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앞의 등불` 쿠바를 가다
  • 장 원 (그린네트워크 대표) ()
  • 승인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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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앞에서 무너지는 ‘피델’과 ‘체’의 신화
체게바라는 예수이고 피델 카스트로는 신이다. 적어도 쿠바에서는 그렇다. 체는 죽어서 쿠바 민중을 해방시켰으며, 피델은 살아 남아 신이 되었다. 그러나 혁명 45년이 지난 지금, 이 현대판 신권적 사회주의 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달러라는 우상 때문에, 달러라는 물신 때문에, 잉카 제국의 정체(政體)와 비슷한 쿠바의 신권적 사회주의는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물론 쿠바에서는 아직 “피델 가라사대”가 건재하며, 여타 중남미 국가에서도 피델의 인기가 여전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쿠바에는 세 개의 클럽이 있다. 식민 역사가 용해되어 있는 쿠바의 대표적인 사탕수수 술 ‘아바나 클럽’, 이제는 살아 있는 전설이 되어버린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그리고 ‘달러 액세스 클럽’이 그것이다. 달러 클럽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친척이 있어서 달러를 송금받을 수 있거나, 아바나 같은 대도시나 바라데로 같은 관광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달러를 벌 수 있는 계층을 말한다. 달러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페소(쿠바의 통화 단위) 클럽’에 속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달러 클럽이 쿠바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교수와 전문의들은 한 달 급여가 20 달러도 안 되는데, 밤거리 여인들은 하룻밤에 100 달러씩을 벌 수 있으니, 이로 말미암은 극심한 빈부 격차와 불평등 구조 심화는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물론 정부 관료들은 달러 클럽이니 페소 클럽이니 하는 분류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누구나 달러를 구할 수 있으며, 누구나 달러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달러 중심의 경제 체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므로, 그로 인한 빈부의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지도 않거니와 아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나라나 개인이나 ‘달러벌이’에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생수 한 병에 1 달러이고, 모히또(민트 잎을 넣은 럼주) 한 잔에 3 달러나 받는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은 입장료만 20 달러이다. 쿠바인들의 한 달 월급에 해당한다. 당연히 엄청난 빈부 격차가 발생하는데, 이 격차는 여느 자본주의 국가의 그것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자발적 가난 또는 수평적 가난일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어쨌든 평등하기는 했으니까. 지금은 달러를 가진 자와 달러를 갖지 못한 자 사이의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크다. 바로 이것이 건강했던 쿠바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사실 쿠바 국민들에게는 최소한의 식량·주거·교육 그리고 의료가 무상으로 보장되어 있다. 쿠바의 유아 사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 쿠바인들의 평균 수명은 76세에 이르고 있다. 범죄 발생 빈도도 여타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대단히 낮다.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제 쿠바인들이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자유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달러를 벌기 위해서 쿠바의 자존심을 버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찾기 위해 치열한 암중 모색을 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돈과 자유를 찾아 아예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쿠바의 한 국립의료원 책임자로 있는 에멜리아의 얘기를 들어보자. “비록 모자라는 게 많기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혁명을 통해 이룩한 것을 잃고 싶지 않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중심이 된 사회를 만들고 싶다. 이곳에서는 사회 정의가 체제화해 있다. 우리는 여전히 피델을 믿는다.”
또 다른 사람, ‘우정의 집’ 바실리오 총지배인은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직장을 가지고 둘이 경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모든 면에서 평등을 추구한다. 언론의 자유도 없는 것이 아니다. 경제 봉쇄를 비롯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정부에 대해서 또는 체제에 대해서 불평할 수가 있겠는가?”

두 사람은 쿠바 사회에서 급이 높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의 얘기도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그런데 그것이 참 쉽지가 않다. 일단 보통 사람들과는 영어가 통하지 않고, 그나마 어렵게 영어를 몇 마디라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거개가 “바이 시거” “기브 미 원 달러” “굿 바 매니 걸” 하는 식이니 절망하게 된다.

다행히 영어가 통하는 결혼한 한 여대생을 만났다. 그녀는 면담하기 앞서 절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고 사진도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무엇보다 학생으로서 외국에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것이 불편하다. 자유와 권리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여서 사회 보장이 다 된다고는 하지만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한 달에 쌀 빵 커피 설탕 소금 콩 등을 조금씩 배급받는데 그것 가지고는 모자란다.”

그녀는 자기 아이가 열병에 걸렸을 때 병원에 몇 군데나 갔었는데, 처방해야 할 약이 없어 돈을 주고 암시장 같은 데서 구했다고 덧붙였다.
마탄자 신학대학의 한 교수는 더욱 적나라하게 쿠바의 현실을 들려 주었다.

“요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으려고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온다. 현실에 좌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에서 교회는 압력밥솥에서 김이 새어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 그러면 압력을 못 이겨 터질 것이다. 혁명 전에 아바나는 창녀와 도박의 도시였다. 그러면 혁명 후에는? 창녀와 도박에 음주와 마약이 더 보태졌다. 이대로는 안된다. 쿠바 체제의 비효율성은 고쳐져야 한다. 일당 독주도 문제이다. 궁극으로 자유·민주주의·다양성·토론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혁명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물론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서 쿠바는 잘하고 있다. 미국의 엄청난 압박과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카리브 해의 이 작고 아름다운 섬나라는 용케도 버텨내고 있다. 경제 봉쇄로 인해 농약이나 비료를 들여오지 못하자 모든 농토를 유기농으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차량을 들여올 수 없게 되자 자전거 수십만 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특하고 장한 일이다.

그러나 쿠바는 여전히 바람 앞의 등불이다. 안에서 부는 바람도 만만치 않고 밖에서 부는 자본주의의 바람은 가히 태풍이다. 사회주의 체제인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해 세계 어느 나라가 이 태풍을 잠재울 수 있었던가.

필자는, 자본주의는 계속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고 마는 두발 자전거이고, 사회주의는 천천히 가지만 넘어지지 않는 세발 자전거라고 생각해 왔다. 이제 무엇이 대안 체제인가. 생태사회주의인가 아니면 생태민주주의인가.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쿠바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무려 스물여섯 시간의 비행을 감내하면서 그 곳으로 달려간 것 아닌가.

쿠바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라틴아메리카의 아즈텍·잉카·마야 문명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말 것인가. 쿠바는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심지어는 자기 부모도 믿지 않는다는 카스트로를 믿어야 하나. 아니면 체의 부활을 믿어야 하나.

체의 아들, 까밀로의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어보자. “무엇보다 쿠바의 생존 자체가 지금은 중요하다. 이상적인 해법을 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쿠바의 생존 자체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위 상자 기사 참조)

쿠바여 꿋꿋하라!(Cuba Si!)

글쓴이는 지난 1월11∼21일 그린네트워크가 주관하는 녹색문화기금 프로그램을 위해 쿠바에 머물렀다. 문화기금 프로그램은 내년 1월과 2월에도 진행될 예정이다.(www.ng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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