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찰’ 꿈꾸는 호주
  • 캔버라·남상민 통신원 ()
  • 승인 1999.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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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총리 “미국 대리인 역할 하겠다”…다국적군 파병 주도해 자신감
지난 10월19일 인도네시아 의회인 국민협의회(MPR)는 동 티모르 국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76년 인도네시아의 스물일곱 번째 주로 강제 합병되었던 동 티모르는 독립 국가가 되었다.

동 티모르의 독립은 아시아 지역 안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다국적군 동 티모르 파병에 주도적 역할을 한 호주의 외교·군사 정책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최근 존 하워드 호주 총리의 일명 ‘하워드 독트린’이 큰 물의를 빚고 있다.

그는 호주의 대표적 주간지 <불레틴>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동 티모르 사태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 지역에서 호주의 대외 정책을 변화시켰다고 밝혔다. 특히 하워드 총리는 호주가 미국의 세계 경찰 구실을 일부분 나누어 맡아, 이 지역에서 미국의 대리인 노릇을 하는 것이 향후 대외 정책임을 밝혔다. 그는 그 근거로 호주가 아시아에 있지만 북미와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서유럽 문명권 국가라는 점을 들었다.

아시아 국가들 반발하자 하워드 발뺌

이 발언에 대해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태국에서 호주의 오만함을 비난하는 강경한 반응이 쏟아졌다. 그러자 하워드 총리는 닷새 만에 잘못 보도된 것이라고 발뺌했지만, 호주 언론들은 아시아에 대한 하워드의 인식에 비추어 그의 해명을 믿지 않는 분위기이다. 하워드가 해명한 대로 미국의 지역 대리인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인터뷰 내용의 본질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이다.

90년대 초부터 아시아에서 호주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국내외적 논란거리는 호주의 아시아화였다. 96년 현 하워드 총리의 자유연립 정권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집권한 노동당 정권이 국가적 의제로 추진한 아시아 접근 정책은, 지리적 여건이나 대외 무역 조건을 보아 호주의 정치·경제가 아시아 지역과 상호 의존하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아시아에서 국가적·문화적 정체성까지 모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적 반발이 매우 거셌다. 극우 인종주의자 정당이 상당한 대중적 기반을 확보할 정도였다. 국외적으로도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가 역사적·문화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호주는 아시아에 포함될 수 없다고 맹렬히 비난해 왔다. 새뮤얼 헌팅턴은 그의 유명한 저서 <문명충돌>에서 호주가 영국 등 유럽에서 떨어져 나온다면, 아시아 대신 미국 등 북미 쪽으로 편입되어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그러나 지리 여건이나 정치·경제 상호의존성 등으로 호주는 아시아와 불가피하게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시아 국가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호주는 적지 않게 애써 왔다. 특히 정치적·경제적·전략적으로 호주에 가장 중요한 인도네시아와는 ‘상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현실주의 대외 정책 차원에서 호주는 인도네시아가 동 티모르를 강제 합병했을 때 유엔이 불법이라고 결의했는데도 합병을 승인했다. 그리고 현재 분리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이리안 자야 주를 인도네시아가 합병하는 데도 적극적 역할을 했음이 최근 비밀 해제된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또한 91년 동 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민간인들이 인도네시아군에게 백여 명 이상 학살당한 비극이 발생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은 95년 당시 노동당 정부는 비공개 협상을 통해 수하르토 정부와 안보조약을 체결했다.
국가적 이해 관계에 철저한 이런 정책 기조는 동 티모르 국민 투표를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투표 뒤 친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살상극을 벌이자 곧바로 인권 수호를 위한 지역 경찰 역할을 자임했다. 하지만 호주는 이런 유혈 사태에 대비해 평화유지군 전략을 미리 논의하자는 미국과 포르투갈의 수 차례 제안을 거부해 왔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입장을 존중하고, 동 티모르인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다가 살상극이 일어나자 그제서야 국제적 공조를 모색했다. 호주의 이런 우유부단함은 동 티모르에서 수많은 주민이 살해당하고, 유엔 투표감시단마저 민병대에게 쫓겨 나오는 결과를 낳았다. 동 티모르 문제에 관한 한 제3자로서는 옛 식민지 모국인 포르투갈과 함께 가장 강한 발언권을 갖고 있는 호주가 동 티모르인의 고통을 가중시킨 것이다.

마지막까지 인도네시아 눈치를 살피며 군사 개입을 주저했지만, 막상 동 티모르 사태에 개입하면서 호주의 대외 정책과 태도는 크게 바뀌었다. 자국 군인의 20%에 가까운 4천5백여 명을 동 티모르에 파병하고, 다국적군 총사령관을 맡아 현지 활동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유엔의 구체적 규범에 따라 움직이는 평화유지군에 비해, 자율적 판단 범위가 훨씬 넓은 다국적군 총사령관을 임명한 사람이 호주 총리라는 점도 하워드에게 자신감을 안겨 주었다.

물론 호주가 이런 역할을 맡으면서 그토록 공을 들여온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악화했다. 예정된 양국의 군사 협력 프로그램이 취소된 것은 물론 95년에 체결된 양국 안보 조약도 인도네시아에 의해 폐기되었다. 호주군의 동 티모르 파병을 백인 국가에 의한 주권 유린이라고 규정한 인도네시아인의 시위가 자카르타에서 계속되었고, 하워드의 대외 정책에 대한 발언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다국적군 총사령관을 태국이 맡아주기를 희망하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한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현지 활동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하워드 정부는 이번 사태에서 확보한 새로운 역할과 자신감으로 대외 군사·외교 정책을 독트린화하고 있고,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 악화 문제는 애써 피할 것이 아니라 당당히 극복해야 한다는 태도로 바뀌고 있다. 갑자기 다가온 지역 경찰 역할에 흥분하고 있는 하워드 정부를 폴 키팅 전 총리는 국내 문제를 무마하기 위한 기회주의적 행동이라고 혹평하고, 대외 관계에서 도덕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 균형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 등 호주 국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

하워드 “마찰 있더라도 호주의 가치 추구”

그러나 하워드 독트린이나 동 티모르 사태 개입 과정을 보면, 하워드 정부가 도덕주의적 외교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하워드가 밝혔듯이 ‘북미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유럽 문명권 국가로서 아시아에 있는’ 호주의 역할에 대한 오만한 믿음이 그의 대외 정책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를 토대로 ‘어떤 나라도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하워드는, 앞으로 아시아 주변 국가와 마찰을 빚더라도 호주의 가치를 추구할 것이라고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따라서 과거처럼 아시아에 호주를 받아들여 달라고 매달리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동 티모르 독립과 관련해 호주에 가장 큰 경제적 관심사인 티모르 해협의 막대한 천연 자원 문제도 이미 해결한 상태이다.

오는 11월6일, 호주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국가 정체성에 큰 변화를 가져올 또 하나의 계기를 맞는다.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군주제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호주인을 대통령으로 하는 공화제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국민 투표를 치를 예정이다. 이미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로 구성된 헌법 회의를 97년 말에 개최하여 공화제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에, 공화제 수용 여부를 묻는 이번 국민 투표는 사실상 통과 의례일 뿐이다. 호주가 공화국으로 재탄생한다는 것은 유럽과의 역사 관계를 종결함을 의미한다. 이 역사적 의례를 앞두고 변화하고 있는 호주의 새로운 대외 정책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호주의 정체성에 혼돈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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