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에 무릎 굻은 터키 회교 노선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7.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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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에르바칸 총리, 회교 노선 복귀 추진하다 친미 군부에 굴복
이슬람이 결국 서구화의 물결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회교 노선을 주창하는 네크메틴 에르바칸 총리가 지난 3월5일 반이슬람화를 추구하는 친미 노선의 군부 압력에 굴복해, 회교 세력을 무력화(無力化)하는 계획에 서명한 것이다.

터키는 이슬람권 국가이면서도 친서방 노선을 지향하는 나토(NATO) 회원국이다. 터키는 에르바칸 총리가 95년 12월 집권하면서 역대 친미 노선에서 탈피해 회교 노선 복귀를 추진하는 외교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친미 성향의 군부와 심한 마찰을 빚어왔다. 그 때문에 터키의 정국 혼란은 미국 등 서방의 주요 관심사였다.

터키 정국이 총리와 군부의 대립으로 떠들썩하게 된 것은 95년 12월 에르바칸 총리가 이끄는 이슬람계 복지당이 제1당으로 떠오르면서부터이다. 이슬람계 정당이 제1당이 된 것은 터키 공화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복지당은 총선에서는 제1당으로 올라섰으나 의회 의석은 총 5백50석 가운데 1백58석밖에 차지하지 못해 제2당인 정도당과 연합 정권을 꾸려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복지당은 공화 체제를 지향하는 세속 정당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고립 무원의 신세로 전락했다. 게다가 연정 세력인 정도당도 에르바칸의 회교 노선 복귀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군부, 유럽화·탈이슬람 ‘케말주의’ 견지

터키의 회교 국가화를 막기 위해 군부가 내놓은 계획안은 △회교 단체의 코란 학습 금지 △회교 과격 인사로부터 지방 정부직 박탈 △공공 기관내 회교 두건 착용 금지 △언론 매체의 회교 율법 선전 불허 등을 담고 있다.

2월 말까지만 해도 에르바칸 총리가 군부의 서명 압력을 완강히 거부하자 군부는 쿠데타 가능성까지 들먹이며 에르바칸을 압박했다. 터키 군부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한 다음 병영으로 복귀한 전력이 있다.

국민의 95%가 이슬람 교도인 터키가 정교( 政敎) 분리·세속 지향 같은 탈이슬람 전통을 가지게 된 것은 터키 국민이 ‘근대 터키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케말 파샤(터키에서는 아타 투르크라고 불린다) 덕분이다. 오스만 터키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패전국이 되고 터키 본토마저 그리스에 짓밟히고 있을 때, 케말 파샤는 독립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을 세웠다.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된 케말 파샤는 이슬람권에서 벗어나고 서구를 지향하는 방법으로 근대화 개혁을 단행했다. 그가 내세운 기치는 △정치와 종교 분리 △여성에게 평등권과 참정권 부여 △교육 균등 △종교 자유 △언론 자유 △터키어를 라틴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현대 터키어 창제 등이었다. 터키 군부는 케말 파샤가 죽은 뒤 ‘케말주의’라고 불리는 이러한 개혁의 이념을 가장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케말 파샤의 이러한 개혁 정책은 현재까지도 터키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는 회교식 두건인 차도르를 두른 여성과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뒤섞여 있다. 국민들은 아직도 ‘내가 유럽 사람인가 이슬람 사람인가’ 고민하고 있다. 농민 빈곤층에서는 과격한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다. 터키 군부가 케말 파샤의 정책이 제대로 실천되는지 감시하고 있지만, 회교 노선을 걷는 국경 너머의 이란·시리아·이라크를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에르바칸의 복지당이다. 냉전 체제 종식 이후 줄어든 서방의 원조도 이슬람 정권 탄생을 거들었다. 친미·친서방 노선을 표방하며 출발한 터키는 냉전 시대에는 소련에 대항하는 완충 지대로서 서방의 지원을 톡톡히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 붕괴와 더불어 터키는 자리값을 못하게 되었다. 소련의 목줄을 죄는 전략적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나토와 미국의 지원이 줄었다.

에르바칸 총리는 취임 후 1년 동안 △회교 국가와의 관계 강화 △실리 외교 추구를 양 축으로 외교 반란을 꾀했다. 그가 추진한 이라크·시리아·이란과의 회교권 4자 정상 회담도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반미를 국시처럼 표방해온 나라들이다.

그러나 결국 에르바칸 총리는 군부라는 강력한 반이슬람 세력에 무릎을 꿇었다. 문제는 전국민의 95%를 차지하는 이슬람 교도들이다.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군부가 이들의 반발을 어떻게 잠재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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