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특별 인터뷰
  • 南文熙 기자 ()
  • 승인 2000.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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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인터뷰/DJ·김정일 큰 틀 합의한 뒤 실무자 회의체 가동될 듯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56·뮌스터 대학)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현실을 ‘중심의 괴로움’이라고 표현했다. 이 괴로움을 희망으로 바꾸자는 것이 송교수가 남과 북에 던지는 메시지이다. 그러나 정작 송교수 자신은 이러한 희망을 남북 모두와 함께 나누어 갖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표현대로 ‘경계인의 숙명’을 또 한번 절감해야 했다. 군부 독재 시절 해외에서 민주화 투쟁에 나섰고, 1991년부터 북한을 왕래하며 민족 문제를 껴안고 고민해온 지난 과정이 또다시 덫이 되었다. 전남대 5·18 연구소가 5월15일부터 3일간 열리는 ‘5·18 20주년 기념 국제 학술대회’에 그를 초청했지만 국정원과의 마찰로 인해 33년 만의 귀국길이 또다시 좌절되었다. 1967년 서독에 유학해 세계적 석학인 위르겐 하버마스를 수학한 송교수는 고 윤이상 선생과 더불어 유럽에서 활동해 온 한국의 지성으로서 북한뿐 아니라 남한의 학계에도 폭넓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5월3일 미국 뉴저지 ‘세계한민족 포럼’ 현장에서의 첫 인터뷰와 5월12일의 전화 통화를 통해 개인적 심경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견해를 들었다.

지난해 8·15 때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귀국이 좌절되었는데 그간의 경위는?

국정원측이 내가 들어가면 황장엽씨의 증언 내용에 대해 조사하고 준법 서약서를 요구하겠다고 통보해 와 스스로 포기했다. 이번 귀국 목적은 학술 행사 참석과 그동안 못한 아버님 산소 성묘 등 철저히 비정치적인 것이었는데 국정원의 그런 요구에 응하면서까지 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이 화해하는 이 시점에도 남쪽의 일부 분위기가 변하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되어 무척 답답하다. 그러나 내 문제가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 조금이라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코 원치 않는다.

황장엽씨가 송교수를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인 김철수’라고 주장해 현재 재판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경과는?

황씨의 주장은 한마디로 일고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황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그동안 10여 차례 공판이 있었고 지난 5월4일 1차 결심 공판이 있을 예정이었다. 법원 판결이 나면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어쩐 일인지 판결이 정상회담 직후인 6월15일로 연기되었다.국정원측은 아직도 송교수에 대한 혐의를 풀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재판 진행 과정에서 황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들을 많이 제출했다. 반면에 황씨나 국정원측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재판에 직·간접으로 연루되어 있는 국정원이 나를 조사한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부당하므로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발표되던 시점에 평양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방북 경위와 그 당시 분위기는?

1995년부터 베이징 남북 학자 모임을 주선해왔다. 그동안 다섯 차례 이루어졌고 올해 여섯 번째인데 그 준비차 4월8일부터 11일까지 평양을 방문했다. 아태평화위와 사회과학원쪽 사람들 역시 놀라움과 함께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동안 남쪽의 일부 언론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통령과 상봉만 하고 회담은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는데.

서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해되나 언론이 너무 앞서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는 김정일 위원장은 그렇게 쩨쩨하거나 남의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아니다. 북쪽도 이번에는 남쪽과 뭔가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두 정상이 만나 가장 중요하게 논의할 사항은 뭐라고 생각하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큰 틀이 합의될 수 있다고 본다. 남북 간의 응어리를 푸는 것과 함께 서로가 무력으로 상대방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점을 합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김대통령도 누차 이 얘기를 해왔고 북쪽도 ‘서로 먹고 먹히지 않는 관계’를 얘기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간단한 합의서를 공동 성명 또는 공동 선언 형식으로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남쪽은 남북 기본합의서에 비중을 두고 있고 북쪽은 7·4 공동 성명에 비중을 두는 등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는데.

고도의 외교적 절충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두 가지 합의서 정신을 절충해 정상간 합의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경제 협력이나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지원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정상회담에서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 이후의 실무 협의에서 다뤄지게 될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로 넘어간다는 것인가?

내 생각으로는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이미 합의한 핵통제공동위·군사공동위·경제공동위 등이 가동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핵통제공동위는 그동안 달라진 상황을 반영할 필요가 있겠지만, 굳이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이미 쌍방이 합의한 이런 위원회들을 가동해서 구체적인 사안들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가 공동위 체제로 정례화할 수 있다는 것인가?

충분히 가능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실무진들이 어떤 자세로 임하는가 하는 것인데, 작은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대범하고 굵직굵직하게 문제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

남쪽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정상회담의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는데.

이번에 큰 문제가 돌파되고 서로 확신을 주는 분위기가 된다면 가능하겠지만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북쪽은 정상회담 이후에도 남쪽이 과연 행동으로 합의 사항을 뒷받침하는지를 지켜보려 할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본다.

남쪽에는 아직도 북의 의도와 관련해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김정일 위원장이 60세가 되는 2002년을 앞두고 ‘통일 한반도의 지도자’로 떠오르는 계기로 삼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 등이다.

김위원장의 환갑을 앞두고 북쪽의 신문에 그런 뉘앙스의 글들이 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사학적 차원이지 심각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쪽도 과거에 자신들이 가졌던 생각들이 지금까지도 통용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북쪽은 한·미·일의 군사 공조에 맞서 총대 사상이니 군민 일체니 해왔는데, 이런 부분을 경제 쪽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체제 위기감이 완화되면 더 여유를 가지고 남북 대화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자신들이 테러나 하는 호전적인 국가가 아니라 예측이 가능한 정상적 국가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한 측면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은 핵과 미사일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일종의 딴죽을 거는 것인데, 그런 어려운 문제를 정상회담에 포함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 사람들은 한반도의 안정보다는 자기들의 관심사에 국한해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민족의 화해라는 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데 비하면 범위가 너무 좁다. 최근에 남쪽에서 화학무기를 폐기했다는 기사도 나오는데 만약 북이 남쪽의 화학무기 문제를 거론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1991년 김일성 주석을 만나 동서독의 통일 문제에 대해 4시간 이상 대담했고, 또 김주석 장례식 때 김정일 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두 사람에 대한 인물평을 한다면.

김위원장이 부친으로부터 많은 것을 이어받아 두 사람 간에 공통점도 많지만 스타일에서 차이가 있다. 김주석이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지도자라면 김위원장은 두뇌 회전이 빠르고 스케일이 큰 인물이다. 특히 50대의 젊고 패기 있는 인사들이 핵심 참모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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