북한은 흙보산 비료·생물활성퇴비·복합미생물비료·유기농약 생산 기술이 크게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보다 활발한 북한의 토종 연구 또한 남한 농학자들이 탐내는 분야이다. 북한은 소 돼지 같은 가축은 물론 참깨 조 수수 메밀 기장 등 잡곡 토종을 보존·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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