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코소보 전쟁 일어난다?
  • 프랑크푸르트/허 광 (rena@sisapress.com)
  • 승인 2000.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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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 공화국, 유고 연방에서 분리 움직임… ‘내전 발발→나토군 진입’ 시나리오 나와
최근 유럽의 언론은 ‘제2의 코소보 전쟁’이 임박했다고 전한다. 코소보 이후의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서방 언론에서 제2 코소보 전쟁설이 처음 흘러나온 시점은 지난 2월 중순이다.

당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자리잡은 미군 본부에서는 미국과 독일 두 나라의 전략회의가 열렸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에 따르면, 이 전략회의에 참석한 안보 전문가들은 머지 않아 발칸 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전략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있었던 나토 지휘부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나토 사무총장 로버트슨과 나토군 사령관 클라크가 마케도니아를 방문한 후 유고 국경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에 ‘경계 경보령’이 떨어진 것이다.

이와 때를 맞추어 나토군은 코소보 주둔후 처음으로 도상 작전을 벌였다. 3월19일∼4월10일에는 약 2천명을 동원해 실전 연습을 했다. 도상 작전은 유럽연합의 군사 기구인 서유럽동맹(WEU)이 지휘했다. 4월1일 유럽연합이 나토 사령부로부터 코소보 주둔군의 통수권을 넘겨 받은 것과 맥이 통한다. 또 유엔은 새 전쟁에 대비해 알바니아에 난민수용소 4개를 세우기로 했다.

몬테네그로, 독일 마르크를 공식 화폐로 채택

제2 코소보 전쟁의 첫 무대로 꼽히는 지역은 몬테네그로 공화국이다. 이곳은 여전히 유고 연방의 일원으로 남아 있지만 코소보와 달리 세르비아 민족과의 갈등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런데도 몬테네그로에는 다음 전쟁의 후보지가 될 만한 내력이 있다. 지난해 11월4일 일어난 일이다. 그 날 독일 연방은행의 위탁을 받은 네덜란드 화물기가 크로아티아 공항에 도착했다. 트럭 2대에 실린 화물은 그 후 중무장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유고 국경을 넘었다. 몬테네그로에 도착한 화물은 독일 화폐인 마르크였으며 그 액수는 한국돈으로 약 3백억원에 달했다. 몬테네그로 공무원들은 다음 날 마르크로 월급을 받았다. 엄연히 유고 연방의 일원인 몬테네그로가 독일 마르크를 공식 화폐로 사용한다는 것은 곧 몬테네그로가 독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징표이다. 그렇게 되면 유고 연방에는 세르비아 공화국만 남게 되어 유고 ‘연방’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유고 연방의 미래가 걸린 이 중요한 사태에 독일 언론은 뜻밖으로 침묵을 지켰다. ‘독일 정부가 마르크 수송을 결정하기 전까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는 연방은행측의 ‘해명’이 전부였다.

물론 몬테네그로에서 독일 마르크가 통화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오래 전에 예견된 일이다. 몬테네그로 정부가 몇 달 전부터 새 화폐가 필요하다고 누차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독일측이 굳이 크로아티아를 거쳐, 그것도 야밤에 마르크를 수송한 데에는 곡절이 있다.

마르크 수송 작전이 벌어진 시점을 다시 살펴보자. 몬테네그로 정부가 마르크 도입을 공식으로 밝힌 때는 지난해 10월29일이다. 그 전날인 28일은 37일 동안 지속된 반정부 세력의 연합 시위가 중단된 날이다. 밀로셰비치 정부가 ‘과도 정부’를 세울 수밖에 없게끔 가두 시위를 벌인다는 반정부 세력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 날은 유고의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밀로셰비치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서방의 전술이 패배한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몬테네그로 대통령 쥬카노비치는 나토의 공습 중에 반(反)밀로셰비치 노선을 공식으로 선언한 인물이다. 그는 몬테네그로를 유고 연방에서 분리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밀로셰비치 정권이 있는 한 몬테네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히고, 당시 세르비아의 반정부 지도자로 서방의 지원을 받던 진지치와 공동 보조를 맞춘 것이다.

그러니 지난해 7월 말 사라예보에서 열린, 밀로셰비치 고립을 노렸던 ‘발칸 안정화 조약’에 그가 초대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반정부 연합의 인기가 떨어질 무렵 미국은 발칸 특사를 통해 쥬카노비치와 세르비아의 또 다른 반정부 지도자 드라스코비치의 만남을 주선했다. 드라스코비치는 어떤 경우에도 몬테네그로의 분리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인물이다.

또 발칸 안정화 조약에는 독일이 주장했던 ‘소수 민족 보호, 국경 문제의 중요성’이라는 구절이 빠졌다. 미국은 독일이 주장하는 대로 소수 민족 분리 정책을 밀고 나갈 경우 코소보 이후의 분쟁에 말려든다고 계산한 것이다. 나토 총재 로버트슨이 몬테네그로 정부의 마르크 도입에 반대해 ‘단독 행동’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몬테네그로와 독일 두 나라 정부는 유고의 반정부 연합 세력을 지원하려는 서방의 전략이 실패하자 몬테네그로를 분리한다는 두 번째 방안을 선택하고 마르크 도입을 결정했던 것이며, 여기에 서방 내부의 반대가 심해 ‘야밤의 비밀 작전’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주권 국가가 새 통화를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다. 국민 투표를 통해 동의를 얻거나, 적어도 의회의 토론이나 결의를 거치는 일이다. 몬테네그로 정부가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정부 선언 하나만으로 마르크를 도입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이런 절차를 거쳤을 때 지지를 받는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몬테네그로에는 무엇보다 유고 연방에 남기를 바라는 주민의 비율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몬테네그로 분리를 공약으로 내세운 쥬카노비치는 1997년 선거에서 서방의 지원을 받고서도 겨우 5천 표 차이로 승리했다.

독일의 보수 신문 <디 벨트>는 그를 ‘밀수왕’이라고 부른다. 그는 유고 연방이 보스니아 전쟁 중 금수 조처에 묶여 있을 때 밀수에 손대 거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밑에서 이탈리아 밀수단과 거래했던 외무장관 브랑코는 1999년 이탈리아 사법부에 고소되자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검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몬테네그로 정부가 담배 밀수를 통해 얻은 수익은 정부 재정의 60%에 이른다고 한다. 몬테네그로에서 독일 마르크가 공식 화폐로 인정되면 바로 밀수 수익을 안전하게 보장받게 된다. 밀수 수익을 인플레 손실이 없는 독일 화폐로 보관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밀수 수익은 기업을 매입하는 데도 사용된다. 몬테네그로에서 최근 국영기업 민영화 붐이 일고 있는 것은 기업 매입을 통한 돈세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몬테네그로, 내전 가능성에 경찰력 확대

따라서 몬테네그로의 분리 독립은 사회 해체를 동반하게 되며, 사회 내부에 긴장을 조성하게 된다. 내전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나토군이 주둔하게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쥬카노비치는 나토군에게 몬테네그로의 항구 시설을 이용할 권리를 이미 내주었고 자체 경찰력도 확대하고 있다. 경찰력 무장은 유고 연방군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마르크는 이제 보스니아에 이어 몬테네그로에서도 현지 화폐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마르크만 화폐로 사용하는 코소보, 또 마르크와 연계된 화폐를 쓰고 있는 동유럽의 불가리아와 발틱 두 나라(리타우엔·에틀란드) 그리고 2년 후 유로 통화로 통합되는 프랑스 지역까지 포함하면 유로 통화는 달러를 능가하는 세력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마르크를 통해서 몬테네그로를 분리한다는 구상은 ‘쥬카노비치 마피아’를 키우는 지름길이기도 하며 서방의 군사 개입을 부를 위험성을 안고 있다.

코소보 전쟁은 독일이 길을 내고 미국이 확대했다. 제2의 코소보 전쟁은 몬테네그로를 무대로 하여 되풀이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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