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미국행 불법이민 열차’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pyonc@rfa.org) ()
  • 승인 2000.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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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주 등으로 또다시 월경 이민자 ‘밀물’… ‘3D 업종’ 종사자 많아 단속에 어려움
요즘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 남부 애리조나 주의 더글러스에서는 매일 밤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이 마을로 야음을 틈타 월경을 시도하는 멕시코인과 이들을 잡기 위한 주민·자위대 간에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인구 1만5천여명인 이 마을 주민이 매일 밤 50명씩 조를 짜서 엽총으로 무장하고 불법 월경자 단속에 나선 지도 벌써 2년째다. 과거 밀입국 통로였던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이고나 텍사스 주의 엘파소에서 단속이 강화되자 경비가 비교적 허술한 애리조나 주 접경 쪽으로 불법 월경자가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찾는 더글러스 마을의 외곽 지역은 35℃를 웃도는 살인 더위에다 맹독성 뱀이 우글거리고 있지만, 미국행에 목숨을 건 멕시코인들에게는 큰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지난해 이 마을과 인근 지역을 통해 미국땅을 밟는 데 성공한 멕시코인은 무려 47만여명. 5년 전에 비해 두 배를 웃돈다.

‘이민 천국’ 미국이 최근 들어 또다시 불법 이민자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국경순찰대의 감시가 심한 멕시코 국경지대는 물론 비교적 경비망이 허술한 캐나다 국경지대 곳곳으로 미국행을 꿈꾸는 불법 이민자가 물밀 듯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11일에는 불법 이민의 단골 루트로 꼽히는 캐나다의 밴쿠버를 통해 미국땅을 밟으려던 한국인 21명이 국경순찰대에 적발되기도 했다. 미국 헌법은 불법 체류자라고 해도 일단 미국땅을 밟으면 내국인에 준하는 인권을 인정한다. 당국이 불법 체류자나 입국자를 국외로 추방하려면 때로 재판을 거쳐야 하는데,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테러 혐의로 뉴저지 주 교도소에 구금된 한 팔레스타인 사람을 미국 법무부가 국외로 추방하려다 연방 지법 판사의 명령으로 좌절되기도 했다. ‘설령 테러범이라도 정당한 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판사의 판시였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외국인이 미국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도 이런 미국적 이민 환경 때문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인구 2억7천여만명 가운데 이민 인구가 6천4백여만명이나 차지할 만큼 미국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민 사회이다. 미국 이민귀화국(INS)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 체류하는 불법 이민자는 약 4백만명. 여기에 체류 기간을 넘기고 눌러앉은 사람이 해마다 약 30만명에 이른다. 또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불법 체류자는 약 1만7천명에 이르며, 해마다 수만명이 불법 입국 판정을 받고 추방된다. 이처럼 불법 이민자가 증가하자 미국 의회는 1996년 국경순찰대 병력을 3천9백명에서 5천7백명으로 늘렸지만, 이들을 단속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물론 불법 이민자를 적발해 반드시 추방하거나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인지는 미국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를테면 내일 당장이라도 불법 이민자의 주요 일터로 꼽히는 레스토랑·호텔·가축도살장·의류봉제업체를 대대적으로 단속할 경우, 이들 업소는 일손 부족으로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미국 내에서 불법 이민객이 가장 많이 몰려 사는 것으로 알려진 뉴욕 퀸즈 지역의 경우를 보자. 이곳에는 허름한 아파트 방 하나에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가난한 불법 이민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또 월세 수백 달러인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불법 이민자만 해도 수천 가구다. 그런데도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한다. 이들을 단속하면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고, 그 경우 가뜩이나 집 없는 거지가 넘쳐나 골치 아픈 뉴욕 시 당국이 더 큰 골칫거리를 안게 되기 때문이다. 급기야 1994년에는 불법 이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9명으로 이루어진 연방자문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업주들이 외국인에 대한 법적 지위를 확인할 수 있게끔 이들의 인적 사항을 데이터화하도록 클린턴 행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리스 마이스너 이민귀화국 국장이 얼마 전 <뉴욕 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 실토한 대로, 이런 작업은 말과 달리 실천하기에는 엄청난 제약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불법 이민자가 차지하고 있는 일자리 수백만 개가 사라질 경우 당장 경제 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국이 이민의 천국이라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민자에 대한 미국 주류 사회의 눈총은 꽤 차가웠던 것 같다. 불법 이민자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 1985년 설립된 전미민권자유연맹에 따르면, 1882년 연방 의회는 중국에서 건너오는 이민자를 막기 위한 ‘중국인 배제령’을 통과시켰고,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높았던 1920년대에는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던 외국인 수천명이 체포되거나 추방되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에는 일본계 미국인 12만명이 집과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1950년대에는 멕시코인을 겨냥한 반이민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다.

이민 전문가들에 따르면, 반이민 정서가 미국 사회에 고조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이런 반이민 정서는 연방 정부와 연방 의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단적인 예로 1994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불법 이민자에 대한 교육과 의료보험 혜택을 축소한 ‘주민발의안 187호’를 통과시킨 것을 들 수 있다. 또 1996년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 시민이 아닌 영주권자와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 거주자에 대해 연방 정부 차원의 각종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같은 해 불법이민규제법이 통과되어 이민귀화국에 사실상 무제한적인 규제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반이민 정서를 타고 1994년 연방 상원의 앨런 심슨 의원과 라마르 스미스 의원은 불법 이민자 단속을 대폭 강화하고 합법 이민자 수를 대폭 줄이는 엉뚱한 법안을 상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반이민 움직임은 미국 전역의 각종 이민자 권익 옹호 단체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나자 무산되었다.

이처럼 불법 이민자 급증에 대한 미국인의 거부감이 고조되는데도 최근 미국 연방 의회가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외국 노동력에 대해서는 합법적으로 이민의 문호를 열 조짐을 보여 흥미롭다. 첨단 인터넷 기업이 모여 있는 실리콘 밸리가 전문 일손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는 이들에 해당하는 임시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 비자 할당량을 지금보다 대폭 늘리기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전문직 등 도움 주는 이민자에겐 문호 개방할 듯

원래 H-1B 비자는 미국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온 외국인 고급 인력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990년에 만들었다. 이 비자를 받은 사람은 최초 3년간 일할 수 있으며, 한 번에 한해 연장이 가능하다. 이 비자에 대한 연간 할당량은 6만5천개였으나 1998년에 3년 기한으로 11만5천개로 늘어났다. 때문에 올해 말이면 다시 예전 수준인 6만5천개로 줄어들 전망이지만, 연방 의회는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첨단 정보산업계의 일손 부족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앞으로 3년간 이 비자 할당량을 20만개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물론 H-1B 비자를 통해 합법적으로 취업하는 외국 노동자를 엄격히 말해 이민자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보통 이 비자를 받는 외국 노동자들은 곧바로 영주권을 신청해 결국은 합법 이민자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하버드 대학의 이민 전문가인 조지 보르자 교수는 이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캐나다와 같은 점수제 이민 정책을 권장하고 있다. 이민을 신청한 사람을 대상으로 영어 능력과 노동 능력, 가족관계, 인종적 다양성을 종합 평가해 점수를 매긴 뒤 일정 점수를 넘을 경우 이민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해마다 22만5천명씩 이민 할당량을 실시하고 있는 캐나다도 불법 이민자들로 골치를 앓아 왔지만, 이 제도를 시행하고 난 뒤 상당히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고민은 캐나다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의 잠재 이민자가 미국을 향해 장사진을 치고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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