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핵 쓰레기 하치장 되나
  • 호주 멜버른·남상민 통신원 ()
  • 승인 1999.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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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산업계, 국제 핵 쓰레기 영구 처분장 건설지로 지목… 시민·환경단체 “결사 반대”
전세계 핵발전소 4백30여 곳에 마냥 쌓여가는 핵 쓰레기를 어찌할 것인가? 핵에너지가 상업화된 지 40년이 넘도록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 문제는 핵 산업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핵 쓰레기를 깊은 바다 속에 버리거나, 남극에 묻거나 하는 방식은 이미 환경적·기술적 타당성을 잃은 지 오래이다. 국제 협약도 이같은 처분을 금하고 있다. 그래서 우주로 쏘아 버리자는 얘기마저 나온다. 하지만 이는 10여 년 전 챌린지호 폭발처럼 치명적인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나 막대한 비용 때문에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방안이다. 그래서 땅 속 깊은 곳에 처분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어디에 묻을 것인가? 현재의 기술로 수만 년 동안 핵 쓰레기를 안전하게 격리해 관리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핵 쓰레기 처리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전세계에 20만t 이상 쌓여 있는 고준위 핵 쓰레기이다. 고준위 핵 쓰레기란 원자로에서 핵분열 반응을 더 이상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핵연료봉 다발을 뜻하는데, 그 독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데 25만 년이나 걸린다. 이것을 사용후 핵연료라고도 부르며, 연료봉에 남아 있는 우라늄235나 핵분열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된 플루토늄 같은 물질을 추출(재처리)하기도 하지만, 치명적 독성은 남는다.

그동안 핵 쓰레기 처리에 대한 국제 사회의 합의는 그것을 생산한 나라가 자국에서 처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30여 나라 중 어느 나라도 사회적·환경적 문제 등으로 영구 처분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핵 쓰레기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미국도 2010년이 되어야 영구 처분장을 운영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 핵 쓰레기장이 건설되고 있는 네바다 주 유카산의 지질학적 안정성과 지하수 이동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아예 국제 핵 쓰레기 영구 처분장을 건설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가 국제 핵산업계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그동안 핵산업계는 이런 논리를 여러 갈래로 전개해 왔다. 미국의 핵연료 기업인 ‘미국 연료 안보’는 90년대 초반부터 미국 군사 기지가 있는 남태평양 웨이크 섬에 국제 핵 쓰레기 처분장을 건설하기 위해 로비를 벌여 왔다. 스위스와 독일 기업들은 중국의 고비 사막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건설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몇해 전에는 세계적 핵 재처리 시설이 있는 영국 셀라필드에 서유럽 공동 처분장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다.

러시아의 핵에너지부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와 스위스·독일 등 유럽 국가로부터 고준위 핵 쓰레기 만t을 이전받아 최종 처분하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 핵에너지부가 국내법을 어기면서까지 앞으로 30년간 스위스의 고준위 핵 쓰레기 2천t을 처분해 주겠다는 의향서를 지난해 체결했음이 그린피스의 폭로로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스위스의 핵 쓰레기 이동은 미국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기 힘들고, 미국이 러시아의 핵관리 능력을 극도로 불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사업은 성사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호주가 가장 안전한 지역”

지난 3월부터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호주에 세계 핵 쓰레기 처분장을 건설하는 계획은 더 조직적이고 구체적이다. 영국 국영 기업인 ‘영국 핵연료’를 비롯해 캐나다의 세계적인 지질 공학 기업과 스위스의 핵 쓰레기 처리 기업 등이 국제 처분장을 건설하기 위해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둔 ‘판게아 자원’을 설립했다.

2억년 전, 오늘날의 세계 대륙이 하나로 붙어 있었던 초거대 대륙 판게아에서 이름을 따온 이 기업은 지난 2년 동안 8백만 달러를 들여 처분장 후보지를 조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아르헨티나·호주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조사 결과 호주가 최적지로 떠올랐다. 호주 내륙의 반사막 지역에 20㎢짜리 쓰레기 처분 시설을 지어 아시아와 유럽으로부터 고준위 핵 쓰레기 7만5천t을 받아 영구적으로 처분하겠다는 계획이다.

가장 오래된 대륙인 호주는 지질학적으로 1억년 이상 안정성을 유지해 왔다는 점과 쓰레기장 대상 지역이 지하수 이동이 거의 없어 수문학적 위험도 전혀 없다는 것이 후보지로 결정된 이유이다. 판게아 자원은 또 핵 쓰레기의 안전 관리에 중요한 정치적 안정성과 사회적·제도적 조건 면에서 호주가 가장 적합하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애초 계획에 따르면, 4월 내에 사업안을 공개하고 막대한 돈을 들여 전세계에 홍보를 진행하며, 호주 정부에 조직적인 로비를 시작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세계적 환경 단체인 ‘지구의 친구들’ 영국 지부가 홍보 영상물 비디오를 확보해 호주 지부에 보냄으로써 예정보다 일찍 국제 사회에 사업안이 알려지게 되었고, 호주 사회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이 사업안에 따르면, 핵 쓰레기 저장 시설과 항만 및 철도 등 부대 시설 건설에 60억 달러가 소요되고, 운영 비용으로 연간 4억5천만 달러가 투입되어 호주 경제를 1% 성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을 추진하는 측이 이런 막대한 경제 효과를 홍보하지만 호주 정부는 사업안을 논의조차 않겠다는 입장을 일단 밝혔다.

이 사업안을 지지하는 측은 경제 논리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호주 과학아카데미 회장 브라이언 엔더슨 교수는 호주가 세계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전세계가 직면한 핵 쓰레기 문제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지지하고 있다. 또한 핵 군축 대사를 지낸 한 전직 외교관은 러시아의 핵물질도 호주의 국제 핵 쓰레기장에서 처분하면 군축과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판게아 자원 팬츠 회장은 호주가 핵발전 국가는 아니지만, 우라늄 생산 국가로서 핵사이클에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핵 쓰레기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 대안으로 아르헨티나 떠올라

‘세계 핵문제 해결 대사’라고 자임하는 판게아 자원은 세계 각국의 정치가·과학자 등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중이고, 미국에서는 핵잠수함 함장을 지낸 군축 전문가를 고용해 국무부·국가안보위원회·백악관 등에 로비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백악관 군축 자문관인 로버트 갈루치 조지워싱턴 대학 교수는 호주가 국제 핵 쓰레기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적극 밝히고 있다. 이것은 불안정하게 관리되고 있는 러시아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향후 핵탄두 감축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논리이다.

또한 판게아 자원 지분의 80%를 소유하고 있는 ‘영국 핵연료’뿐만 아니라 영국 정부와 의회도 호주 정부가 국제 핵 쓰레기장 건설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사업은 특정 회사의 상업적 프로젝트에서 국제 정치적 성격을 갖는 이슈로 점차 변하고 있다.

호주의 국내외 정책이 영국과 미국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호주 정부의 공식 반대에도 불구하고 판게아 자원은 사업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미 영국 정부는 호주 정부의 반대 입장이 완고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호주의 환경 단체도 정부를 불신한다. 특히 지난해 12월 환경 단체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방사능·핵안전법’이 핵 쓰레기 수입 금지 조항 없이 통과된 것도 정부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호주에서 핵 쓰레기 처분장 건설이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판게아 자원측은 아르헨티나로 가겠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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