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는 여전히 불타고 있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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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반군 크리스마스 대공세…“후세인 잡혔어도 저항 세력 건재”
 

“꽝꽈르르… 꽝.” 12월25일 아침 6시20분께, 기자는 굉음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묵고 있던 알 파르나 호텔에서 겨우 50m 거리에 있는 쉐라톤 이시타르 호텔이 저항 세력으로부터 로켓 공격을 받은 것이다. 본능적으로 서울에서 준비해온 방탄 조끼를 입고 폭발음이 들린 쪽으로 내달렸다. 5분 가량 지난 후, 쉐라톤 호텔에 묵고 있던 외신 기자를 빼고는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외부인이 기자였다. 전날 밤 미리 셔츠를 입고 양말을 신은 채,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바닥은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깨진 유리와 파편으로 가득 찼다. 로비 천장은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커다란 구멍이 2개 뚫려 있었다. 난장판 한가운데 한껏 치장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어색하게 서 있었다.

이윽고 호텔 관계자가 나와 상황을 통제했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는 듯했다. 흩어진 유리와 파편을 치우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피격된 곳은 호텔 7층과 8층 사이. 벽과 복도 유리창이 날아갔다. 로켓포탄 잔해가 로비 천장을 뚫고 떨어지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 호텔 정문 앞에서 한 미군 영관 장교가 “진짜 끝내주는 날이군(It's really exciting day)”이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에게 상황을 물으니 “범인들이 건너편 빌딩에서 조준 사격을 한 것 같다. 지금 근처 시가지를 포위하고 수색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쉐라톤 호텔은 팔레스타인 호텔과 함께 바그다드에서 대표적인 외국인 투숙 호텔이다. 투숙객들은 이라크 경찰 최고 책임자를 비롯해 미군 군수업체 간부, 미국 방송 기자 등 주로 저항 세력이 좋아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쉐라톤호텔, 하룻밤에 두 번 피격

기자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취재 복장으로 대기한 채 잠이 들었던 이유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바그다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쉐라톤 호텔은 24일 밤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피격되었다. 12월24일 저녁 8시20분께, 기자가 쉐라톤 호텔에서 60m 가량 떨어진 알 라비 호텔 앞을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휘이잉~쾅!” 하는 특유의 로켓포 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피격 장소는 옥상 간판이었는데, 현장에서는 특별히 피습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경비요원에게 물어보니 “흰색 도요타 자동차 2대에 나눠 탄 무장 세력이 로켓추진수류탄(RPG) 두 발을 쏘고 달아났다”라고 말했다. 경비대가 응사했으나 저항 세력을 체포하지는 못했다. 미군 제1기갑사단은 공격당한 무기가 로켓추진수류탄이 아니라 60mm 박격포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10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쉐라톤 호텔이 또 공격을 받았으니 하룻밤 사이에 두 번이나 저항 세력의 목표가 된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크리스마스 대공습에서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저항 세력은 최소한 서방인들의 명절을 망치는 데는 성공했다. 24일 밤 피격 지점 바로 아래인 17층 카페테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한창이었다. 놀란 손님들은 아래층으로 도망쳤고 가슴을 졸이며 밤을 지샜다.

저항 세력은 또 후세인이 체포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들이 건재함을 기자들에게 과시했다. 쉐라톤 호텔은 입구 200m 전방부터 검문 검색을 펴고 있는 곳이다. 탱크 2대와 장갑차 2대가 호텔 주위를 호위하며 무장 미군과 훈련된 수색견이 24시간 경비한다. 이런 삼엄한 경계망이 뚫렸으니 미군으로서는 망신을 당한 셈이다.

쉐라톤 호텔 기습이 과시용이었다면 24일 밤부터 25일 아침까지 이어진 바그다드 시가전과 외곽 폭탄 공격은 가히 크리스마스 대공세라고 부를 만했다. 이 날 바그다드 남부에서는 미군과 이라크 저항 세력 사이에 밤새 추격전과 총격전이 벌어졌다. 기자는 현장에 접근하려고 시도했으나 교전 지역 도로가 모두 막히는 바람에 걸어다니면서 교전 지역 외곽만 취재해야 했다. 하늘에는 헬기가 요란히 움직였다. 기자가 바그다드에 온 이후 가장 격렬한 교전이었다. 25일에는 바그다드 시내 곳곳에 체크포인트가 세워졌다. 팔레스타인 호텔 부근과 ‘그린 존’ 부근의 교통은 아예 통제되었다. 기자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현지인 통역은 결국 호텔로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이 날 티그리스 강 건너 그린존이라고 불리는 미군임시행정청 지역에서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기자가 23일 그린존을 방문했을 때 4중 경비망을 펼치며 물샐 틈 없는 수비를 자랑하던 미군들과,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군속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즐거워하던 풍경이 떠올랐다. 그린존은 밤새 세 차례나 로켓포 공격을 받았고, 구급차가 출동하기도 했다.

24일부터 26일까지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 미군 8명이 죽었다. 24일 오전 9시께 제4보병사단 병사 3명이 사마라 부근을 지나다가 폭탄이 터져 죽었다. 2명은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1명은 병원으로 후송되다가 죽었다. 25일 오후 6시께 바그다드 동북쪽 50km지점에 위치한 바쿠바 인근 미군기지에서는 미군 2명이 박격포 공격을 받아 죽고 4명이 다쳤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크리스마스 대공세에서 발생한 미군 부상자는 100명이 넘는다.

미군은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른바 ‘철권(Iron Grip) 작전’이라 불리는 게릴라 토벌 작전을 펼쳤다. 바그다드 서쪽 칼리야에서 미군은 한 주택이 저항 세력의 공격 엄폐물로 쓰인다는 이유로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팔루자 인근에서는 마을 하나를 봉쇄하고 항공기를 동원해 주택 한 채를 파괴하기도 했다. 철권 작전의 최종 결과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아무튼 저항 세력은 크리스마스 대공세를 통해 후세인이 체포되었다고 해서 미군에 대한 저항이 결코 줄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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