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 특사 노나카 방북 임박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9.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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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치 총리 친서 휴대…제2 ‘가네마루 외교’ 추진
일본의 북한 정책에 대해 ‘계단식 돌격형’이라고 평한 사람은 한 재일 동포 사업가였다. 일본 기업의 북한 진출이 쟁점이 되던 97년께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일본 정부나 기업은 평상시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결정적 시점이 올 때까지 수면 아래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점이 왔다고 판단되면 일거에 수직 상승해 ‘돌격 앞으로’를 감행할 것이다.”

시점으로 따진다면야 지금이 바로 돌격 앞으로를 감행할 시기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미·북한 관계에 걸림돌이던 미사일 위기도 한 단계 완화되었고, 대북 포괄 협상을 규정한 페리 보고서 윤곽도 드러났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김정일 총비서와 만나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의 방한을 거론하는 데까지 남북간 상황이 발전하기도 했다.

특사 노나카는 오부치 정권의 핵심 인물

일본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10월5일 일본 외무성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관계자들이 북한을 방문해 양측 외교 당국간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이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준비해 온 빅 카드가 바로 ‘총리 특사 북한 방문’이다. 총리 특사 북한 방문을 처음 보도한 것은 다름 아닌 조총련계 기관지 <조선 신보>이다. <조선 신보> 최근호는 ‘일본 정부가 총리 특사를 북한에 파견할 계획을 논의하고 있고 인선 작업도 대체로 끝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총리 특사로 파견될 인물에 대해서는 “최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공화국(북한)을 방문한다는 얘기가 있으나 그는 아닐 것이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무라야마 전 총리 방북은 그동안 북·일 수교 교섭 재개를 위한 빅카드로 거론되어 왔다. 원래 이 얘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3∼4월께 북한이 그를 초청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금년 2∼3월설 또는 6월설 등 소문만 무성했다. 이 사이에 처음에는 사민당 단독으로 추진되던 것이 자민당과 자유당 등 여당이 참여하는 초당파 방북단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따라서 미사일 위기라는 걸림돌만 제거되면 당연히 수면 위로 상승할 빅이벤트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 신보>는 무라야마 이외의 다른 인사가 총리 특사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운을 남긴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시사저널>은 도쿄에 있는 한반도 소식통들과 전화 접촉해 일본 정가 내부 움직임을 탐색해 보았다. 그 결과 <조선 신보>가 보도한 대로 일본 정부가 무라야마가 아닌 거물급 정치인을 총리 특사로 북한에 파견할 계획임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그 거물급 정치인의 방북이 무라야마 방북단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그는 무라야마를 단장으로 하는 방북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지만 실질적인 특사 역할은 그가 담당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왜 이같은 복잡한 형식을 택했으며, 과연 ‘그’는 누구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바로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관방장관이다. 일본 내각에서 관방장관은 총리를 보좌하는 정부 대변인이다. 그러나 관방장관 시절 노나카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오부치 정권의 ‘그림자 총리’로 일컬어질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이번 내각 개편에서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관방장관에서 물러났지만 역시 자민당 간사장 대리라는 핵심 자리를 장악했다.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노나카 특사’ 파견 계획은 적어도 새 내각 각료 임명 후 1주일을 전후해서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원래 10월1일을 기해 새 내각 인선이 발표되었어야 하나, 방사능 유출 사고로 인해 지난 5일로 미루어지다 보니 특사 문제 역시 발표가 약간 늦추어진 셈이다.

노나카의 방북이 개별 정치인 수준이 아니라 ‘총리 특사’라는 특별한 의미가 붙는 이유는, 바로 그를 통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친서가 김영남 북한 최고회의 상임위원장을 통해 김정일 총비서에게 전달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직 친서의 구체적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북·일 수교 교섭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노나카 전 관방장관 총리 특사 파견설을 최초로 확인해준 사람은 북·일 관계 내막에 정통한 조총련계 고위 인사였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무라야마 씨가 총리를 지낸 인물이기는 하나 현재 야당 소속이어서 책임 있는 역할을 담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래서 오부치 내각의 실질적 2인자이자 북한 정책에 대한 입장을 같이하는 노나카 씨의 방북이 거론되게 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의 이같은 정보는 일본 정보기관 관계자 및 일본 현직 교수 신분으로 외무성이 북한 정책을 입안하는 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반도 전문가 등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되었다.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노나카 씨가 북한에 간다는 얘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라고 시인했다. 그는 여기에 덧붙여, 노나카가 현직에 있을 때도 나카야마 마사키(中山正暉) 중의원 예산위원장을 매개로 대북 채널을 유지해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적 ‘고붕’이라고 할 나카야마 의원이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해 그동안 교감을 나누어 왔다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의 북한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반도 전문가는 더 구체적으로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북한 접촉이 활발해지고 있는데도 일본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존재해 왔다. 이제 일본도 뭔가를 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해 “그동안 일본 정부는 야당 의원인 무라야마 씨말고 총리 특사를 파견하는 문제를 검토해 왔다. 그러나 무라야마 방북이 이미 추진되어 왔고 또 그가 총리까지 지낸 인물이어서 특사를 따로 파견하는 것이 모양이 안 좋다는 결론에 도달해 절충하기로 한 것이다”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일본에서 총리 특사 파견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 8월10일 북한 중앙방송이 발표한 ‘대일 정책에 관한 북한 정부 성명’이다. 이례적으로 ‘정부 성명’이라는 무게를 실은 이 성명에서 북한은 일본에 대해 △북한에 대한 압살 정책 포기 △과거 죄행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대결 정책으로 나올 때는 이에 상응한 대응책을 강구하겠다는 등 일견 강경한 내용을 발표했다. 그러나 성명의 말미에서 ‘일본이 과거 청산을 통한 선린 관계의 수립에로 나온다면 기꺼이 응할 것’이라고 밝혀 대화를 재개할 의사를 확실히했다.

북한 정부 성명 발표 이후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교수를 중심으로 총리 특사 파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이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통령 특사로 북한에 파견하듯이 일본도 그 정도 무게를 가진 인물을 총리 특사로 북에 파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야당 인사인 무라야마말고 정부·여당의 거물급 인사가 이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던 것이다.

한·일 정부, 특사 파견 이미 양해

북한 정부 성명에 대한 일본 정부의 화답은 공교롭게도 김종필 총리가 방일했을 때인 지난 9월 2일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의 회동에서 이루어졌다. 오부치 총리는 이 자리에서 “8월10일 북한 정부 성명은 높은 형식의 문서로서 김정일 총비서가 관여한 것으로 감지된다. 최근 북한 고위급에서 약간 유연한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 유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오부치 총리가 김종필 총리에게 뜬금없이 북한 정부 성명을 거론한 이유는 바로 일본측의 다음 순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김종필 총리 방일 때 일본도 올해 가을 께에는 누군가 거물급 인사를 북한에 보낼 예정이라는 점이 한·일 간에 양해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즉 한·일 정부 차원에서도 이미 일본 총리 특사 파견 문제가 양해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노나카 특사’를 포함한 초당파 방북단의 방북 시기와 관련해 일본측은 내심 10월 중 방북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북한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식량 지원 문제 등이 걸림돌이 되어 왔으나 최근 움직임으로 보면 이같은 장애 요인은 이미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앞의 조총련계 소식통은 그 한 예로 지난 16∼23일 북한을 방문한 시미즈 스미코(淸水澄子) 참의원(사민당)과의 면담에서 김용순 비서가 “대화하겠다면 우리는 언제든 환영한다”라고 한 점을 주목하기도 했다.

일본, 북·미 고위급 회담 전에 특사 파견 원해

지난 10월2일자 베이징발 교도통신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우에다 데쓰(上田哲) 전 중의원 의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일본 초당파 의원단의 방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 통신은 또한 노나카 전 관방장관이 우에다를 통해 “북한이 초당파 의원단의 방북을 받아들인다면 본인도 거기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라고 말했다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결국 교도통신 보도가 사실이라면 총리 특사 파견을 북한측이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북·일 간에는 방북 시기만이 남은 셈인데, 앞서의 한반도 소식통은 “우선 10월 중 방북을 시도하고 늦어도 10월 말까지를 목표로 한다. 그게 안되면 11월 중으로 조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북한 고위급 회담이 10월 말로 잡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말은 여러 가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우선 10월 말 이전이라는 것에는 미·북한 고위급 회담 이전이라도 총리 특사 방북을 실현하고 싶다는 일본의 희망이 담겨 있다. 즉 북한과의 수교 교섭만은 미국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하고 싶다는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질 경우 미·북한 회담이 끝난 뒤 결과를 보면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11월 중 방북이 된다.

지난 90년 11월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를 단장으로 한 일본의 초당파 방북단이 북·일 수교 교섭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면, 노나카 특사 방북은 그동안 단절된 교섭의 불길을 당긴다는 점에서 비슷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벌써부터 ‘가네마루 외교 부활’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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